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SÉE - 2022년 7월 오픈

LYSÉE - 2022년 7월 오픈

이 블로그에 누가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스스로 설정한 제약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두 개를 꼽아 소개하자면 "기다리는 줄이 긴 곳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방문 당일 즉시 글을 마감하지 않는다"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운 탭을 소개하면서(보시라! 몰래 만들었다) 이 두 가지에 예외를 두게 되었다. 어차피 발생한 예외이니 핑계는 두지 않도록 하고 전해야 할 내용만 전하겠다.

Lysée

리제에서 편하게 취식하기 위해서는 두 시간 전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두 시간보다도 먼저 도착해 얼떨결에 직원들이 출근하는 풍경을 보았으나 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으나 60분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보인다. 그건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썩 많은 선택지 중 가장 좋은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골랐는데 첫 꼭지는 당연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타이틀 앨범, 리제다.

이런 글을 쓰면서 최대한 사전 정보를 의식하지 않고 감각에 기반해 글감을 만들어나가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리는 내용이 있으므로 이 물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선입견을 가질 뻔 했는데, 리제의 타이틀은 스스로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무엇보다도 무스의 점도, 즉 텍스처다. 물론 부자재들이 달라붙지만 기본적으로 무스케이크인데, 썩 점도가 있는 무스를 통해 먹는 이는 곧바로 우유 대체품milk substitute로서의 현미유(乳), 한국적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쌀의 향을 동시에 가리키고 있었다. 후자에 있어서는 서울에서 포 시즌스의 알렉산드르가 마지막으로 내놓았던 흑임자를 떠올리게도 한다. 식물성 지방의 힘은 아닌듯 적절히 증점/안정을 거쳐 만든 무스의 질감은 상당히 절묘한데, 무스가 입안에 다소 길게 잔류하는 동안 기분 좋은 곡향이 지난 뒤로 캐러멜의 단맛이 쌓이는 형태로 무스로서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다분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현미유의 맛을 주연으로 삼은 용기는 높이 살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제품 자체는 유제품이 혼합되어 사용되지만, 대체유의 풍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메시지가 굵은 제품이며 그러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의 완성도는 만족을 주기에 모자라지 않다. 곧 시작한 곳으로서는 출발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완전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무스의 질감은 완벽보다는 '영리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편이며, 견과-캐러멜로 이어지는 맛의 설계는 다소 안전한 길을 택했다는 인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를 다분히 의식한 시트러스 힌트가 한 군데 들어있기는 하지만 놀라움의 층은 한 층 뿐이다. 두 겹, 세 겹 정도로 무장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Flatiron

리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품에 대해 전혀 찾아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메뉴에 적힌 바, 타히티 바닐라 크림과 슈라는 설명만을 보고 제품을 주문했는데, 다리미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케이크 이름을 엉터리로 읽고 말았다. 서버가 제대로 읽어주고 나서야 여기가 플랫아이언으로 불리는 동네라는 점을 떠올렸다. 하여간 남의 동네이다보니 이런 망신을 당하는 것인데,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면 상단의 장식이 노골적으로 생 토노레 혹은 를리지외즈같은 슈 계통의 계승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큰 얼개에서 프랑스의 왕도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지만 구성의 방식, 비중에 변화를 두어 독창성을 꽤했다. 앞선 리제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메뉴라 할 수 있는데, (이름은 잘못 읽은 때문은 아니고) 플랫아이언은 결과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슈라면 기본적으로 패스트리와 크림, 각각이 주는 원초적인 만족감을 구현할 수 있다면 형태야 전형적이지 않아도 좋다. 현대 제과 주방에서 생 토노레에 접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생 토노레를 세 가지, 네 가지 정도의 구성으로 해체한 뒤 재조립하는 방식인데 이 케이크는 적극적으로 텍스처나 맛보기의 순서거나 맛을 추가하거나 빼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만족도는 있었고 특히 크림에서는 모자라지 않은 향긋함이 있었지만, 패스트리의 바삭거림이나 구운 향기는 가격($17)에 어울리는 품격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캐러멜의 처방은 다른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아이디어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짐을 벗어두고 옥수수와 쌀이라는 비-백인권의 탄수화물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리제의 행보는 단언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가격에서부터 드러나는 당찬 포부와는 별개로 당장 요구되는 모든 것을 갖춘 느낌은 아니다. 줄은 길고 셰프는 유명하지만, 유명한 셰프의 줄이 긴 가게로 남지 않으려면 조금 더 급진적이거나, 조금 더 정교해야 한다. 물론 앞으로의 모습이 어떨지 나는 알 턱이 없어 보인다. 뙤약볕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볼일을 보자마자 자리를 떴지만 대기하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오래 기다릴 각오가 되어있는 눈치였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 모양이라면 나는 그 다음을 목격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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