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ca San Luis, Sidra Red Honey, Tolima, Colombia
30분 이상 줄 서서 먹어야만 하는 음식은 없다, 이러한 철칙은 인터넷에서도 이어진다. 예약 전쟁을 치러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내게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따내기 위해서 누군가의 덕을 보는 것은 더더욱 끔찍히 싫다. 그래서 인연이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덴티티 커피랩의 커피였다. 입고되는 날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니. 커피 원두는 선도를 감안하여 항상 거의 다 마실때 즈음만 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입장에서 그런 수고는 감히 들이기가 싫었다.
그런 아이덴티티 커피랩의 오프라인 매장이 생긴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그 위치가 참으로 신묘했다. 다름아닌 2차 아울렛. 기다림만 없다면 커피 한 잔을 위해 구로까지 냉큼 달려갈 마음은 충분했다.
시드라는 에콰도르에서 유래한 품종으로, 확인하지 못한 소문들에 의하면 네슬레의 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변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네슬레는 더 이상 에콰도르에서 해당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있고, 비영리 NGO인 세계 커피 연구에서도 이 품종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추후 연구의 성과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흥미로운 지점은 본래 이 품종은 티피카의 변종으로 이해되었는데, 일부 남미의 커피 재배자들은 에티오피아 에일룸 중 하나가 생태에 적응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본 커피를 재배하는 산 루이스 농장의 경우 버번과 티피카를 비롯한 품종들이 뒤섞여 재배되고 있으므로..(이하 생략)
이러한 부분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이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넘어가자. 온라인에서의 인기 공세에 비하면 놀랍도록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과정의 투명함을 중요시한다는 브랜드의 매장에서 원두의 설명은 노트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은 슬펐지만(이는 온라인 스토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비자가 찾지 않는 정보는 이전에도 말했듯 단순한 폭격 행위에 지나지 않으니 없는 경우가 자연스럽다. 추출 프로필도 물어보기 전에는 제공하지 않는 것은 다소 불행한 일이나, 커피만큼은 기대한 모습이었다.
사과를 중심으로 하는 과일의 풍성한 신맛이 살아있어서, 커피 가공을 통한 매력들이 결코 잊히지 않았음이 기쁘다. 다만 이 맛(taste)을 위해서만 마시는 음료가 아니지 않은가. 로스팅으로 얻어낸 맛(flavor) 또한 다양한 노트가 겹치며 풍성하게 어우러진다. 커피 바에서의 커피란 적어도 이래야 한다. 좋은 커피란 생각건대 맛이 무엇보다도 선명해야 한다. 푸어 오버로 내린 이 한 잔은 그야말로 커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진다고 할 만큼 이러한 노트가 선명했다. 탄닌 등이 제공하는 미묘한 질감은 잔에서 홀짝이는 경험의 즐거움으로 한 잔을 비우는 시간을 재촉한다. 그렇다면 이 한 잔은 좋은 커피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렇게 좋은 커피는 남은 반 나절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시끌벅적한 아울렛도 이 순간만큼은 훌륭한 커피 바처럼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