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인증 피자와 그 다음

협회 인증 피자와 그 다음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며 피자는 가는 곳마다 모습을 바꿨다. 특히 세계 요리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다다라서는 더욱 많이 바뀌어 뉴욕 스타일부터 시카고 딥디쉬까지 토마토 정도를 제외하면 지중해를 잊어도 좋을 만큼 변화했고, 피자가 그렇게 흔해진 데 비해 좋은 피자를 말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Antonio Pace 등을 비롯한 피자이올로들이 개설한 '진짜 피자 협회' 등의 운동은 여느 피자들과 구분되는 피자 나폴레타나라는 형식을 재정립함으로서 피자 세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물론 배달업과 함께 성장한 미국 피자 프랜차이즈 산업의 크기에 비하면 산업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지만, 더 좋은 식사로서 피자는 어떻게 구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산업적 표준을 마련함으로서 서로 다른 피자 문화가 뒤섞이는 사이에 나폴리의 전통이 빛을 잃지 않도록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한국에 곧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누가 화덕을 유통하기 시작했는지 21세기 초부터 "화덕피자"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지만 고수분, 발효와 같은 키워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가운데 화덕은 오븐과 대비되는 부가가치 상품으로 취급되어 비교적 고급 요리(!)의 전당을 노렸다. 대표적으로 썬앳푸드가 경영했던 「비아 디 나폴리」같은 경우로 삼성동에 가게를 냈으니 그 포부를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어디로 갔나? 그 비아 디 나폴리를 경영했던 썬앳푸드는 매드포갈릭이라는 외식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그 요리는 어땠는가?

그렇게 얼렁뚱땅 만들어지던 한국의 "화덕피자" 시장에 나폴리 자격증 광풍이 몰아닥쳤다. "씨뇨르방"이라는 이름의 업체가 모 협회의 교육을 국내에 들여온 이후 매일유업이 일본의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간판을 사오면서 자격증을 내건 피자집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AVPN 기본 과정은 무려 9일이나! 교육하므로 곧 한국 역시 일본의 전례를 따라 자격증 많은 나라가 되었음은 예상하기 쉬운 결말이었다. 이외에도 API니 APN이니 협회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2000유로 미만의 비용을 지불하고 한두 달이 되지 않는 비용을 들여 얻을 수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 장인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해볼만한 도전이므로 곧 대도시는 피자 장인들로 들썩였다.

이제 굳이 서울이 아니라 여느 소도시를 넘어 정말 지방 어디에 가도 이러한 피자 교육기관 출신 피자를 하나는 만나볼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시간들이 나빴는가? 생각건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자격증 피자들은 피자를 먹는 경험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냈다. 교육기관에서 강요하는 "진짜 나폴리" 환경 조성을 위해 토마토 깡통부터 베수비오의 땅을 파서 만들었다는 화덕까지 두터운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었고 최소한의 즐거움을 갖춘 빵반죽을 배운 이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이제는 토르티야 피자와 같은 불행을 손쉽게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서로간 적절히 상권을 나누기에는 충분히 많은 수를 넘어선 오늘날 "그 다음"을 제시하는 피자는 과연 있는가? 이미 으로, 혹은 토핑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자 한 시도들을 한 가지씩 언급했는데, 이외의 피자 가게들을 찾더라도 사실 글의 내용은 크게 바뀔게 없다. 과거에는 반가웠던 비스무리함이 이제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쯩"을 내건 피자집들은 자의와 타의가 뒤섞이는 메뉴 선택 과정에서 최후의 방어선으로 기능하지만, 적극적으로 먹는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는 발걸음이 닿지 않는다. 2022년, 발상지인 나폴리는 물론이고 건너편 섬나라에서도 이제는 인증서를 벗어나 피자에 대한 이해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피자들이 들썩이고 있다. 피자 구르망이니 카노토니 하는 것들은 모두 그러한 심화학습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들인데, 과연 한국어 문화권에서 피자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나는 그 모습을 여전히 보기 어렵다.

게시글에 대한 최신 알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