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alon privé - 위대한 사소함
액체질소로 만든 소르베는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 소르베와 겹쳐 내는 샴페인에서 특별함을 맛보았다. 나리타 카즈토시가 샴페인을 대단히 좋아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닌데(그는 파티셰지만 크룩 앰버서더를 하고 있다), 흔히 빈티지 KRUG 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의 샴페인이 아닌 어쩌면 조금의 단맛이 남은 새로운 샴페인을 빚어낸다. 드라이하지 않은 샴페인에 약간의 소테른을 넣어 만드는 그의 즉석 칵테일은 드미 섹을 넘어선 무언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표현을 빌리자면 디저트와 함께 식후주로 기능할 수 있는 샴페인. 여건상 완벽한 것이라기보다는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음료로서 의미가 있었다. KRUG과 디켐으로 만든다면 더 나은 것이 나올까? 그렇지는 않겠다(웃음).
메뉴가 별도로 기재되어 있지 않기에, 바바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것이 바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바라, 참으로 오래 찾아다녔던 물건이다. 파리 최고의 바바를 찾아 나서기까지 했던 내가 아닌가. 물론 여전히 나는 아직 바바를 찾고 있다. 그리고 결국 나리타의 바바 역시, 어쩌면 같은 결론을 내고 있었다. 큰 틀의 얼개는 적신 반죽의 촉촉함, 그리고 씹을 때 터지는 듯한 숙성 증류주의 노트, 바닐라와 오크를 동시에 연상케 하는 맛. 하지만 현대의 훌륭한 파티셰들은 파리의 대스승부터 파주 얀 쿠브레 공장의 모 선생님까지 모두 같은 묘기를 내는데, 바로 열대과일 향의 개입이다. 이 바바는 콤포트를 아예 개입시킨 것으로 내가 찾는 보수적인 바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오트 퀴진의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바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기에 수긍했다. "결국 바바는 그냥 하나는 다 못 먹는 것"이라는 파티셰들의 작품을 통한 의견 개진은, 시대의 아쉬움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으나, 결국 바바의 행복함이란 파인애플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첫 한 입, 그리고 럼을 한껏 부어 다시 살아나는 다음 한 입에서 증명한다. 앞단계에서는 크림의 고소한 맛이 그야말로 풍경을 압도하고, 다음은 럼과 바바가 이어내는 갈변의 하모니. 여기에 럼 아그리꼴의 풀향을 열대과일의 가벼움으로 이끌어내면서 현대적이고 다차원적인 바바를 완성해낸다.
수플레와 "초콜릿 수프"는 아직 주방에서 전처리 과정을 복잡하게 수행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초콜릿만으로 놀라움을 연출했다. 수플레는 ESqUISSE 시절부터 그가 항상 포함시키던 것으로 사실 주방 시설과 인력이 축소된 환경에서는 그것의 재현을 일차적으로 바랄 수밖에 없으나, ESqUISSE의 수플레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수플레에 관해서는 가니에르의 해석이 정론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상단의 바삭함이 하이라이트가 된다는 점이다. 무르고 푹신한 질감의 수플레의 보디는 열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는 상단 표면에서 강한 대비로 촉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첫 한 입이 곧 그 수플레의 인상 전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나리타의 수플레는 일단 융기한 용기를 벗어난 것부터가 일종의 파격이지만, 나아가 점도 없이 맑게 거른 초콜릿에 담근 아랫부분이 하이라이트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파격을 보인다. 허브향을 위시로 후각을 자극하는 릴렛, 그리고 그러한 녹색과 꽃향을 이어받는 초콜릿의 노트가 "짝짓기"처럼 이루어진다. 좌단의 핵과 크넬은 초콜릿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느낌. 이 지점에서 결국 디저트에서 맛을 증폭할 수 있는 짝짓기라면 알코올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정도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케이크부터 칵테일에 이르기까지, 식후 기호품의 영역은 절대적으로 Sweet & Sour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맛(flavor)과 향(aroma;odor;smell;notes;)을 그려내는 작업인데, 이러한 문맥에서 알코올 특유의 성질이 매우 유익하다. 식중주로서 대부분의 증류주가 음식이 가진 맛을 끌어내기보다는 팔레트 클렌져의 역할을 수행한다면(우리의 소주가 그렇다) 식후주의 세계에서도 증류주와 음식의 호흡에 비하면 커피나 차의 호흡은 온도감으로 다스리는 느낌에 가깝다. 물론 예외는 있겠으므로, 속단은 금물이다.
이 '캐러멜 공' 역시도 나리타 카즈토시의 요리 인생을 보여준다고 할 만큼 오래도록 깎아온 물건이므로,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다룰 여지는 많지 않고, 심지어 이날은 원본과 달리 트러플이 아닌 딸기를 사용한 버전이었으므로 더욱 독자에게 득이 되는 요소가 적지만(재현의 가능성이 적다) 굳이 따져보자면, 딸기와 카베르네 소비뇽을 어울러낸 감각에 주목할 수 있다. 정제된 과실미를 담아내기 위한 용기로서의 탄닌, 그 담대함은 캐러멜이 가진 그윽함과 연결되어 마치 짠맛의 요리에서 그릴에 익힌 육류와의 호흡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디테일이 빛나는 지점은 많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는 그것을 모두 정확하게 기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든 식사든 "한 번 더"가 필요하다, 결론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한 마디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