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식당 - 국밥의 최전선, 여전히
화목순대국(등록사업자명은 '화목식당')은 내가 직장생활에 대한 영웅담을 듣고 자랄 때부터 여의도에 있던 가게이지만, 현재와 같이 서울의 직장인 상권에서 상징적인 위치에 오른 것은 2대 대표 시대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가 이 가게의 주인이 된 것도 90년대의 이야기이므로 가게의 역사가 3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듣기로는 지금 주인은 1983년부터 이어온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를 일이다)
인파로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가게에 속한다고 생각해 여의도 생활을 할 때에도 자의로 찾은 적이 없는데, 광화문에서 이 가게 앞이 비어있는 모습에 홀린 듯 이끌려, 나올 때에는 이곳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자 결심이 섰다. 모두가 소주 한두 병을 기울이고 있던 늦은 저녁 시간, 홀로 숨죽이며 순대국 한 그릇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내심으로 서울의 탕국에 대해서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값싼 돼지 내장이나 지방 등을 가공해 서민을 배불리는 음식인데, 부가가치가 붙지 않으면서 굳이 이런 고역을 맡으려고 하는 사람은 적고, 주요 상권에서는 이미 조립식(라멘 오타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본계' 따위가 될 것이다) 순대국이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돈골이니 사골이니 하면서 뼈 육수에 내장을 띄워 내는 것들은 끼니는 될 수 있으되 내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화목식당의 국물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스스로는 변하지 않았는데, 주변이 모두 변함으로서 이질감을 연출하는 존재가 되었다. 돼지 곱창을 중심으로 내장을 삶은 육수의 징후가 명백하고, 강한 양념으로 이를 덮어낸다. 다대기로 끝나지 않고 국밥을 완성한 다음에 올려 전혀 숨이 죽지 않은 대파에 다시 생대파와 고추로 그야말로 자극의 왕국을 쌓아낸 가운데, 깍두기가 제 역할을 하지만 그마저도 고추가루 양념에 버무린 김치라는 사실이 그야말로 소주를 부르는 구성이다. 하지만 이렇게 미각을 상실하고도 남을 구성에서도 내장 국물은 빛난다. 지방이 분명히 있지만 뼈와 달리 탁하지 않고, 새끼보를 넣어 고깃국과 다른 맛의 특징을 낸다. 밥을 말아서 내는 것은 토렴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넣고 끓이는 방식에 가깝지만 그 덕에 국물의 점성이 한층 더 돋보인다.
국물 요리라고 하면 결국 국물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멘을 언급한 김에, 흔히 여러분이 라멘을 처음 '배우게 될 때' 어땠는가. 양념의 방식, 국물의 베이스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가? 고명으로 얹어내는 고기로는 분류하지 않는다. 우리의 국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화목식당은 서울 복판에서 내장 위주의 국물이라는 장르를 여전히 대변, 대표하고 있다. 물론 이런 스타일의 요리에서 볼 수 있는 정점에 이른 상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화목의 국물은 이렇게까지 강한 자극으로 덮고 또 덮어야 할 만큼 독하지 않다. 감흥 없는 당면 순대도 분명한 개선의 대상이다. 남도의 국밥을 생각하면 야채를 넉넉히 쓰고 케이싱은 더 존재감이 있는 두터운 부위의 창자를 쓰는 순대가 이 국물과 더 완벽하게 조화를 맞출 것이라 보지만, 한 번 포기한 야채/피순대의 길을 돌아오길 바랄 수는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목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사랑받을 만한, 기대할 만한 가게로 남아 있다. 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날이 선 서비스도 있다. 남대문 그릇 시장에 널리고 널린 흔한 그릇들 가운데 오로지 뚝배기 하나만을 옮기기 위한 크기의 쟁반처럼 바쁜 가게에서 객을 보채는 일 없이 가게의 효율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응대하는 직원의 시선이 객을 향해 있다. 요컨대 직원이 힘을 들이는 방식으로 객의 편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런 가게가 많지 않은 오늘날에 더욱 빛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