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심민속왕순대 - 현대식 옛날순대

흔히 옛스러운 음식이라고 하면 그 원형을 오래 지켜온 것 같다는 환상이 따라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조광심민속왕순대의 이야기가 좋은 예시가 되겠다. 십오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이름으로 부산 곳곳에서 영업했던 이곳은 지금까지도 부산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전라북도식 피순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아침 일찍 순대국으로 속을 달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으로 지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창자에 속을 아주 두껍게 채워넣은 일반 피순대와 막창으로 빚어낸 피순대의 두 종류가 간판인데, 일반 피순대는 비계를 넉넉하게 넣고 만드는 유럽의 부댕 누아나 블랙 푸딩보다는 촉촉하고 부드럽지만, 주장은 약한 편이라 케이싱이 지방의 뉘앙스를 더하는 막창 쪽이 기호품으로서의 즐거움은 더 크다.
피와 야채 중심으로 만든 거의 단색에 가까운 소가 통상적인 순대와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곳의 순대가 옛적부터 이 모습을 지켜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정도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곳의 순대는 시래기나 당근 등 야채가 돋보이는 구성에 당면까지 넉넉히 들어간, 전형적인 피순대였고 크기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빚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선지와 부재료를 한번에 버무리지 않고 비중도 줄인 현재의 스타일이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완전히 구축하여 돼지의 부산물을 남김없이 사용한다는 요리의 영혼은 사라지고, 대신 어수룩하게 채운 당면만이 가득한 순대의 선호가 뚜렷한 세상에서 당연한 타협을 선택했던 이곳의 순대가 오히려 세월이 지나며 마치 옛 이야기에나 등장할 법한 순수한 피순대를 지향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름다운 옛 시절'은 진실보다는 감상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따라서 굳이 옛 모습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다 해서 반드시 좋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피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현재의 스타일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순대라는 투의 주장은 아니다. 다만 피순대가 일상의 음식이 아닌 별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라는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방향에는 더욱 가깝다 생각한다.
순수하게 식재료와 그를 둘러싼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피를 요리한다'는 관념은 지중해~서아시아 문화권에서 비해 우리는 그러한 터부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 섭취하는 수준에 머무르다보니 이런 토속 요리의 독특한 재료라는 인상이 가장 강하다. 뭐, 고기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핏물'이라는 이름으로 - 그렇다면 그것은 피인가 물인가? - 불리는 세상에서 피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싶다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