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tollberg - 팬 프라이 푸아 그라

Le Stollberg - 팬 프라이 푸아 그라

시간을 돌려 여름으로 돌아가보자. 노지 딸기가-그렇다, 딸기는 여름 과일이다!- 철을 맞아 예쁜 신맛을 내던 시절, 저렴한 식당에서 식사 가격에 맞먹는 전채를 주문하는 과오를 저질렀던 날이었다. 뮌헨에 위치한 르 슈톨베르그는 20유로로 그럴싸한 프랑스식 점심을 내는 친절한 레스토랑이지만, 팬 프라이한 오리의 푸아 그라를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푸아 그라-외국어 고유명사이므로 '샌 프란시스코'를 띄어쓰지 않듯이 푸아그라로 붙여쓰는 것이 일반적이다-에 대해 다루어보자. 한국에서 푸아 그라는 어떤 의미인가? 첫째로는 비윤리적인 식재료라는 주장이 강하다. 자연적으로 발견된 식재료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인공적으로 비육하는 과정에서 가금류의 식도에 삽관하는 모습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푸아 그라 최대의 생산국 측 주장이기는 하나) 오리나 거위가 이러한 삽관을 통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거나, 적어도 그러한 고통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식도에 관을 넣고 크랭크를 돌려 옥수수 반죽을 밀어넣는 모습은 고문을 연상케 한다. 물론 반대의 여지도 있다. 일단 모든 푸아 그라가 그런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삽관을 통한 비육-이를 프랑스어로 gavage라 부른다-은 근대적인 현상에 가깝다. 푸아 그라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닌 이동을 위해 과식하는 철새의 습성에서 발견된 자연의 산물이며,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야생 철새의 푸아 그라는 귀중한 식재료로 여겨지고 있다. 사육해서 얻는 푸아 그라의 경우에도 최근에는 거위의 급여량을 조절하여 거위의 겨울철 식탐을 이용해 스스로 과식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나, 장내 미생물을 투여해 지방간이 더 잘 생기도록 체질을 조절하는 방식 등 대안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푸아 그라의 생산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재반론으로는 어쨌거나 동물에게 그다지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지방간을 발생시키므로 고통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사견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영양 과잉에 시달리는 것은 인간 뿐 아니라 가축도 매한가지이므로-소의 살갗 아래 촘촘히 낀 그 지방을 보라!- 이는 보편적인 푸아 그라에 대한 비판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는 푸아 그라가 이른바 3대 타령의 일원으로 가지는 위상이다. 그렇지만 조류 독감 문제 등으로 인해 수입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나머지 두 구성원-철갑상어 캐비어와 트러플-에 비해 그 등장 빈도는 현격히 떨어진다. 생각건대 그보다도 큰 문제는 이러한 3대라는 인식에 의한 어떠한 추상화 또는 우상화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3대 식재료는 단순히 먹어보았다라는 어떤 성취를 위한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 자체의 좋고 나쁨 따위는 부차적인 요소로 전락하고, 단순히 그 유명한 것을 먹어보았다 정도의 감상만이 흘러넘친다. 반대로 지나친 정열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그 3대 식재료기 때문에 굳이 이것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극한값만을 인정하는, 역으로 잘못된 경우이다. "진짜 푸아 그라"를 먹어보세요! 하는 이야기는 다소 우습게 들린다. 그럼 가짜 푸아 그라는 무엇인가? 거위가 아니면 가짜? 사냥으로 얻은 게 아니면 가짜? 아니면 A등급만(푸아 그라도 등급 분류가 있다)? 여러분이 쌀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지은 방식이 아니면 그것은 밥이 아닌 찐쌀이다" 따위의 주장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나쁜 밥도 밥이고, 나쁜 푸아 그라도 푸아 그라다. 또 누군가는 궁극적으로 나쁘다는 형용사를 붙일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인식을 넘어, 나는 푸아 그라가 단순한 남서프랑스의 전통 식재료이자, 바로 지금, 즉 연말을 상징하는 기름진 식재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야기해 보자. 푸아 그라는 프랑스 및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문화권에서 상당량이 생산되고, 또 그런 곳에서 대부분 소비되는 프랑스적인 식재료다. 그중에서도 푸아 그라 문화의 심장부는 Sud-Ouest, 즉 프랑스의 남서부이며 실제로도 세계에서 푸아 그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아키텐 주이다. 거위와 오리 중 생산량이 압도적인 것은 오리 푸아 그라이지만 그것이 오리의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위 푸아 그라는 첫맛에서 특유의 간맛이 약한 편이지만 천천히 녹이다 보면 뒷맛에서 섬세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오리 푸아 그라는 분명히 주장이 강한 맛을 낸다. 푸아 그라를 자주 먹는다면 거위 푸아 그라의 섬세함에 익숙해질 수 있지만, 그 전에는 밋밋한 지방 덩어리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열으로 조리할 때 크기가 덜 줄어들고 탱탱한 질감을 유지한다는 점은 거위 푸아 그라가 가진 강점이다. 물론 지나치게 강한 열에 오래 노출하면 사라지고 만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크기의 경우 애초에 체급 차이로 거위 쪽이 조금 더 큰 편이지만, 오리도 500~600g 급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고리타분한 논쟁을 넘어서면 실제로 푸아 그라를 취식하거나 조리할 때 따져보아야 할 훨씬 많은 세계가 있다. 일단 어떤 방식으로 처리한 제품을 쓸 것인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푸아그라를 익혀서 유통하는(cuit) 것이지만, 냉장 유통이 등장한 이래로 날것(cru)의 위세가 높아졌다. 그 사이의 선택지(mi-cuit)도 당연히 존재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커다란 간 한덩이(entier)가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시 간을 나누어 사용할 때 일부 부위가 알맞지 않을 수 있고, 혈관을 제거하는 등 추가 작업이 뒤따른다. 애초에 아무 이름 없이 foie gras라고 유통되는 물건이라면 여러 오리나 거위의 간이 섞인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프랑스 제품이라면 20g 이상의 조각을 사용해 균일성을 유지한다). Bloc de foie gras부터는 분쇄 후 다시 굳힌 것이기 때문에 덩어리 푸아 그라의 텍스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 덩어리의 감각을 덧붙인 Bloc de foie gras avec morceaux같은 제품도 있다. 팔자가 무한히 좋다면 앙띠에 푸아 그라로 필요한 대로 가공하자고 하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으므로 하고자 하는 요리의 특성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투르느도 로시니를 할 생각이라면 커다란 푸아 그라가 필요하겠지만, 한 번 다진 푸아 그라로도 얼마든지 멋진 전통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개중에서도 위 사진의, 팬 프라이한 푸아 그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분명 오리 푸아 그라로 하기에 좋은 요리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덩어리 푸아 그라를 사용하면서 가격과 타협하다 보니 결론은 그렇게 되었다. 맛으로 결코 나쁜 차원은 아니었다. 오리의 강한 지방맛이 따뜻한 온도와 만나 더욱 강렬하게 휩쓸고, 표면의 짙은 마이야르의 감칠맛과 두껍게 쓴 짠맛이 한가로운 여유를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준다. 그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들뜬 마음을 받아내는 단맛이다. 흔히 한국에서 프랑스 식재료는 의외로 천대받는 경우가 있는데, 맥락 없이 홀로서는 경우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예컨대 프랑스의 치즈가 그렇다. 냄새를 따져가며 질색을 하지만, 애초에 무언가와 같이 먹도록 제공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미각 차력사가 아니다. 치즈에 따라붙는 컨디먼트와 푸아 그라의 그것은 썩 유사한데, 둘 다 두터운 지방을 가진 재료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만 푸아 그라의 부드러움에 대한 집착은 치즈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으로, 부드러움과 지방의 richness를 극한까지 당겨올 수 있는 브리오슈가 푸아 그라의 단짝이다. 여기에 계절의 신맛을 지닌 과일을 한껏 달게 졸여 올리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뻔하게 좋은 푸아 그라 요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푸아 그라 그 자체가 한국에 반드시 보급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통조림에 담긴 푸아 그라를 세계 3대 진미라고 파는 업체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애초에 이것보다 더 우선 순위가 급한 과제도 많다. 하지만 푸아 그라를 굳이 들추는 이유는 그것이 줄 수 있는 영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구세대 한국인들은 분명 내장 요리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었으며, 특히 소의 창자 부위, 돼지의 갖가지 부속과 같은 일부 내장은 일상적인 식재료의 영역 코앞까지 닿아 있다. 하지만 그 조리법은 대부분 굽거나 삶거나의 갈림길에 있는 수준에 머무르며, 아니면 강렬한 양념을 뒤집어 쓰고 소주를 멈출 수 있는 명분으로 계속 씹어댈 수 있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그 내장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만난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더 많은 즐거움이 있을까. 뒤뚱거리는 가금류의 간 하나에서 그 세상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