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제로 - 퇴행의 한 컵

젠제로 - 퇴행의 한 컵

지난 견해변경 게시글은 원래 처음이 아니다. 이전 플랫폼을 운영하던 당시에도 유사한 취지의 글을 쓴 경우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나는 곳이 이곳이었다.

왜 냉각해서 만드는 디저트를 먹는가? 생각건대 현대 산업사회에서만 가능한 사치가 핵심이라고 본다. 물론 페란 아드리아를 필두로 그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차가운 크림은 전통적인 식사에 어떤 맥락도 지니지 못한 존재이다. 이는 지극히 현대적인 발명품이자 사치품이다. 사람의 생존에 어떠한 기여도 추구하지 않는 순수에 가까운 쾌락으로 기능해야 한다. 액체도 고체도 아닌 분자구조는 사람의 입에서 가장 강렬한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계절과 장소에 무관하게 차가움을 누리는 것은 그 자체로 사치스럽다. 이 모든 과정은 서양 요리사가 으레 따르듯이 친절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우리 몸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크기로 잘려진 분자들은 불어넣어진 공기와 함께 마치 흐르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입안의 신경세포 전체를 빠르게 자극한다. 그 결과로, 아이스크림은 다른 형태의 조리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미각 경험을 제공한다.

젠제로의 제품은 이러한 아이스크림, 혹은 젤라또, 그런 것들의 본질에 비추어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던 맛인 피스타치오부터 이야기해보자. 일단 바닐라를 철수시킨 상황에서 큰 감점이 들어가지만-이곳에는 아주 잠깐동안 '프렌치 바닐라'라는 메뉴가 있었다- 초콜릿과 피스타치오, 피오르 디 라떼가 구색이나마 갖춘다. 그러나 대부분 메뉴를 기간 한정 제품들, 특히 소르베 위주로 채워진 이유가 있다는 듯 그 맛은 좋지 않다. 그을린 피스타치오가 가진 향이 다가오며 첫 인상이 좋지만 피스타치오가 가진 고유의 견과스러움nuttiness의 부재가 경험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향은 존재하는데 그 향과 짝을 맞추어 맛(flavor)을 완성할 팔레트가 불협화음이다. 풍성한 지방의 감각도, 미세한 짠맛과 지배하는 단맛도 아닌 빈칸의 풍미가 후각세포를 당황시킨다. 쉽게 말해 맛의 밀도가 낮으므로 이런 종류의 음식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정확히 역행하고 있는데, 이른바 건강한 맛이라는 표현은 아이스크림에게 줄 수 있는 최악의 수식어가 아닌가?

신제품이라는 마스카포네와 꿀은 더욱 착잡하다. 마스카포네가 단맛과 어울릴만한 풍성한 지방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아니다. 사실 맛보기 전 수령하자마자 대단히 잘못된 제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꿀의 사용방식 때문이다. 꿀을 끼얹는 방식인데 꿀이라는 물건은 온도가 내려갈수록 끈적거리는(viscous) 성질이 심해진다. 받아든 순간 이미 꿀은 아이스크림 위에서 한 장의 이불처럼 따로 노는 지경이었다. 저렴한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꿀의 조직을 잘라내려 시도할수록 엉겨붙기 마련이며, 억지로 한웅큼 담아 입에 넣는다면 꿀이 딸려들어오는 양이 많아 전체 경험을 장악한다. 아이스크림은 잊히고 꿀의 감각만이 남는다. 그리고 꿀을 날것으로 먹는 경험은 결코 훌륭하지 않다. 꿀 자체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런 요리를 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날것의 꿀이 선사하는 지나치게 높은 당도로 인해 유발되는 갈증과 불유쾌함, 기억에서 잊혀져버린 화이트 베이스에 가까운 아이스크림의 무미의 풍취는 이곳의 뒷걸음질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가게의 이름이기도 한 생강우유라는 제품을 생각해보자. 생강을 위에 끼얹었나? 당연히 우유에 그 향만을 우려서 만들었다.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만들고, 그런 방식으로 맛을 연출하는 무대이다. 그런데 신제품의 방식은 과거마저도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그런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꿀의 특징이 베이스에 섞어 쓰는 정도로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다던가.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게 주방의 역할 아닐까? 어는점만 계산해서 기계에 넣는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주방의 존재의의는 없다. 굳이 두 가지 이상의 질감을 병렬하겠다면 어울리는 변형이라도 고민했어야 했다. 지금 이 물건이 벌집 아이스크림이랑 무엇이 다른가. 취향을 논할 수 없는 보편적 실격품, 10년의 세월이 도로아미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