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Bernardin - 2022년 여름

Le Bernardin - 2022년 여름

Le B에 대해 이제 더 할 말이 있을까? 도시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레스토랑에 대해 굳이 널려있는 찬사의 동어반복문을 게재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베르나르댕을 독해하는 것은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예약이 어려운 레스토랑이므로 좋고 나쁨을 떠나 게재 대상으로는 탈락할 레스토랑이지만 퍼 세가 워크인을 닫은 2022년 워크인으로 방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 이날은 저녁의 테이스팅 메뉴가 아닌 가벼운 점심의 워크인의 관점으로 작성하려 한다.

방문 전
르 베르나르댕의 예약은 Resy 또는 전화로 가능하지만 1달 전에 마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바와 라운지는 워크인 방문이 가능하다.

요리
이날은 개인적으로 알라카르트를 추가하였으므로 본래 제공되는 식사와는 구성이 상이할 수 있다. 본래 점심 메뉴는 3코스로 구성된다.

“Le Bernardin” Salmon Rillette with Toast

르 베르나르댕을 르 베르나르댕으로 만들어주는 연어 리예뜨는 백후추와 차이브의 향긋함, 연어와 마요네즈의 풍성한 지방 덕에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지만 그보다도 이 요리가 의미있는 지점은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브르타뉴 출신으로 해산물 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업스케일 프렌치라는 전무한 컨셉트로 맨해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셰프 질베르의 정신은 에릭 리퍼트에게 이어지고 있으며, 그 정신을 상징하는 요리로 이 리예뜨가 있다. 단순하고 영민한 구성이라는 조리 방식, 그리고 해산물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도전정신. 레스토랑의 주제의식이 한 입에 다가온다.

작은 반죽을 구워낸 뒤 다시 얇게 잘라 바싹하게 굽는 바게트는 빵으로서 아주 맛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리예뜨를 위한 매개체vehicle임과 동시에 부드러운 리예뜨를 충분히 씹도록 만들어 입안에서 리예뜨가 전체적으로 맛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

Layers of Thinly Pounded Yellowfin Tuna; Foie Gras, Toasted Baguette, Chives, Extra Virgin Olive Oil
Albariño, Bodegas Forjas del Salnes, Leirana, Rías Baixas, Spain 2021

연어 리예뜨가 르 베르나르댕의 정신을 보여주는 단순한 요리라면, 황다랑어로 만드는 참치 카르파치오는 이곳의 요리의 정수를 담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조리를 거친 등푸른생선과 바싹 말린 바게트라는 컨셉을 공유하면서도 극단적인 수준에서 완성된 이 요리는 레스토랑에서 특별히 시그니처로 정한 적이 없음에도 당연하게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크게 이해하자면 이 요리는 "Pounded"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얇게 포를 뜨듯 써는게 아닌 짓눌러서 얇게 펴는 방식으로 만든 황다랑어 카르파치오이지만, 푸아그라, 차이브, 바게트와 합쳐져 하나의 마법으로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질감에 있어서는 카르파치오이지만 극단적으로 지방이 높은 A등급 푸아 그라와 바게트로 이어지는 3단의 대비가 이 요리를 카르파치오 이상의 카르파치오로 만든다.

동아시아권에서는 그다지 높은 취급을 받지 않는 황다랑어이고, 실제로 이 요리에서 다랑어 특유의 향은 주제가 아니다. 굳이 주인공을 꼽자면 푸아 그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 짚자면 전체의 합이 핵심에 가깝다. 바탕이 되는 바게트와 가락을 엮는 차이브가 지방과 단백질을 감싸는데, 풍성한 지방이 입안에 들어차면서도 충분한 짠맛과 감칠맛, 그리고 복잡한 향이 요리를 맛보는 내내 강렬하게 다가온다. 짠맛과 지방이 요리 전체를 맛보는 내내 이어지는 것이 참으로 내가 서양에 오기는 왔다는 생각을 들게 하면서도(그동안 얼마나 많은 밋밋한 요리를 먹어왔는가!) 단순히 짜고 부드럽고 입맛이 돋아서가 아니라, 그 와중에 어느 것도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다는 점이 나를 만족시킨다. 책에 실린 지도 십 년이 넘은 요리이며, 질베르의 원전에 레퍼런스를 둔 요리인 만큼 요새의 요리들이 내세우는 특이함이나 놀라움, 정치적인 훌륭함과 같은 요소는 적다. 하지만 그 여느 요리보다 르 베르나르댕, 에릭과 질베르라는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리로서 흠결이 없다.

알바리뇨와의 짝짓기 역시 솜씨가 참 빼어나다는 인상을 주는데, 과실향이 강한 와인으로 카르파치오에 산뜻한 인상을 더해주면서도 서로의 산미가 이어지니 서로가 서로를 보챈다. 얇다고는 하지만 이 접시를 비우는 시간은 예상보다도 더 빨랐다.

Warm Octopus; Squid Ink Fideos, Chorizo Emulsion

연어-참치가 르 베르나르댕의 전형성을 상징한다면 문어 요리는 신세대의 르 베르나르댕을 보여주는데 과장 좀 보태서 기함할 맛이었다. 갈리아식 문어를 바탕으로 문어와 초리조의 잘 알려진 궁합을 큰 얼개로 삼는데 여기에 범-스페인어권, 라틴 아메리카(정확히 멕시코)를 떠올리게 만드는 피데오 파스타를 사용해 방점을 찍었다. 먹물과 함께 조리한 피데오를 문어로 덮는 방식으로 문어 자체를 묘사하는 플레이팅은 단지 재치있는 정도를 넘어서 맛보기의 합목적성을 더한다. 질감의 대비를 극대화한 문어는 피멘톤이나 초리조 등 스페인어권 특유의 향으로 매혹하며, 씹는 감각은 피데오로 이어지는데 양자간 간이 된 정도는 물론 씹는 정도까지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질감이 중요한 두족류 조리로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피데오에는 특유의 맛이 잔향으로 남아 문어 하나를 완전히 요리한다는 즐거움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요리 역시, 아주 만족스럽게 짜고 따스하다.

바게트를 제외하면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 빵. 이 날은 미국 정취를 물씬 풍기는 디너 롤과 이탈리아식 치아바타가 올라와 꽝이다 싶었는데 치아바타의 강렬한 바질향이 나의 예측을 보기 좋게 틀리게 만들었다. 베르나르댕의 바게트는 아티장 바게트에 가까운 발효나 반죽을 보여주지도 않고, 뭉툭하게 성형한 뒤 높지 않은 온도에서 굽는 전형적인 안전제일 바게트로 멋을 뽐내지 않지만, 다른 빵들은 제각기 다른 즐거움을 준다. 바질이 들어간 치아바타는 통상 이런 식사 중에서 열에 예닐곱은 NG라고 생각하지만, 이 치아바타는 예외였다!

Poached Skate; Pickled Tiny Sweet Peppers and Fried Capers, Brown Butter Sauce
Dill Basmati Rice
La Bota de Florpower 77, Andalusia, Spain 2017

르 베르나르댕의 핵심을 원한다면 도버 솔을, 3대 진미와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랍스터를 골랐겠지만 기왕이면 테이스팅 메뉴에 올라오지 않는 요리를 먹고 싶어 가오리를 골랐다. 가오리 자체는 단품으로 꾸준히 존재했지만 꽤 여러번 변화를 거쳤는데, 큰 틀에서 뵈르누아제 와 새싹을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바뀌었다. 이번 가오리는 소스 뵈르누아제를 쓰면서도 빵이 아닌 바스마티를 곁들이는 요리라기에 자못 궁금증이 있었는데, 어느 면에서는 뻔했으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오리는 전형적인 열조리의 결과물이면서도 고전적인 팬 프라이가 주는 겉면의 향긋함이 없어 처음에는 크게 실망했다. 바스마티는 그 자체로 위대한 향을 지니고 있는데 딜을 개입시켜 향은 풍성하지만 뵈르누아제와 가오리의 단백질, 지방만으로는 그들의 향을 지탱할만한 맛(taste)이 부재했다. 하지만 튀긴 케이퍼를 씹고 그 의중을 알아챘다. 주인공은 가오리가 아니라 케이퍼에 있었다. 바삭하게 튀긴 질감은 결따라 부드럽게 다가오는 가오리와 완벽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강렬한 짠맛과 향기 역시 그랬다. 날개의 가락을 따라 파고들어가는 유희 따위를 연출했을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뵈르누아제, 분필 같은 향과 신선한 목초를 떠올리게 하는 강한 와인의 설정이 이제서야 다가왔다. 가오리를 바탕으로 거꾸로 쌓아올린 요리였던 것이다.

Pistachio Praliné, Grand Marnier Bavarois, Pistachio Ice Cream

이번 봄에 셰프 파티셰가 새로 낸 디저트는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리 르 베르나르댕의 파티셰라지만 감히(?)라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컨셉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원래 성질대로라면 아이스크림 4스쿱을 홀로 해치웠겠지만 서버와의 상담 끝에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기본적으로 식사를 마치는(des/servir) 역할을 우선시하여 피스타치오의 지방을 빛낼 수 있는 짠맛의 개입은 제한적이고, 견과향에 전부를 투여하기보다는 균형을 살렸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크넬 한 숟가락에서는 순간적으로 피스타치오 한 알이 전부 스쳐지나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어쨌거나 좋은 피스타치오를 마음껏 쓸 수 있는 팔자 좋은 아메리카, 그런 느낌이었다. 좋은 견과에 메마른 동아시아인에게는 너무나 부드럽고 균형감각은 지나치게 좋아 슬픈 디저트였다. 르 베르나르댕이 추구하는 맛의 질서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관광객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Mignardise

르 베르나르댕에는 기문 홍차와 재밌는 민트 차가 있다.


총평: 르 베르나르댕은 여전히 고유한 스타일과 흠 없는 완성도를 지탱하고 있었다. 어릴적 두 남매에게 아버지가 들려주곤 했던 노래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에릭 리퍼트는 질베르 르 코즈의 후임으로서 그가 정립한 레스토랑의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문어나 피스타치오의 예시가 보여주듯이 시대에 어울리는 감각을 더해 레스토랑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재료를 부각하는 요리를 하지 않고, 접시 안에서 완성된 내러티브를 추구하는 르 베르나르댕의 요리에는 실패가 없다. 그렇지만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곁들이며 세계를 향해서도 열린 감각을 선보이고 있기에, 르 베르나르댕은 여전히 세계인 누구에게나 탐닉하고픈 공간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언제나 여유로운 라운지와 바 테이블이 있기에, 르 베르나르댕은 맨해튼 최고의, 혹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워크인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 높은 층고와 목재가 제공하는 고풍스러움과 편안함. 활기를 느낄 정도이지만 불쾌하지 않은 정도의 간격과 음악.

서비스: 실은 맨해튼에서 이정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은 충분히 많다. 하지만 서버들이 요리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안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태도는 업스케일 레스토랑에게 요구되는 규격을 만족하고 있다.

가격: 자선 점심 메뉴 $95, 일반적인 점심 코스는 $120.

음료: 프랑스와 미국 컬트 위주의 막대한 셀렉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짝짓기로는 구대륙의 소규모 생산자들을 적극적으로 택하는 등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가격에 대해서는 각오해야 하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