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Amis - 2025년 여름

레자미, 불어로 '친구들'. 레자미는 아시아 요리 중심의 싱가포르 미식 문화에 서양화의 물꼬를 튼 입지전적의 레스토랑이다. 그 이름처럼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레스토랑으로, 레자미 그룹의 의장인 Desmond Lim을 필두로 금융가들과 요리사, 소믈리에가 뭉쳐 만든, 당시 싱가포르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 운영의 오트 퀴진 지향의 가게이다. 미쉐린 가이드 싱가포르판이 처음 출판된 것이 2016년이니, 무려 20년은 이르게 준비해온 셈이다.
하지만 관광객이나 단기 비즈니스 목적의 여정에서 굳이 싱가포르에서 프랑스 요리를 먹을 이유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어지간한 프랑스 요리 애호가가 아니라면 호커 센터에서의 배부른 한 끼가 더욱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 주방을 레노베이션했다는 소식에 그들의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요리의 모습이 짐짓 궁금해졌다.
방문 전
레자미의 예약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쉽게 할 수 있다. 별도의 확인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요리
레자미의 요리는 크게 Tantris 계열의, 독일계 클래식 프랑스 요리를 익혔던 아민 시대와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바스티앙의 시대가 나뉘는데, 당연하게도 현재 요리는 세바스티앙 시대의 전형을 드러낸다. 그의 요리가 어떤 요리냐고? 천천히 살펴보자.

레자미의 브르타뉴의 소규모 생산자 'Le Ponclet'의 버터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버터 업계에서는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하는 생산자인데다가 생산량이 초기에 비해 오히려 줄었고, 거래처 중 일부-이곳을 포함-의 명성 덕분에 그 품질에 대한 평가가 더 오른 경우이다. 아주 잘 만든 피니스테르 버터로 우유 시절의 신선함이 스며든 진한 풍미가 눈에 띄지만 버터에만 집중해서 맛을 보아야 할 때의 이야기고, 섞어두고 맞추는 환경에서 쉽게 구분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 생각한다. 좋은 버터를 먹는 즐거움은 있겠지만, 남들은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한 쾌락을 이 버터에서 찾는다면, 아니, 애초에 버터에서 찾는다면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누구에게나 귀퉁이를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럭셔리한 서비스를 지향하는 품격에 걸맞은 아이디어다. 물론 이런 형태의 빵은 바게트의 quignon같은 극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지만, 좋은 껍질은 탐닉할 이유가 된다.



전채의 경우 두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토마토를 냈는데, 항상 말하듯 이런 요리는 자세한 평을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몇 가지 언급할 가치가 있는 지점이 있다. 가장 먼저, 구성이다. 첫 토마토는 올리브 오일에 바질, 그리고 오븐에 익힌 다음 따뜻하게 내는 반면, 두 번째 마티니 잔에 담아낸 토마토는 차갑게 벨루테를 만들고 아래에는 질감을 일관되게 만든 오이를 깔았다. 앞의 요리가 더 보편적인 지중해의 발상을 떠올리게 한다면 이어진 흐름으로 프로방스의 명확한 인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자가 토마토가 가진 따뜻한 요리에서의 잠재력, 감칠맛을 주제로 삼는다면 후자는 단맛과 신맛으로 과실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토마토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토마토라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끄집어내어 확대하는 솜씨와 발상이 발군이다.


샴페인을 곁들이다 보니 두 종류의 캐비어 요리에 동시에 부딪힌다는 발상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 모습이었고, 그 시도는 통쾌하게 성공했다. 그림만 봐서는 썩 유사한 구성 아닌가? 캐비어를 주인공으로 하는 요리라, 위의 두 요리는 그 목적지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니 식재료나 조리법의 중복을 극히 기피하는 오트 퀴진의 구성에서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맛보기에서는 이를 선명하게 비틀어내는데, 먼저 앤젤 헤어 파스타의 경우 캐비어의 상당한 시각적 존재감에 불구하고, 실제 맛보기에서는 파스타의 오일, 그 속의 트러플의 향과 허브의 화사함에 이목이 집중되는 요리이다. 싹눈파나 차조기 꽃(호지소)은 다시마의 감칠맛과 이어져 일본 요리의 맥락을 드러내며 보퀴즈, 로부숑 이후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동시대적 프랑스 요리의 인상을 준다.
반면 아래 요리는 점질감자와 케이퍼를 위시로 전통적인 캐비어 서비스를 주제로 한 요리로, 맛에 있어 앞선 요리와 달리 캐비어에 온전히 조명을 쏟는 설정으로 대비를 드러낸다. 캐비어 서비스라면 기본적으로 그 섬세함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강한 짠맛과 감칠맛을 넉넉히 맛볼 수 있도록 맛이 평평한(plain) 것을 곁들여 철저히 주변에 머무르게 만든다. 블리니부터 크렘 프레슈까지 그 발상은 동일하다. 캐비어의 탄력에 적절하게 어우르는 감자는 여름 제철을 맞아 멋드러진 향을 입었고, 캐비어의 진한 감칠맛은 짠맛에 뒤덮이지 않는다.
색부터 구성까지 일견 유사한 두 요리를 통해 수단으로 사용되는 캐비어, 그리고 목적으로 사용되는 캐비어의 모습을 모두 연출한 방식은 앞선 토마토에서처럼 재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탁월한 통찰력을 드러낸다.


빵 서비스의 경우 레자미의 오븐 속 주인공은 다름아닌 바게트라 생각한다. 바게트의 하이라이트는 귀퉁이라는 보편타당한 주장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형상, 크게 한 줄로 파서 큰 반죽과 차이를 드러내는 귀까지. 잘 구워진 껍질의 위대함이 빛난다.

올리브유와 주키니로 토마토-오이에서 다시 한 번 프로방스의 이미지를 이어내는데, 지중해적인 단맛을 살리는 방식에서 주방의 저력을 느낀다. 지중해적인-혹은 섭아 보편적인- 호박 조리에 있어 한국적인 조리와 차이는 씨의 배제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속을 채우는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 가진 매력이다. 얇게 저며낸 애호박으로 감싸는 방식은 그러한 프로방스적 조리법에 대한 경의를 담으면서도, 오트 퀴진의 스타일, 속을 별도로 조리하는 만큼 속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형식만 남기고 겹으로서 단맛을 더하는 역할만 부각했다. 멋진 단맛과 심부까지 섬세한 랑구스틴의 질감 속에서 3연타의 캐비어마저 흠으로 보이지 않는다.

샬랑이라는 것은 가금류로 유명한 방데 내 지역의 명칭이자 브랜드로 그 매력은 비교적 긴 사육 기간으로 얻은 커다란 덩치와 두터운 껍질, 목을 자르지 않고 조여서 도축하는 방식으로 인해 살에 배는 진한 피맛이다. 두 장점을 동시에 살려낸 기술의 완성도는 보이는 대로라고 하겠다. 오리기름의 향이 깃든 소스, 주니퍼의 섬세한 향으로 잡아낸 균형까지, 껍질의 소스에 사용된 재료에서는 로산진이 떠올랐다. 전통 방식의 알라 프레세로 조리한 샬랑 오리를 힐난했던 그를 무릎 꿇게 만들 완성도다. 오리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좋은 맛을 가진 소스의 요리는, 가능하다.

유럽에 건너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부득불 유럽의 치즈 사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좋은 수입품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취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베르토트가 아닌 에푸아스를 갖췄을 정도로 빼어난 선택지를 보이지만 제약이 존재한다.



아이스크림은 질감이 무른 느낌에 담는 동시에 녹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텍스처를 잡기 위한 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만든 대로 용기에 담아내는 것. 어쩌면 과거의 느낌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피스타치오. 결국 좋은 것을 잘 볶아 색이 이렇게 될 정도로 쓰게 되면 좋은 맛이 나온다.


Le baba au rhum agricole, accompagné d’une crème fleurette légèrement foisonnée


뒤카스 방식으로 담그는 시럽은 시트러스의 느낌을 강하게 잡고, 럼을 따로 빼서 알코올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이다. 단순히 럼을 비싼 것으로 바꾸고 병을 들이미는 것이 전부인 방식이 아니다. 애초에 바바 오 럼은 그 시럽에 푹 적셔 젖어버린 질감과 강한 시럽의 맛,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게 만드는 두터운 크림의 균형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시트러스, 바닐라, 럼이 켜켜이 쌓여 향의 일례를 구성해야 한다. 레자미의 바바오럼은 시럽의 시트러스향을 강하게 뽑아내고, 거기에 맞설 수준으로 오래 숙성한 럼 아그리꼴을 맞대는 것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서울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넉넉한 사정이, 혹은 섬세한 고려가 존재한다.




총평: 레자미의 요리는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혁신이라는 프랑스 요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비스트로노미를 위시로 한 드레스 다운의 유행, 뉴 노르딕과 재패니즈 프렌치를 위시로 한 세계 요리화의 경향을 벗어나 프랑스 요리의 시계열 위에서 당당히 빛난다. 남프랑스와 브르타뉴를 양손에 쥐고, 프랑스 외 지역에 대한 동경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장점은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다른 꽃이 아닌 차조기 꽃으로 마무리한 앤젤 헤어, 누룩으로 빚은 술의 단맛을 향으로 입혀낸 오리에서 나아가는 힘을 느끼면서도 캐비어 서비스나 오리 누름 요리 등 옛 레시피의 맥락에서는 머무르는 힘을 느낀다.
구성에 있어 같은 재료를 의도적으로 중복으로 배치하며 기교를 부리는 모습에서는 주방의 자신감이, 싱가포르 지역 요리의 맥락을 배제하는 태도에서는 자부심이 돋보인다. 관광산업을 위해 종사하는 요리를 하지 않지만 바로 그런 태도 덕분에 목적지 레스토랑이 되었다.
분위기: 권위와 여백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층고, 흡음재와 저채도의 공간이 자연스레 식탁으로 이끄는 시선의 흐름이 매끄럽다.
가격: PRIX FIXE 메뉴 SG$455부터. 음료까지 인당 SG$800~SG$1,000 정도 권장.
음료: 프랑스의 레퍼토리가 가장 풍성하지만 루아르와 론을 탐닉하는 재미가 있고, 그 이외에도 충실한 모습.
- +65-(6)-733-2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