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엽수림(照葉樹林)

조엽수림(照葉樹林)

칵테일이라는 요리법의 진수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물건이다. 리큐르의 단맛이 주제가 되는 음료로 스위트 와인이 가진 식후주의 자리를 유쾌하게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맛을 떠받치는 유쾌한 두 차의 떫은 감각. 바깥에서 바라보는 푸르름보다는 무성한 숲속 그늘같이 어두운 녹빛만이 고민거리인 음료이다.
쇼-요-쥬린이라는 원어 발음보다 '조엽수림'이라는 우리말 독음이 훨씬 익숙한 이 칵테일은 1981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토리가 우롱차를 출시하면서 홍보차 우롱차를 사용한 조엽수림과 실크로드(シルク・ロード) 두 종의 칵테일 레시피를 제작하여 배포한다. 실크로드의 경우 위스키에 우롱차.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한꺼풀 더 해볼 수 있다. 조엽수림? 활엽수의 하위 분류에 속하는 조엽수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는 낯설다. 신록을 떠올리게 하는 무수히 많은 개념 중에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980년대라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즈음부터 일본의 문화적 기원을 기후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시도가 특유의 조엽수림 생태와 연결되면서, 나카오 사스케(中尾佐助)를 중심으로 이른바 조엽수림 문화론이라는 것이 전개되었다. 그 내용은 조엽수림이 분포하고 있는 중국 남부와 한반도 남부, 동남아 북부, 서일본 등이 유사한 문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1] 굳이 설명하자면 인류의 문화를 사바나(잡곡과 콩), 지중해(맥류와 완두), 동남아의 근재(根栽, 뿌리식물과 나무)로 구분하며 동남아의 농경 문화가 온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조엽수림문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구분하는 그런 발상인데 현대에는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 견해인 것 같지만 당시에는 남방계 일본인의 문화적 기원을 밝히는 이론으로 큰 각광을 받았다. 더 정확히 들여다 보면, 조엽수림문화 속 식문화의 공통적 특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밤, 도토리 등 견과류의 채집과 칡 등 근경류로부터 녹말을 추출하는 관습에서 시작해 벼농사에 이르렀다는 점, 그리고 차를 우려 마신다는 점 등이다.
이제 이 이름의 미제가 풀리는가? 그렇다. 이 방대한 온대림 문화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 차라는 개념에서 그 이름이 이어지는 것이다. 1972년 중-일 수교를 통해 일본인의 기원으로 불리는 지역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중적인 마케팅 용어로 차용되어도 좋을 만큼 널리 알려진 개념이 된 것이다. 차 문화권에서는 별종이라고 할 수 있는 녹차 위주의 문화권인 일본에서 왜 이러한 조엽수림문화론에 큰 호응이 있었는지까지는 이 글에서 탐구할 대상은 아니겠으나, 중국 남부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우롱차와 일본을 대표하는 차인 녹차가 만나는 칵테일. 그 이름, 아무래도 조엽수림보다 좋을 수가 없다.

  • 제법과 비율에 대해서는 결국 리큐르를 홍보하기 위한 물건이라는 기원에 착안하여 리큐르 쪽의 존재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단맛이 불쾌하게 부각되지 않는 선에서. 얼음이 적당히 녹았을 때도 나름의 정취가 있다.

  1. 대표적인 저작으로 中尾佐助, (1966), 農耕の起源と栽培植物(岩波書店) / 佐々木高明, (1976), 続・照葉樹林文化 東アジア文化の源流, 中央公論社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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