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라쿠 - 중화소바

키라쿠 - 중화소바

키라쿠를 대표하는 메뉴는 완탕면이지만 이날만큼은 완탕이 들어가지 않은 더 낡은 형태의 중화소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위의 메뉴는 엄밀하게는 차슈멘이다).

먼저 키라쿠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개업 70년이 넘은 낡은 가게로 대만에서 도일한 점주가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재현한 것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부흥한 이른바 타이완 라멘과는 무관한 고전적인 간장 베이스의 중화소바 스타일이다. 도쿄에서 출발한 중화소바는 하카타 등지의 백탁 스프와는 궤를 달리하므로 여전히 맑은 국물을 띄는 가운데 튀긴 파와 돼지 기름 맛이 이 요리의 기원을 알게 해준다.

다나카 카쿠에이의 정책을 등에 업고 고토치 라멘이 유행하고, 이후에는 서양 요리의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등 라멘은 중화소바로부터 착실히 멀어져 갔으나 그와는 별개로 고전적인 라멘 형식은 전통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10년대부터는 이른바 마을 중화(마치츄카, 町中華, 우리말로 번역하면 동네 중국집)를 취재하는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중화소바 역시도 네오클래식 츄카소바ネオクラシック 中華そば 를 내세우며 중화소바의 형식을 계승하는 움직임이 등장하는 등 중화소바는 일본의 식문화에서 여전히 그 생명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네오클래식 중화소바에 대해서는 시바타쇼텐의 中華そばNEO을 참조)

키라쿠는 옛방식 중화소바의 레퍼런스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 특징을 경험하기 모자란 것이 없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방이 없는 부위를 사용한 차슈나 노른자까지 완전히 익혀버린 달걀이다. 광둥식 바베큐의 일종인 차슈는 원래 지방이 절반 정도 되는 부위를 사용하고 간장과 마늘 뿐 아니라 여러 향신료와 맥아당 시럽 등을 발라내 조리해야 하지만 중화소바의 형식에서는 국물의 고명이 될 수 있도록 점잖아진 형태를 띈다(키라쿠는 그 중에서도 조금 두껍고, 더 뻑뻑한 편이다). 라이라이켄의 영향을 강조하며 쇼와 타령을 하고 싶다면 나루토라도 하나 올려야겠지만, 그러한 시각적 기호보다도 맛에서 느껴지는 쇼와스러움은 돼지 기름에 맞서는 향신채가 거의 파 하나라는 점. 키라쿠는 튀긴 파를 이용해 이 부분에 있어서 기타 전형의 중화소바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중국식 튀긴 샬롯油葱酥, 광둥식으로 유청소에 가깝게 들린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대만과 푸젠 성 근방의 식문화에서 받은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 키라쿠의 중화소바가 도대체 왜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먼저 중화소바라는 양식 자체다. 한식의 근대적인 국물요리를 생각하면 그 탁도와 무관하게 대부분 간장 바탕으로 맛을 내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육탕은 먹는 이가 직접 소금이나 젓갈을 치는 식이고, 색이 있는 감자탕이나 선지국도 된장 바탕이다. 중화 요리 계열인 짬뽕에는 간장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간장 바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식에서 이런 간장 국물을 어째서 어려운가? 정서적인 이유인가, 아니면 유통되는 간장의 차이에서 오는가?
국물-면-고명으로 완성되는 한 그릇 국수 요리에 대해서도 생각할 지점이 있다. 키라쿠는 면과 차슈 모두 단단하게 조리하지만 숙주가 경쾌하게 끊어내는 식감을 연출하기에 그다지 힘들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여간 조금은 씹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이탈리아식 알 덴테와 맥락을 같이하는 흐름인데 한식의 국물 요리에서 이러한 식감 부분에 대해 어떻게 연출할 수 있는가 고민이다. 한 때 토렴하는 국밥을 예찬하는 여론이 있었는데 토렴을 하면 국물의 점도와 적절한 삼투는 얻을 수 있지만 쌀의 질감은 완전히 무르게 되어 씹는 즐거움이 없다. 물론 한국인들의 고유한 치감인 쫄깃함이 있지만 어느 정도 단단한 것과 쫄깃함은 지향점이 아주 다르다. 전자는 익힌 정도에서 오는 것이고 임계점 이상의 물리력을 가하면 쉽게 끊어지는 데 반해(그 임계가 딱 이로 끊는다는 느낌이다) 후자는 글루텐을 지나치게 발달시킨 느낌이며 여기에 살짝 덜 익히기까지 하면 끊기지 않고 그대로 짓눌리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이는 면보다는 빵에서 자주 보인다). 물론 후자가 반드시 전자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충실하게 발달한 글루텐도 어딘가 용도가 있으리라. 하지만 이런 면 요리에서는 아닐 뿐.

대단한 사업가들이 만들었다는 서울의 새로운 면 요리집들도 가보았지만 솔직히 이런 낡은 라멘 하나를 두고 얻은 뻔한 교훈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라멘은 왜 그렇게까지 성공했는가. 한식에서 고명과 국물이 서로 다른 양념으로 조리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는가. 정서적인 달걀 고명의 조리 상태는 어떤가. 키라쿠의 달걀은 적어도 따스한 국물이기에 적당히 먹을만 하다. 시퍼렇게 질려버린 냉면의 노른자는 도대체 언제 바뀌나. 문화적인 레퍼런스니 현대적인 조리 기술이니 하는 것은 이런 보편성을 손 본 뒤에야 생각나는 것이다. 스프에 대해서는...(하략)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라멘집이 되어버린 이런 곳의, 심지어는 초벌해둔 볶음밥마저도 서울에 오면 그럴싸한 물건이 된다는 점이다. 제발 탄수화물좀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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