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Red Door - 빵으로 만든 돌

Little Red Door - 빵으로 만든 돌

이제는 세계 바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은 누가 뭐래도 월드 베스트 50을 주관하는 윌리엄 리드다. 하지만 이 업체가 지역별, 국가별 가이드를 넘어 세계적인 줄세우기를 시작할 때로 돌아가보면 사실 월드 베스트가 트렌트를 만든다기보다는 이미 선도하는 주자들이 있었고 오히려 그들의 유명세에 이 평가가 업혀간 꼴이다. 그만큼 평가의 질도 참 알 수 없는 느낌인데, 예컨대 2009년판을 보면 1위는 당연히 사샤 페트라스케에게 돌아갔지만 아래로 가면 그냥 두바이의 값비싼 바들도 여럿 자리하고 있고, 심지어는 해리스 뉴욕 바에 상위권을 2석이나 할당했다. 해리스는 분명 역사적인 바이지만...

이외에도 일본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바 하이 파이브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기도 했고, 긴자의 스타바 역시 초기에 몇차례 등재된 바 있다. 플라자 아테네나 리츠 바의 호텔 바도 올리는 등.. 이런 행보를 보이다가 2010년대 후반부터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이제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업계에 일정한 흐름을 요구하는 듯한 위치까지 올랐다.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바들은 하이 파이브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제 이 리스트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리틀 레드 도어는 전문경영인이 전략적으로 세운 바로 이러한 흐름을 예지라도 한 듯 가이드의 성장과 유행의 변화를 타고 성장하여 2010년대 파리에서 가장 명성이 있는 바로 거듭났다. 물론 누구에게 명성이 있느냐는 고민이지만, 이날 동유럽과 영국에서 마셔보러 온 바텐더 여럿을 만난 경험을 생각하면 아주 거짓 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던 2020년 갑자기 리틀 레드 도어는 팜 투 글라스를 표방하며 메뉴를 갈아엎더니 가장 최근의 리스트에서는 5위를 차지하며 가이드의 인정을 받았다. 도대체 바다 건너편 술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약해야만 마실 수 있는 테이스팅 코스로 이곳의 가능한 전부를 알아보고 싶었다.

본격적인 서비스 타임보다 조금 이르게 입장했더니 이 잔을 만들기 위해 얼음을 자르고 다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얼음을 직육면체로 자르면 아래가 좁은 잔에는 들어가지 않는데, 들어갈 때까지 스터해 아래를 녹여 잔에 맞춘다. 그리고 미리 만든 칵테일을 따라 완성하는데, 미리 만든 이 음료는 루바브를 바탕으로 생강청, 베르무트를 더해 만들었는데 상당히 치우쳐진 단맛이 첫 잔으로서는 유쾌하지 않았다. 루바브 자체도 단맛이 있는 재료이기는 하지만 그 역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루바브가 분명 칵테일에 쓰이지 않는 재료인 것은 맞다. 좋은 야채를 사용하는게 어떻게 나쁜 일이 될 수 있는가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루바브가 좋다라는 가치판단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좋다"라는 말은 보기보다 매우 협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맛의 여운을 나름대로 넓게 펼쳐내기 위해 작은 한입거리를 같이 내는데, 분자 칵테일을 보면 떠오르는 인상과 흡사하다. 현대적 요리법의 열화판이다. 요리의 경우에는 수준이 낮아도 아이디어와 기술의 부족으로 화학적 변성을 거치지 않는 재료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런대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런 바닥이 없다.

아인콘petit épeautre을 쓴 칵테일의 밀향이 다소 시선을 끌기는 했지만 나머지의 엉성함이 잠깐의 기쁨을 뒤덮기에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특이하게 만든 베르무트(로즈마리..의 향이 난다), 바디를 묽게 하는 로제 와인, 납작한 단맛이 저의를 의심케 하는 리큐르 등이 뒤섞이다보니 칵테일이라는 형태의 음료에 대해 기대하는 바를 느끼기 어렵다. 알코올을 매개로 향이 피어나기에는 당이 너무 무거우며, 그런대로 취하자니 빠르게 마시기 좋은 맛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곳이 내세우는 채소와 과일, 리큐르 담그기 등이 칵테일과 바의 효용의 측면, 저녁밤 마시고 기분좋게 취해 돌아가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새로운 맛의 영역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익이 그다지 크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주를 팻워싱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속이 청명해졌다. 이 잔은 지나치게 달지도 않았고 과채가 주는 의미불명의 메시지도 없이 식후주로서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어쨌건 유명해진 상황에서 유명하다는 맛을 찾는 세계 곳곳의 손님을 맞이하기에 최적화된 설정임은 분명했다. 자주 보는 설정이지만 RTD처럼 만들어두거나 탄산수를 탑업하는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칵테일이 대표로 서고, 다소의 낯섦이 판단을 주저하게 만든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요리사들이 등장하면서 나중에는 정말 과학자나 철학자와 대담하는 요리사들까지 등장했지만, 외형이 비슷하다고 나머지까지 그렇다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되지 않았던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고, 정치적으로 선명한 메시지를 보여준다고 해서 좋은 요리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더라도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 피카소가 훌륭하다고 모두가 피카소처럼 그릴 필요는 없다. 심지어 그 본인마저도 그러지 않았는데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관객 역할이 익숙한 사람들은 무대의 광채에 이미 눈이 멀었고 인간의 감각은 그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