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크루다 - 타코의 맛
짧지 않은 시간동안 장소와 이름이 바뀌다가(이전에는 파코 어쩌고였다) 정착한 라 크루다를 찾았다. 왜 타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 타코에 대해서 글을 하나 쓸 요량으로 점심으로 타코를 먹었다. "날것"이라는 이름부터 메뉴판과 음료에 이르기까지 타코를 주인공으로 하여 무슨 요리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주관이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타코에 대해 여러분은 만족스럽게 이야기하고 계신가. 재미교포와 단기 여행자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타코에 대한 의견이 있다. 소프트 쉘 타코를 먹는 나를 보고 타코를 몰라서 그런 걸 먹는다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고 「타코 연대기」나 국내의 몇몇 식당을 통해 타코를 접한 이들은 나의 타코를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타코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일련의 답을 찾아서 이곳의 세 종류의 타코를 먹었다. 음료까지 2만 원 정도를 결제했으니 결코 단순한 끼니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뉴욕 복판의 미슐랭 1스타 타케리아인 Casa Enrique의 가격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물론 한국에 애초에 저렴한 타코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므로, 감안해야 할 것이지만, 적어도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미국의 대도시에서보다 통상 가처분소득이 많다고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KRW 5000~6000의 요리, 하나로는 도저히 끼니를 떼울 수 없으므로 KRW 10000부터 시작하는 요리는 그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러한 배경에서, 타코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식이 아닌 멕시코 스타일 타코란 무엇인가. 사실 멕시코도 지역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시도고, 텍스-멕스, 캘리-멕스 등의 미국 타코와의 구분점에서 구별의 이익이 있겠다. 그를 통해 인지되는 지점은 통상 물기가 많은 야채들 대신 향신료와 허브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고기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만일 치즈가 사용될 경우 치즈가 아예 다르며(멕시코 치즈 종류가 따로 있다) 그마저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단아한 구성은 탄수화물의 부분vehicle과 중심이 되는 고기라는 구성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이 단순한 짝은 인류의 몸에 새겨진 성서와도 같아서, 우리는 두 가지를 한 번에 베어물 때 지방과 단백질이 전하는 에너지를 더욱 강렬하게 느낀다. 밥 위의 생선, 빵 위의 고기. 특히 두 가지를 한 번에 베어무는 행복은 영원불멸하다. 식감의 풍성함이나 맛의 다양성을 채워주는 것들이 부피를 채우는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온전히 고기를 느끼며, 요리사는 고기에 미리 양념과 같은 맛의 켜를 높여줄 요소들을 조립이 아닌 방식으로 개입시켜 타코의 매력을 다채롭게 한다.
이외에도 따지자면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타코를 짧게 세 문단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타코의 몸통이 되는 토르티야와 먹는 이유가 되는 필링, 그리고 두 가지의 조립으로 완성되는 타코다.
첫째로 토르티야다. 스시의 샤리, 한식 차림상의 밥이 차지하는 자리에 반죽을 빚어 굽는 토르티야가 있다. 가장 먼저 무엇을 구울 것인가. 토르티야라고 퉁쳐서는 안된다. 기타오오지 로산진은 스시에 쓸 쌀을 찾아서 열도 전역을 뒤졌다.(그리고 그 결과로 찾아낸 후쿠시마의 쌀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다행히도 우리가 그런 어려운 길을 걸을 필요는 없고, 선조들의 지혜를 빌릴 수 있다. 일단 가루다. 옥수수가루가 기본값으로 보이지만 타코의 고향이 구대륙인 관계로 당연히 밀가루도 가능하며, 교잡도 가능하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데, 가루에 대한 가공방법도 문제다. 신선한 옥수수를 그대로 써서 닉스타말화Nixtamalization, 옥수수를 라임 등의 알칼리 용액에 담그는 과정를 거친 마사Masa가 통상적으로 가장 선호되나, 현실적인 이유로 작은 주방에서는 말려서 가루로 내서 판매되는 마사 하리나Masa harina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호의 경우 신선한 마사가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옥수수를 직접 가공하지 않는다면 사파다 식의 극단적인 주장도 있는 바, 논쟁적인 영역이므로 가치판단의 경우 여러분의 판단재량을 존중하겠다. 밀가루를 쓴다면 이러한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지만 프랑스의 빵처럼 타코를 위한 밀가루가 오래동안 연구된 적은 없고, 통상적으로 효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만족스러운 시간동안 열에 노출되지 않으므로 밀가루는 실패일 공산이 크다. 물론, 어쨌거나 반죽을 굽는 빵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발효의 개입도 생각해봄직 하며 실제로 수행하는 이들도 있다. 플랫브레드라고 꼭 성체같은 맛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그리고 정교회식 예식에서는 성체도 발효를 한다.) 대표적으로 샌 프란시스코의 Californios에서 멕시코 요리를 하는 Val M. Cantu같은 셰프가 사워도우 토르티야를 굽는다.
대충 굽기 전의 이러한 선택들에 대해서 결정이 끝났다면, 반죽을 잘 보관했다가 구우면 된다. 보통 전용으로 반죽을 누르는 도구를 쓰는데, 두께는 속의 선택에 따라 갈릴 수 있겠지만 얇은 것이 선호된다. 본연의 역할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맛을 가리기 쉽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기호는 1/8 인치(약 0.3175cm) 미만일 것을 권하며, Empellón에서 타코를 빚는 Alex Stupak같이 창조적인 인물도 1/2인치 밑으로는 타협하지 않는다. 노릇하게 굽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류가 보통 느끼는 적절한 지점이라는게 고찰 없이도 존재한다고 말하고 귀찮으니 생략하겠다.
둘째로 속이다. 속이 타코의 이름과 성질을 결정한다. 사바보우즈시와 육회비빔밥의 이름이 결코 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 않듯이, 타코의 이름은 속을 채우는 덩이들에 달렸다. 종류나 조리법은 굳이 열거하지 않겠다. 다만 통상적으로 적어도 한 입을 베어무는 과정에서 끊기거나,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크기로 이미 잘리거나 찢긴 것들이 채워진다. 손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열에 매우 오랜 시간 조리하여 부드러운 종류가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인 주방의 사정을 고려할 때 빠르게 볶거나 구워낸 것들도 들어간다. 어쨌거나 이곳의 맛이 곧 타코의 맛이며, 무엇을 넣느냐가 곧 어떤 요리를 하는지를 결정한다.
셋째로, 이 두 가지가 만난 타코다. 반달 모양으로 된 타코의 온도는 지나치게 뜨겁지 않도록 레스팅을 거쳐야 한다. 가운데부터 먹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쏟아지는 참사를 우려하여 귀퉁이부터 먹어들어가는 경우를 기본으로 상정한다면 통상 네댓 입에 걸쳐 진행되는 식사를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접어서 드는 순간 꽤 숙련되지 않은 이상 무게가 쏠리는 가운데에 속이 밀려드는데다 끝부분은 토르티야가 좁기 때문에 토르티야의 맛이 강해지고, 가운데는 속의 맛이 지배한다. 이를 단지 실패로 정의하여 고른 한 입으로 만들지, 경험의 시간대를 미분하여 각각의 맛을 다르게 설계할지는 요리사의 의도에 달렸다. 치즈나 토마토, 양배추 등을 채워넣는 미국 타코에서 주로 논의되는 지점이지만, 부피가 결코 크지 않은 향신료, 이를테면 고수 잎같은걸 올린다면 멕시코 타코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살사나 과카몰레같은 소스의 개입을 염두에 둘 경우 통상 소스가 올라가는 방식 또한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지점에서, 라 크루다의 타코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다. 라 크루다는 직접 만든다는 토르티야를 쓴다. 확실히 밀가루의 빈 맛은 아닌데, 과연 이 토르티야가 마사로 빚은 신선한 토르티야의 선봉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맛이었다. 어떤 옥수수를 쓰는지, 아니면 옥수수 가루를 받아서 쓰는지는 몰라도, 옥수수의 강점은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판 밀가루와의 차이는 선명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처한 환경 탓을 해야할까. 어떤 옥수수인지, 아니면 콘밀같은 가루인지 몰라도 해답은 될 수 없어보였다. 에일룸 옥수수를 쓰는 Cosme나 Claro같은 특별한 곳들을 제외하더라도, 푸른색이나 검은색 옥수수, 심지어는 흰색 또는 노란 옥수수 중에서도 맛을 염두에 두고 키운 것들을 쓰지 못하는 점은 나를 슬프게 한다. 적절한 두께로 타코를 맛보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타케리아의 얼굴이 이 토르티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요리사도 아마 고민이 계속되고 있을 테다.
알 파스토와 초리조, 그리고 트리파스 세 종류를 먹었다. 라드를 조금 더 넣어 기름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알 파스토는 그야말로 르브론 제임스의 방정이 떠오르는 평범하고도 올바른 맛이었다. 킁킁대며 정신없이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단연코 이곳의 주인공은 트리파스다. 기름진 내장은 토르티야를 적실 정도이지만 곧 탐닉하게 만든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 이 좋은 재료를 불판에 내몰기만 할까, 그 덕에 타코 하나가 육 천원이라는 사실이 애석해지지만 맛보는 재미만큼은 잘 살아있다. 다만 많은 내장 중 곱창만을 사용한다는 점은 역시 아쉽다. 기름져서 매운 맛과 곧잘 달라붙지만, 내장의 쌉싸름하거나 동물적인 풍미를 더할 수 있는 방식이 멕시코에서는 썩 흔하지 않은가. 돼지 내장같은 경우 가정에서 소매로 구매해도 좋을 정도로 값싸기도 하다. 물론 요리사가 모르랴. 인터넷에서야 별의별 미식가들이 있는 것 같아도 알고 있는 모양으로 알고 있는 부위가 나오는게 아니면 미간을 찌푸리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인 도시다. 신선도의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거기까지 생각한다면 너무 가는 것 같지만. 곱창을 잘근잘근 씹어보면 못해서 안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결론적으로, 라 크루다의 타코는 여전히 타코의 기본값으로서 먹을 수 있는 맛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계절을 보낸 관계로 고수의 향이 좀 옅었지만 짭조름한 속은 가끔씩 또 생각날 테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재현을 꿈꾸는 타코는 일상으로 스미기에는 몸값이 지나치게 뛰고 말았다. 과연 이런 재현이 우리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가. 솔직하게 말해 크게 긍정적이지 않다. 지옥같은 밀밭에서 옥수수의 짐을 지고 버티고 있는 덕에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이것이 옥수수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까는 또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버티기만 해서는 미래가 없다. 이 도시의 찬바람은 맛을 더 절벽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가만히 버텨 서다가는 뒷걸음질만 연신 하고 만다.
타코 이외의 메뉴의 구성에서 드러나듯이, 나는 그들의 열정을 높이 산다. 이곳은 단순한 타케리아를 넘어서 멕시코 요리 전반을 주제로 하는 곳이며, 적당한 수준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그 맛의 위대함을 요리하고자 하는 열정을 지녔다. 멕시코 요리가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릴지까지 결정할 수 있다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밀가루 토르티야로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료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빨대가 음료의 바닥을 빨아들일 즈음에는 텁텁한 가루들이 올라오는 게 파우더가 덜 녹은 것 같았다. 파우더를 쓰면 안된다는 게 아니고, 기왕에 쓰는 거면 이런 식으로 잘 만든 음식의 그림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