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페셰 미뇽 - 디저트의 모습
녹사평 언덕께의 르 페셰 미뇽, 종종 발걸음을 했음에도 이곳의 디저트에 대해서 제대로 말한 적이 별로 없었다. 많은 경우 누군가와의 기억 정도로 스쳐지나갔던 정도 뿐이다. 다른 환대를 받는, 인식되는 객들이 있으니 굳이 내가 그 행렬에 낄 일이 있으랴.
그럼에도 문득 나를 붙잡는 맛이 있었다.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가 생기겠구나. 결코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오픈 시간에 왔다. 몇 분의 여유를 주었던 감사함이 무색하도록 이 시간부터 내 뒤로 가게가 가득 차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새 디저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이다. 어디에나 줄이 다닥다닥 붙어 곧 텅 비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하다. 그래도 여기는 오면 곧바로 앉을 수는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투고를 선택한다면 맛보는 것은 무난하게 가능하므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보통 하루에 네 가지가 준비되는데, 이 날은 모두 같은 몰드를 사용한 물건이었다. 최소한 세 종류가 항상 이 몰드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째는 잔두야를 채워넣은 통카, 둘째로는 GF로 쌀가루를 쓴, 패션후르츠였다. 생과보다는 발로나의 인스피레이션 라인의 패션후르츠가 주제였다. 발로나 하면 1986년의 과나하가 카카오매스 70%..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피곤할 뿐이다. 베이크플러스나 발로나나 같은 사벤시아의 자회사라고 하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겠나. 패션후르츠라는 과일에 대해 접근하는 다른 하나의 편리한 방식으로 이해할 뿐. 주제로 패션후르츠를 선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추천을 받아 곁들인 홍차 한 잔에 케이크와 언덕배기의 태양을 즐기니 온연한 가을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가을이 아니라 케이크 이야기를 해야지. 모든 부분을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오늘은 극히 일부분만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먼저 맛본 반구의 디저트는 통카와 타트 체리, 초콜릿이었다. 신 맛이 나는 체리는 한국에서는 불행하게도 아사이베리 등 기타 베리류와 함께 건강기능식품, 미신 유사의 무언가로 소비되는게 대부분인 이상 맛에 대해 놀라운 점은 없었다. 출처가 국산이 아닌 코스트코였을지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의 수입품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감상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반대편의, 단맛 뿐인 체리와 비교하면 디저트에서 나름의 역할은 있지만, 주제의식으로는 써먹을 수 없는 평범한 맛의 체리. 그리오트라는 이름이 Prunus cerasus에 속하는 아종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관계로, 또 내가 마멀레이드에 쓰인 체리의 속사정까지 때려맞추려고 디저트를 먹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 이상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아래에는 초콜릿으로 적신 시트가 깔려있었다. 둘째는 사블레를 쌀가루로 구운 것 위에 레몬과 머랭의 고전적인 조합을 얹었다. 두 가지 모두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붙잡는 것은 동그랗게 둘러싼 무스였다. 통카의 향을 살린 첫 조각은 전형적인 가볍고 부드러운 무스에 통카를 인퓨징한 것 같았다. 전체적인 신맛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패션 후르츠 또한 무스로 녹여내어 연출했다.
무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공기처럼 가볍고 크림처럼 진한 달콤함은 무스의 존재 이유다. 크림과 설탕, 달걀 안에 맛을 채워넣는게 기본적이다. 계산이 되어있다면 원하는 질감을 위해 젤라틴을 쓰거나 물이나 우유도 쓸 수 있다.(대표적인 예시로 피에르 에르메의 "네모"에 들어가는 사바용 무스가 물이 들어간다) 어쨌거나 보통 목표는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덧없이 풀리는 그 질감에 있고, 이는 디저트를 구성할 때 시간의 배열에 있어 가장 앞서고, 또 경험의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할 맛이 위치하는 자리가 된다.
그런 무스에 전체적인 디저트의 인상이 담긴 점, 또 무스를 보좌할 내용물들이 나름의 문맥을 갖추 있는 점에서 일상에 곁들이기에는 무난하다. 다만 차 한 잔에 케이크 하나를 고르면 이만 원에 살짝 모자란 가격을 결제하는 상황은 이 디저트를 일상의 영역에서 끌어낸다. 경우에 따라 빈도가 다르겠지만 특별한 디저트의 영역이다. 곁들이는 차가 다만 프레르였음을 감안하면 디저트의 레벨 또한 결코 낮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한 차원 위의 디저트로서 이 무스들은 어떠한가.
무스들이 모두 몰드에 넣고 굳혀 나오는 형태라는 점에 가장 먼저 의문을 표해본다. 무스를 쓰는 디저트라면 베린이 기본적인 옵션이다. 무스 오 쇼콜라라는 디저트의 고전은 너무나도 명확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애초에 대두 레시틴같은 현대 요리의 무기를 갖춘 발로나 인스피레이션을 쓰는 이상 그러한 고전적 형식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에 무스를 씌우고 굳혀 속을 감추는 형식은 나름의 재미를 준다. 일종의 반전과 같은 매력. 달콤한 무스-새콤한 마멀레이드와 같은 반전은 재미난 자극을 준다.
그러나 숟가락을 쓰는 베린도 아니고, 가운데가 봉긋 솟은 이러한 몰드에는 명확한 단점도 있다. 첫째로는 포크와 칼을 이용한 취식과의 궁합이다. 어떤 방향으로 사용하더라도 직선적으로 분할하는 칼이 개입하는 이상 이 디저트의 내용물들은 한 입 한 입마다 각 구성들의 비중이 들쑥날쑥해질 수 밖에 없다. 무스의 두께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이상 첫 입에는 바깥의 무스가 지배적인 경험이, 뒤로 갈수록 속에 채운 것들이 지배하는 간극이 생긴다. 이를 만족스럽게 고려했는가. 통카의 섬세함을 쉬이 잃고 만다.
다음으로는 그러한 지점을 감안했을때, 전체적 경험에 대한 고민이다. 두 무스들은 같은 모양임에도 다른 탄수화물을 가지고 있다. 쌀가루 사블레는 고소한 맛이 참으로 좋았지만 패션후르츠 무스가 보통 퓌레로 레이어를 쌓는 형식이 고전적임을 감안할 때, 그러한 강렬한 신맛의 켜가 빠진 데 사블레가 개입하니 과연 많은 과실중 왜 패션후르츠인가에 대한 질문에 만족스러운 해답이 서지 않았다. 과실의 품질 따위를 떠나서 패션후르츠를 무엇으로 생각하는가라고 했을 때 답이 또렷해보이지 않았다.
퀴진의 영역에서, 단 맛의 영역sweet world으로 구분되는 디저트의 세계는 인공미를 이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영역이다. 설탕과 열을 이용해서 어떤 모양도 만들 수 있고, 그러한 모양도 요리의 일부를 이룬다. 특히, 지금과 같이 모든 디저트가 같은 모양이라면, 모양은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게 된다. 나는 디저트 세계의 이러한 아름다움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한 점에서, 본 몰드의 형태를 논하는 데 있어, 시각적인 반전 요소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자르는 과정에서 그러한 발견하는 기쁨이 없을 경우 이 몰드의 형태에는 여타 디저트의 매력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나는 그러한 단점을 더 크게 느꼈다.
과연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에 따라서 답은 달라질 수 있으며, 먹는 사람도 이 두 무스 케이크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맛은 주관적이라며 disclaimer를 달지 않는가. 다만 서로 다른 시각이라면 최소한 무슨 시각인지는 이야기하는게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 요리의 맛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경험의 외관을 고려했다. 텍스트로 소개되지 않는 대신 길쭉한 말로 이어지는 디저트의 소개 방식과 가격, 곁들이는 음료와 공간의 연출 등을 감안했을 때, 이 디저트가 일상에 봉사하는 것을 넘어서 요리의 특정한 스타일, 또는 요리사 스스로의 주관 등을 주제의식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디저트로 스스로를 위치하고자 하는 맛으로 이해했다. 특히, 흔히 고전적인 디저트들은 구성요소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쓰인 재료들이 열거된다는 점은 명백한 누벨 퀴진 이후의 영향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이 디저트는 나에게 많은 의혹을 남긴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단지 본능에 따라 탐닉해도 좋은 디저트라면, 그 의문들은 곧 해소될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렇지 않으리라 믿으므로, 계속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