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 - 쓰부의 죽음

진가 - 쓰부의 죽음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날 연남동에서 밥 한 끼를 먹었다.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미우나 고우나, 좋으나 싫으나 한국 중식은 중화민국 국적의 화교들에 의해 발전하고 꽃을 피웠다. 가장 큰 흐름으로는 아서원으로 대표되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화교 자본-커뮤니티가 만들어낸 흐름이 가장 깊은 유래를 지니고 있으나 대법원 1972. 4. 25. 선고 71다2255 판결로 아서원을 롯데로 매각하는 계약이 유효하다는 취지로 2심이 파기환송되면서 사실상 1970년대에 붕괴되었다.

이후 서울의 한국식 중식의 맥락은 몇몇 호텔을 중심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가장 첫번째로 꼽아볼 흐름은 신라호텔의 팔선을 위시로 한 한국식 광둥 요리이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채용된 중화민국인 후덕죽이 신라호텔의 「팔선」개업을 이끌어 오쿠라 호텔의 지도편달을 받은 광둥 요리를 선보이게 된다.[1] 이 시기 팔선의 요리의 흔적은 불도장으로 남았는데, 이는 불도장이라는 요리 자체의 매력보다는 그 당시 중국 본토(?) 요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주로 이색적인 재료나 중국에서 고급으로 친다는 재료 따위가 조리법에 앞서 관심을 끌었으며, 불도장 역시 노루 힘줄 따위의 재료가 들어가고 보양이 된다는 맛과는 무관한 요소들이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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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85년 2월 15일). 8면 지면광고.)

이외에도 동부이촌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한 홍보석, 사보이 호텔의 호화대반점, 조선호텔의 월궁 따위가 있고 호화대반점은 국물 요리가 유명했다느니 하는 자잘한 서사가 있지만 큰 틀에서 중화민국계 화교에 의존하고 진기한 식재료와 비스무리한 조리법으로 무장했다는 점에서 이제 와서 굳이 구별의 이익을 찾고 싶지 않다. 하여간 이런 사부들이 20세기에 이루어놓은 것이 오늘날 한국식 중식의 정수 취급을 받고 있는데, 진가 또한 그러한 계보를 잇는다고 매우 크게 써놓은 곳이다.

이 가게를 내면서 자신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두반가지튀김은 새우의 단맛과 가지의 질감은 좋았지만 소스의 뉘앙스가 지나치게 납작해 의문을 자아냈다. 양파나 마늘, 고추의 전형적인 향신 이상의 무엇도 없었다. 약간의 가지 속을 파서 무언가로 채우는 것은 지중해 요리에서 매우 흔하게 보이는 방식인데, 그 경우에는 보통 가지 속에 조미나 지방을 더해 전체적인 그림을 만든다. 물론 같은 가지라고 하기에는 종자의 차이가 크지만, 이 튀김은 그 어느 방향으로도 명확히 자리하지 않고 그저 무언가 다르긴 달라야 한다는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가지를 맛있게 먹기에는 간단히 신맛을 낸 초 바탕의 소스에 비해 점도가 높고 무거운 소스가 가지의 단맛을 흐리게 만들며, 새우와 소스를 맛있게 먹기에는 지방과 염도가 빈칸으로 남아있다.

탕수육은 그에 비하면 뻔한 소스가 고르게 발려 있어 조리의 의도는 살렸다. 다만 튀김의 본질적인 함의, 표면의 노출로부터 속재료를 보호한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었다. 재료를 지나치게 작게 잘라내고 있던 것이다. 작은 크기로 인해 치아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한계가 있으므로 보호의 이익 또한 자연히 작게 느껴진다. 탕수육의 고기가 작아야 할 이유는 생각건대 한 가지밖에 없다.


  1. 박희진, (2008년 7월 28일). [명장·名匠]"요리는 내 인생" 신라호텔 요리명장.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08070711280207173 ↩︎

그보다도 식사에 있어서는 아주 무너진 채로 그냥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짬뽕의 국물은 완전한 空이었다. 어색히 자리잡은 야채는 열조리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자체적인 제도 내에서 성장하였던 중국 본토를 제외하면, 동아시아권 중식은 주로 광둥 지방-홍콩/마카오/싱가포르-말레이시아로 이어지는 광둥 요리의 흐름 위에 있으나, 한국의 중화 요리는 박정희 시절 화교 자본을 몰아내면서 완전히 단절된 이후(아서원은 광둥 요리 계통의 식당도 아니었지만) 중화민국계 화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흐름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 속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과 같은 대표적인 한국식 중식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 한국식 중식계는 더 이상 스스로를 별로 돌보지 않는 듯 하다. 과거 중식의 가치가 어떤 특이한 단백질을 사용했는지에 있었다면 대중화되면서 탄수화물 요리의 건더기의 많고 적음으로 이행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외국인들의 커뮤니티이고, 서울의 고급 호텔을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존재 자체의 친숙함과는 달리 구체적 맥락을 알기 어려운 한국식 중식은 수수께끼의 베일에 둘러싸여 그 내실은 부실해져만 가고 있다. 이제는 이 사부들과, 그들의 비법에게서 좀 벗어나야 뭐라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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