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블러 - 왜 코블러인가
입구에는 코블러 셰이커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매장에 입장하면 코블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코블러인가. 코블러Cobbler란 이대로 족한 것일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코블러 셰이커로 만드는 칵테일을 마셨다. 그리고 이곳의 코블러가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의심하게 되고 말았다.
일본의 클래식 바-그 중에서도 "메뉴판 없음" 스타일을 고집하는 곳인 만큼 클래식 칵테일이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사이드카 한 잔에서 불안을 느꼈다. 기주인 레미 마르탱 V.S.O.P.의 문제는 아니었다. 코냑의 향과 신맛이 어느 정도 맞물리는가 싶다가도 입 안에서 둘은 명확하게 분리된다. 불충분한 가수, 그리고 불충분한 회전이 둘, 또는 셋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고 있었다.
바텐더는 먼저 틴에서 음료를 10번 정도가 되지 않게 스터한 뒤 뚜껑을 닫고 셰이크할 준비를 시작한다. 하드 셰이크 특유의 팔을 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가미하긴 하지만 주로 손목의 튕기는 힘을 이용해 코블러 셰이커를 흔드는데, 동선이 짧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썩 액체에 전부가 전달되지 않은 인상을 주어 나는 실망했다. 첫 한 모금은 코냑이었고, 다 마실 즈음에는 과일즙이었으니.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즈음 나는 매장에 보스턴 셰이커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이곳의 영혼은 코블러 셰이커라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매장의 모든 설정이 이미 그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상표의 호칭과 그림, 웰컴 푸드의 설정까지. 셰이크에 잘 사용되지 않는 캄파리가 매장 뒷편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그랬다. 이 캄파리로부터 무언가를 알아챘어야 하나.
코블러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원은 흔히 자갈(cobble)로 생각할 수 있지만 구두 수리공 역시 Cobbler로 불린다(만드는 사람은 Cordwainer로 엄격히 구분되나 추후 이러한 구분은 흐려진다). 과일에 비스킷 반죽을 얹어 굽는 음식인 Cobbler는 이 둘과 모두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 음료의 코블러 셰이커 역시 나열해두고 보면 아무련 관련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코블러의 칵테일도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칵테일 바가 코블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거꾸로 생각해보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코블러 셰이커에 있다. 코블러 셰이커는 1884년 브루클린의 한 바텐더가 발명한 것으로, '코블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셰이커이기 때문에 코블러 셰이커로 불린다. 코블러란? 19세기 철도 시대를 풍미한 미국의 칵테일인 셰리 코블러Sherry Cobbler를 말한다. 19세기 이미 찰스 디킨스가 언급하였듯이 셰리 코블러는 코블러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있었으므로 이견의 여지는 없다.[1] 그렇다면 셰리 코블러는 뭐하는 물건인가? 1820~1830년대에 등장한 미국의 칵테일으로 19세기 전체를 풍미했던 대중적인 음료이다. 셰리에 설탕, 시트러스 주스 정도를 넣어서 만드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립된 하나의 레시피의 존재보다는 흐릿한 정의만이 철도를 타고 전국에 유통되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헌을 뒤져 당시의 흔적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디킨스의 언급과 같이 대부분의 문헌은 코블러의 맛을 표현하거나 칭송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그러나 위 사진의 삽화는 하나의 예외로 코블러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페이지는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사는 1만명의 삶을 연구하고 기록한 The Upper Ten Thousand의 내지 삽화로, 전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셰이커에 내용물을 채우는 듯한 동작에서 당시 번성한 얼음 무역과 함께 셰이크 스타일이 정착되고 있는 칵테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는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셰리 코블러 레시피의 기록인데, 요리책이 아닌 문학지에 게재된 소설 내의 언급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주목할 만 하다. 해당 대목에서 기록하기로는 "Powder your fine white sugar, or crystal candy, and sprinkle the mass through a sieve, over a tumbler of pounded ice—every particle of which is broken into lumps not larger than a pea. In another vessel, pour two wine glasses of pale gold sherry over the fine cut peelings of half a lemon—peelings which have suck’d into their pores sufficient acid from the ripened pulp, to make the pungent rind flavored like a China orange—and then, for a minute or so, suffer the spirit of the wine to extract the rich aroma. Next, dash the contents of one tumbler to the other, till fruit and fluid, ice and sugar, sweet and sour, warmth and frost, are mixed and married, by this delicate ‘runaway’ process, and the dew of their bridal-kiss coats the sides of the vessel with a creamy veil. Then—allowing the new married couples to cool from the first extatic moments of their swimming embrace,--you sip the delicious pair in the dreamy elysium of their 'honeymoon!'"[2]
얼음을 콩알보다 작은 크기로 부순다는 점에서 구두장이보다는 자갈같은 얼음에서 이름을 따왔을 가능성을 높게 치며, 제리 토마스의 1862년 책 역시 빙수 얼음shaved ice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점이 이러한 추측에 무게를 더한다. 왜 브루클린의 바텐더는 잔 얼음, 셰리와 당, 산으로 만드는 간단한 칵테일을 위해 셰이커까지 새로 만들었을까? 이러한 레시피에 있어 셰이크라는 과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틴 온 틴 형태의 보스턴에 비해 공기가 적다는 점이 가장 주효하겠지만 초기 파인트 잔에 뚜껑을 씌운 형태였던 19세기 말의 코블러에 비해 전반적으로 둥글어진 특유의 형태, 그리고 캡 스트레이너 부분을 지나면서 반복적으로 스트레이너를 지나는 과정이 액체에 더해지는 등 코블러 셰이커에는 측정하기 어려운 여러 차이가 존재한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형태이지만 일본에 칵테일이 전래되는 시기 호텔 칵테일에는 보스턴이 아예 없었다는 일본인들의 역사적인 증언을 감안하면 이러한 코블러의 디테일은 셰이크에 생각보다 중요했던게 아닐까? 물론 단순한 도구인 만큼 단지 셰이커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큰 차이를 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드러내는 방식일 것이다. 19세기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이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지만, 셰리 코블러의 레시피는 셰이크를 하는 대상을, 그리고 코블러 셰이커의 형태는 셰이크를 하는 이유를 각각 지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코블러의 사이드카는 이를 짚어내는 맛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왜 코블러인가.
사이드카는 그래도 코블러이기 때문인지(?) 조금 저렴했다면 납득할 만한 정도였지만, 네그로니는 단순히 투박하게 만든 것을 넘어 만드는 미학이 아예 동의하기 어려운 방식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런던 드라이 진과 캄파리의 쓴맛이 안티카 포뮬라 특유의 바닐라 향을 아예 죽이는 것을 넘어 쓴맛이 입맛을 당기기는 커녕 꺼리게 만드는 정도였다. 어떻게 네그로니를 이렇게 만든단 말인가? 바텐더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 설명했다. 온 더 록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쓴맛이 줄어들 테니 기다리면서 마시는 칵테일이라고. 세상에 그런 칵테일도 있었나? 직접 구워먹는 삼겹살 같은 칵테일이 주력 메뉴라면 매장 한 켠에는 상추 대신 가니쉬 셀프 바가 설치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