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면옥 - 자극파 냉면의 기수

한국 냉면 문화에 가장 나쁜 영향을 준 한 마디의 표현이 있다면 '슴슴하다'를 뽑겠다. 음식 저널리즘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친 '맛없없', '녹진한 맛'만큼이나, 또는 그보다도 더 나쁘다.
일본 소바의 만트라를 따라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맛이 안 느껴졌는지, 아니면 맛을 옅게 내는 몇몇 가게를 좋아해서였는지 이유는 몰라도 냉면이 맛이 약하고 미묘한(subtle) 음식이라는 편견을 퍼뜨린 사람들이 있었고, 정말 그렇게 냉면을 먹어야만 '맛잘알'이 되는 시대가 있었다. 냉면에 대한 그러한 오해가 깨진 것이 남북 화해 무드 덕분에 (다시) 소개된 옥류관의 냉면 때문이었다는 점도 웃지 못할 일이다. '서울 냉면', '경성 냉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백 년도 더 된 일이다. 전제주의 독재 정권이 제시하는 맛의 방향 따위의 눈치를 볼 일인가 싶지만 그 반향은 엄청나서, 식초나 겨자를 잔뜩 치는 자들의 문화적 승리가 선언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냉면은 시큼털털해야 하는가, 슴슴해야 하는가? 사견으로는 둘 다 아니다. 기원을 따져보면 동치미 국물의 신맛이 필요하겠지만, 육수를 배합하기 시작한 뒤로 냉면 육수의 핵심에는 고기맛이 자리했다고 본다. 가장 간단하게 보면, 차갑게 먹는 쇠고깃국이다. 겨자니 식초니의 개입 이전에 소금이나 간장의 단계를 지난 것이 식사가 된다. 생각건대 좋은 냉면 육수라면 물의 성질보다는 마시는 재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 좋고, 동치미의 특징보다는 쇠고기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지금 자리잡은 서울의 냉면 문법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설령 '쇠고기맛 다시다'가 심은 편견 때문이더라도.
그러한 관점에서 정인면옥의 냉면은 썩 훌륭하다. 적절한 염도가 입천장의 후각을 통해 쇠고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들고, 메밀의 비중도 가공의 편의성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은 정도이다. 고기 요리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신맛에 대한 요구를 김치가 충분히 받쳐주어 식초로 육수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백식초는 식사 하는 자의 식탁에 오를 만한 것이 아니다). 이런 냉면을 흔히 '육향이 진하다' 따위의 수사를 사용해 표현하곤 하는데, 고깃국에서 고기 맛이 강하다는 것이 별난 일이라고 취급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본적으로 물에 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을 넘어선 조리가 없는 냉면집의 주방에서 국물의 농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바에야 낼 수 있는 고기 맛의 두께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육수를 섞는 데 대한 결단, 조미에 대한 결단이 달라질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육향이라는 것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지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곳에서 맛을 느끼기 어려운 정도의 낮은 농도를 선택한다면 그것이 과연 맛인가? 국물이 아닌 요리를 생각해 보면, 한참을 씹어야 비로소 맛 비슷한 것이라도 느껴지기 시작하는 고체 요리를 두고 우리는 조리를 덜 한 것으로 본다. 경험에 익숙해지다 보면 맛의 편린에 더 빠르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생기겠지만, 대중식사는 그런 레이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동치미를 주력으로 하는 방식도 개념적으로는 유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슴슴'같은 수식어가 붙는 가게의 냉면에서 쇠고기가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발효의 신맛이 앞에 서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나는 이것이 거짓된 약속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