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우라멘 - 돈코츠 교카이 라멘

지로우라멘 - 돈코츠 교카이 라멘

일본요리의 전형적인 가다랑어와 다시마 등을 이용한 다시, 그리고 닭척추를 중심으로 한 잡뼈의 토리가라 육수를 블렌딩하는 W스프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20세기 말에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라멘 역사의 다중적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땅에서는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조가비니 부시니 끓이겠다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다.

결국 더블 스프 라멘이 왜 탄생하고 라멘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 풍미가 그들에게 사랑받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의 라멘은 모모푸쿠의 베이컨 향기가, 도쿄의 라멘은 도쿄가 자랑하는 츠키지의 향기가 나는게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나는 이제와서 더블 스프라고 하여 선진이고 앞선 시도고, 돈코츠 끓인다고 하여 뒤쳐지고가 아니라 결국 세태에 맞는 라멘인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음식인가가 판단의 척도가 되야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했다.

돈코츠로만 끓인 라멘집들은 대중화되면서 반대로 짧은 여행을 찾는 객들이나 라오타들에게는 멀어졌다. 수수한 비주얼과 수수한 맛은 일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라멘에 다들 무언가를 넣는다. 토마토, 트러플 오일, 패류, 생선뼈.... 과연 이 수많은 라멘집들은 또 몇 년 후에 사라져 있겠지. 사실 본 블로그에 게재할 때 라멘의 경우 1년, 2년 안에 사라질 것 같은 것들은 적지 않는다. 때로는 먹어보지도 않을 때도 있다. 단지 새로우니까 가본다. 사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데 이 도시에 새 것일 뿐.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미래가 있다. 예로는 하쿠텐이 썩 버티고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영업에 변화는 있지만 라멘은 그대로다. 점원도 생기고 식초 병도 바꿨으니 이정도면 기록할 가치가 있었던 셈.

결국 기본적으로 닭, 아니면 돼지뼈인 라멘 육수에 이런 것들을 더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는데, 그 이유를 잘 보여주는 라멘 보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그 해답을 역시 일본 본토에서 찾은 경우가 <지로우>였다. 가장 모범적인 라멘가게가 아닌가. 오래도 되었는데 망하기는 커녕 음식도 여전하다. 직원을 교육해서 번창한 곳이기 때문에 돌발 휴일의 기습을 당하지도 않으며, 타임스퀘어같이 정돈된 식당가에서 주변의 직장인을 배불리고 깔끔한 경험을 선사한다. 왕도가 있다면 이런 길이다.

그래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지로우의 라멘에 대체 무엇이 있는가? 돈코츠교카이라는 라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여러모로 배제하게 되는 '폭탄라멘'을 제쳐두고 나면 새 메뉴다운 메뉴인 지로우의 돈코츠교카이는 이제 넉넉한 세월을 버텼다. 정돈된 레시피, 잘 교육된 점원, 그리고 쇼트가 나지 않는 재고. 이제는 존재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본다.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지로우의 돈코츠교카이는 사실 앞선 나의 바람을 충족시켜줄만한 무언가는 아니다. 결국 원전이 본토에 있고 모사에 가깝다는 점에서 <하쿠텐>과 비슷하다. 노렌와케는 커녕 원전과의 관계도 잘 모른다는 점도 유사하지만 상호가 명칭이 된 이에케와는 달리 이쪽은 맛만 좋으면 그런 명칭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인데, 그 원전 이야기 또 해야지. 돈코츠교카이의 탄생에 대하여 주류 견해는 2002년 <와타나베>를 시조로 보고, 00년대 중반 즈음에 본격적으로 유행했다고 본다. 와타나베에서도 문하생들이 다수 배출되었는데, 와타나베는 본점의 스타일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어서 라오타가 아니면 아예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곳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파인애플 라멘을 하는 <파파파파파인>이 와타나베의 문하인데, 누가 둘의 라멘을 연관짓겠는가. 하여간 이런 가게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돈코츠교카이는 원전이 있고 의도가 뻔한 음식이라는 점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한다. 돈코츠교카이는 돈코츠의 두터움과 짠맛 위에 일본인에게 익숙한 풍미와 감칠맛을 더하는게 핵심이다. 상대적으로 엷은 해물 스프를 블렌딩하면서 질감을 잡지 않으면 무게감이 엉망인 맹탕이고, 반대로 해산물 풍미의 농도를 맞추지 못하면 더블이 아닌 1.1정도의 스프가 된다. 맛(flavor)에서는 어류, 맛(taste)에서는 돈코츠. 이게 기본 얼개다.

훈제 등푸른생선의 고유한 풍미가 과연 서울 사람들과 얼마나 어울릴지는 고민해보아야 하겠지만, 지로우의 목표는 우선 이 그림을 적절하게 재현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단계에서 성공한다. 정확한 온도, 당기는 짠맛, 모자라지 않은 지방. 면 두께마저도 비슷하다. 그러나 부시 종류가 내는 고유의 풍미는 있다고 인정은 할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단계에 이르렀다고는 할 수 없어 완벽한 모작은 아니다. 물론, 이곳을 찾는 이들과 짙은 다시국물의 거리를 생각하면 그것이 못 만든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이런 라멘의 존재의의가 덜 명확하게 드러난다. 물론 농도만 높다고 좋은 라멘이라는 뜻도 아니다. 쓴맛 하나 통제를 못하는 종류들은 그거대로 NG. 결정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나머지의 만듦새가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 결국 좋은 라멘이라고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상을 채우기에는 모자란게 없다. 다다르지는 못했어도 나아갈 발판으로는 충분하다. 언제나 찾아가면 열려있는 지로우가 아닌가. 가격또한 범주 내에 있음은 물론.

그러나 돈코츠교카이가 바치는 어떤 문화, 또는 사람에 대한 헌사의 맹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어떤 라멘을 할 것인가에 대해 서울은 여전히 답보중이고, 오히려 지로우와 부탄츄와 같은 노점(?)이 그나마 적절한 방책을 산발적으로 내놓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일본의 틀 안에서만 일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들이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만드는 이 만큼이나 먹는 이가 기여해야 할 부분이다. 어떻게 기여하냐고? 단적으로 아까 말한 <와타나베>의 문하생 중 같은 돈코츠교카이로 개업한 GOTTSU 이야기를 해보자. 와타나베는 대퇴골을 우리지만 GOTTSU는 척추와 닭뼈를 혼합한다. 자연스레 지방이 엷어지고 그에 따라 면도 고친다. 바디를 다르게 구성하지만 묽지는 않다. 결국 일정한 풍미의 농도는 지켜지는데, 그 풍미에 그들이 무엇을 채우고 있는가를 보면 정답은 뻔하게 나타난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와타나베의 그릇은 "현대의 가정에서도 쓰고싶은 전통 도기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젊은 도예가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