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바베큐 - 서울맛 나는 애굽
서울에서 근래의 COVID-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지역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이태원 근방일 것이다(그 다음은 장위동 일대). 그러한 충격이 있을 때는 아니고 그 전이었다. 어느 날의 이태원. 항상 이태원은 서울이라는 도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음식들, 입맛들, 식문화들이 이태원에 둥지를 틀었다.
의외로 이태원의 중동 음식의 다양성은 썩 구색이 갖추어진 편이다. 케르반을 중심으로 하는, 터키에 텍스멕스를 얹은 듯 현지화가 된 주류가 거의 지배적이지만 찾아보면 이민자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양하다. 리비아, 범 이슬람이나 범 중동 문화권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은 서로 꽤나 다른데, 오늘의 주인공은 이집트다.
사실 이집트 요리의 좋고 나쁨을 말하기에 카이로 바베큐는 그 전부를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단순한 인기 없음뿐이 아니다. 어차피 같은 동포들끼리 팔아주는 것으로 적당히 연명은 할 수 있어 보인다. 메카가 생중계되고 있는 가운데 울려퍼지는 알-임란으로 추정되는 구절이 크게 경험을 방해하거나 대한민국 현지인들에게 불친절하지도 않다. 다만 음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영 좋지 않다. 근처의 아랍 식자재마트에서 유통되는 재료는 당연히 중동 본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데, 이를 넓힐 수 있는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할랄 인증의 벽이 한 번 가로막고 언어의 장벽이 두 번 가로막는다. 식육류가 아닌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관심이 없는 듯.
한참 새콤하고도 고소하게 입맛이 돋도록 잘 만든 후무스는 레시피만큼은 멀쩡하나, 올리브유의 향이 슬픈 지경이라 애석하다. 똑같은 지중해산이지만 같은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질이 지나치게 차이난다. 모양은 좀 그렇지만 신맛만큼은 화사하게 돋아서 레시피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올리브는 올리브유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하지는 않아도 적당한 재미까지 더한다.
후무스의 주재료인 칙피스(병아리콩)가 국내에서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이고, 후무스가 뭐냐고 물어보면 잘 안다고 대답할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케밥이나 돈두르마같은 터키 요리의 몇 가지가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으며 대충 중동사람들이 뭘 먹고사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후무스는 그러한 우리의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곱게 빻아도 남는 이물감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운데 하던 버릇대로 하더라도 한국의 좋지 않은 환경만 고스란히 들어나는 결과물이 되어 있다. 콩맛이 진한 것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으나 균형에 있어 최적값을 맞출 수 있는 현실은 아니므로, 올리브유에 예산을 투자할 수 없다면 풍미를 더해줄 여타 견과류나 향신료를 넣을 수도 있고, 빵이나 난 등에 맞추어 볼 수도 있다. 그림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후무스는 그냥 이 상태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습이다. 아무도 후무스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비슷한 습관대로 이집트에서 만들었다면 고급까지는 아니어도 신선하고 향이 강한 품종의 올리브유, 과실미가 흐릿하게나마 남은 식초 등이 한참 나은 그림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서비스값에 나오는 후무스가 한국에서 그런 모습을 그대로 가져오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요리사가 등장할 수 있는데, 텅 비었다. 오는 과정에 흘리고 온 것도 있다. 이집트에서 후무스는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먹기도 하지만 피타라는 일종의 플랫브레드와 자주 짝을 맞춘다. 시큼털털하니 제아무리 중동 사람이라도 물리는 것은 물리는 것이다. 빵만 있어도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주방에 한 명 홀에 한 명인 구성으로 빵까지 구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포기한 듯 하다. 애석하다.
밥은 비리아니(برياني)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물건이었는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중동식 밥요리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구별의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는 너무 슬펐다. 이집트는 아랍 문화권 중에서도 범람하는 나일강과 지중해의 덕을 보아 밀을 소비하는 문화가 가장 견고히 자리잡은 나라이다. 농업 생산성이 좋지는 않아 세계에서 밀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들 중 한 곳이다.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타와 아이시 발라디, 밀의 가공방식에 따라 갈리는 두 종류의 빵은 그야말로 이집트인의 밥이다. 잘 구워진 빵부터 이집트 음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밥의 경우에도 제국주의 시대 이전부터 유럽의 관심과 간섭을 꾸준히 받아온 문명의 요람답게 지중해 요리의 장점을 흡수해서 토마토 소스를 곁들이거나, 파스타와 밥을 함께 볶는 등 독특한 요리들이 있다. 거기에 중동의 전통에서 오는 산양이나 소, 들소의 젖과 치즈까지, 이집트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카이로 바베큐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1)이름처럼 고기 구이가 대부분의 메뉴이며, 2)빵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메뉴 구성을 하고 있다. 3)그리고 각 요리는 습관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집트 요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이곳은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애초에 이런 식당에서는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파는 사람도 관심이 없다. 친절하기는 하지만 요리사는 아니다. 탕수육, 민트초코, 내추럴 와인, 스시와 같은 것들은 모두 바깥 것들이지만 모두 한국 사람의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하지 않았나. 중동 요리도 의자 하나정도는 빼줄만 한데 서울 인심이 박하다. 그래서 중동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의 인생이 좀 쓰다. 할랄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가 테러리스트들이 국내에 유입된다고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장사를 접은게 오 년 전이다. 요리에 만족하지 않더라도 결코 주방만의 탓은 아니다. 이웃주민으로 받으라고는 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 정도는 나눌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보지만, 이렇게 해서야 설득은 어려울 듯 하다. 고민만 깊어진다.
나는 그래도 중동 요리의 다양성과 깊이를 서울에 더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맛있는 내일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희망은 놓지 않는다. 중동 요리는 집에서 해먹는 것이 여러모로 나으니 이런 글을 쓸 일은 또 당분간 없겠지만, 케밥부터라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반갑게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