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맛 돈까스 - 만 원의 벽

즐거운 맛 돈까스 - 만 원의 벽

이 블로그의 많은 글들이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앞서고 구체적 사안에 대한 포섭이 모자라다. 오늘도 그럴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돈까스이기 이전에 돈까스의 가격이다. 히레까스(KRW 15000)을 두 번에 걸쳐 먹은 일이다.

수유동에서 신설동으로, 몇 년의 세월을 보낸 지금 「즐거운 맛 돈까스」는 이제 반절 정도는 목적지 식당(destination restaurant)이 되었다. 이곳을 찾는 보통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런 목적지 돈까스는 서울에 급격히 늘어나서 이제는 적어도 구 별로 한 군데씩은 꼽아볼 만큼 생겼다. 사람들은 "카츠"와 "까스"로, 혹은 "경양식"과 "일본식" 따위로, 혹은 두 번 튀긴다거나 미오글로빈의 분홍빛이 보인다거나 하는 기준으로 이를 구분하고자 하지만, 누가 보아도 선명한 구분선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즐거운 맛 돈까스」는 등심 기준 KRW 13000, 「헤키」는 KRW 12500, 「카와카츠」 KRW 13000, 「카츠 바이 콘반」 KRW 15000, 심지어는 체인화된 「경양카츠」도 KRW 14900이다. 이런 돈까스 식당들은 일상에 절반 정도만 걸쳐있다. 식당에서도 객들의 구성이 다채롭다. 신설동과 같이 생활인들이 많은 곳에서는 생활인들과 순례객이 뒤섞이는가 하면 망원동이나 압구정동과 같은 곳에서는 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이는 단언코 본 블로그가 설정하고 있는 독자의 기본값에 비추었을 때 일상의 식사 가격이 아닐 뿐더러, 그런 미래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 번 껑충 뛰어오른 돈까스의 '격'은 이제 평범한 식사로의 복귀를 거부하는 듯 하다.

이러한 돈까스의 흐름에 거슬리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정 반대편의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라멘이다. 돈까스와 라멘, 같은 고향을 두었고 비슷하게 유행을 탔다. 그러나 라멘은 돈까스가 넘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만 원이라는 심리적 장벽이다. 의외로 현지에서도 사정은 비슷한데, 이른바 「천 엔의 벽1000円の壁」이라는게 있다. 「라멘 워커ラーメンWalker」같은 정기간행물부터 「라멘 재유기국내 정발명 "라면요리왕"」같은 만화에서도 한 번은 다룬 주제인데, 라멘이 아무리 시끄럽게 지지고 볶더라도 결국은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만만한 식당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가격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나 도입한 무인 자판기를 사용한 판매도 생각해보면 그러한 설정의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똑같은 구식 티켓 발권기도 아니고 대형 프랜차이즈처럼 인건비 절감의 효과를 떠올릴 필요가 적어보이는 한가한 1인, 2인 매장에서도 굳이 이런 기계를 쓴다. 갑자기 이야기가 또 곁다리로 빠졌는데, 그만큼 일본 모방에 충실한 건넛나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라멘은 親서민적인 요리어야 한다는 강한 구속이 있다. 그 속에서도 라멘은 무한히 팽창해왔다. 뉴욕에서는 베이컨으로 풍미를 낸 육수를, 일본에서는 가다랑어를 쓴 1번 다시나 멸치 육수가 있다.스웨덴의 「Aloë」에서는 북해의 오징어를 이용해 라멘을 본뜬 요리를 본 적이 있다. 일본 문화의 구속이 미치지 않는 곳들에서는 가격이나 서민적인 매장 분위기와 같은 것들이 강제되지 않으니, 새 장소에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시간이 흘러 돈까스에서만큼은 이러한 가격, 그리고 설정이 익숙해졌다. 수유동 시절(등심 기준 KRW 7000)에서 두 배 가까이 올랐음에도 가게는 더더욱 붐빈다. 그렇다면 돈까스는 이제 당당하게 우리의 조금은 특별한 한 끼 식사, 가벼운 데이트부터 직장인의 굳은 결심을 더한 점심까지 책임져도 좋을까?

애석하게도 그 질문에 답하기에는 적절한 데이터를 얻지 못했다. 저녁과 점심 시간을 번갈아 매장이 비교적 한가할 때, 그리고 사적인 이유로는 절대로 하지 않는 긴긴 줄서기까지 경험해 보았으나 매장의 간판인 등심에 번번히 실패한 것이다. 대표 메뉴를 먹지 않고 맛에 대해 논하기는 우습다. 물론, 이곳의 등심 돈까스는 과거에는 여러 번 먹어 보았지만 이 글을 위한 식사는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면,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할 수 있다. 돈까스의 성공은 단순히 공립학교의 급식 메뉴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큼의 긴 역사만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특별한 것으로 대우받고 있지 않은가? 사견으로는 바로 그 지점, 다양성을 옥죄는 익숙함이 절묘하게 서울에서는 특별함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까스는 종(縱)으로 팽창해서 과거의 조리 과학, 망치로 두들기는 행위를밀어내는 대신 풍성한 시각적 만족도를 얻었다. 그만큼 어려워진 익힘의 문제는 두 번 튀기기와 일상화된 온도계 사용 등의 기술적 보완책으로 해결한다. 그 사이에서 이제는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어느 일상 요리나 먹는 이들이 상세한 디테일까지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재미'는 귀찮은 인간들의 영역이다. 이를테면 이곳의 섬유의 결이 세세히 느껴지는 안심은 60도 후반에서 70도에 이르는 심부 온도 통제의 결과물일 산물이 높다던지 따위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재미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이들이 보통 '씬'을 형성하고 가꾸는데, 돈까스의 '씬', 돈까스의 재미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답하기 어렵다. 본점에서는 오래오래 함께하고 있는 명패에서 말하듯이 '돈까스의 고기 맛'이 바로 그 재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들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제는 적어도 조리 자체가 엉터리인 돈까스는 조금의 열정만 있으면 피할 수 있을 만큼 서울의 돈까스 인기는 높아졌다. 「안즈」나 「긴자바이린」에서 고통받을 일도 없고, 규카츠와 같이 도무지 동의하기 어려운 음식의 유행도 이제는 쓸려내려갔으니 앞으로는 더 나아진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일 년 내지 이 년, 길게는 오 년에서 십 년이 지난 뒤 돈까스의 세계는 어디를 향해 확장하고 있을까?

이제는 한국의 고전 요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쉽게 찾을 수 있는 짜장면, 탕수육, 순대국밥, 감자탕과 같은 요리들을 떠올려보면 돈까스도 그들의 뒤를 잇지 않을까 우려한다. 무엇이 우려되냐고? 나열한 네 요리는 이제는 적어도 이제는 조부모와 손자녀가 맛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굳건히 자리잡은 요리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참맛에 대한 고민을 만나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이상한 발음들로 우리를 어렵게 만들곤 하지만 대단한 파인 다이닝의 요리들도 되돌아보면 그 나라의 이런 일상 요리들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렇게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 "부이야베스"같은 요리의 스토리는 다들 지겹게 들어보지 않았는가, 왜 감자탕은, 순대국은 부이야베스가, 양파 스프가, 고등어 보우즈시가 될 수 없었을까. 그 답을 나는 돈까스로부터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