어느 날의 뼈해장국

어느 날의 뼈해장국

"해장국 N년 외길 인생"같은 문구가 써있는 가게에 들어갈 때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미 이렇게 기억에 남았으니 벌써 성공했구나. 하지만 이 뼈해장국은 정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세월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부드러운 질감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부드러운 와중에 과도하지 않았다. 살짝만 띄운 고추기름과 된장맛이 과도하지 않았고 살코기가 적당히 떨어져 나오는 정도가 과하지 않았다. 시래기도 억세지 않고 밥도 밥공기라는 도구를 생각하면 최선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간만에 의도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끼니었다. "뼈 하나"라는 말도 없이 눈빛 교환만으로 뚝배기를 데우게 만드는 객들의 존재는 나름의 논리가 가진 힘을 짐작케 한다. 이 뚝배기 한 그릇은 무엇이건 오래 씹어댈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 같았다.

뼈해장국과 같이 형식이 확실한 서민 음식들은 오트 퀴진의 영역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양식당은 본 매로우나 오소부코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목을 끌지만 돼지 비선호 부위 가공 음식들은 전국 현장에서 분투 중인 자영업자들의 손에서 제각기 선보이고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는 특별한 기념일을 맞아 비싸게 결제한 식사 자리에서 뼈해장국, 감자탕 따위를 보고 싶지 않겠지만 오히려 오늘날 이런 요리에 비전과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오트 퀴진의 역할이다. 오트 퀴진 영역의 뼈해장국이라면 아마도 이런 형태는 아닐 것이다. 뚝배기도, 뼈도, 공기밥마저도 없을 것이다. 객은 그 와중에 뼈해장국을 떠올리게 하는 실마리를 타고 뼈해장국이라는 음식에 대한 요리사의 비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일상의 영역에서는 선보일 수 없었던 아이디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일상의 영역에서 제시되었던 아이디어를 극적으로 선보이는 곡예와 같은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맛집 찾아가면 되지 왜 오트 퀴진 요리사가 그런 일을 해야하는가? 셰프로 불리는 요리사는 그러한 역사적 의지를 계승하는 역할도 겸하기 때문이다. 셰프는 더 이상 단순히 값비싼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셰프들이 반드시 요리법을 책으로 남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대 한식은 분명 풍성한 레퍼런스를 지니고 있음에도 요리사들은 대부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는데, 뼈해장국은 그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몇가지 더 꼽는다면 청국장, 해물 칼국수, 묵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