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나이데 - 광의의 일본 요리

마케나이데 - 광의의 일본 요리

금호동의 「마케나이데」는 나름대로 좋은 요리를 선보이는 공간이었다. 균형이 단맛에 의존한다는 점-이것이 일본 요리 자체의 성질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을 빼면 일상의 영역에서 흠 잡을 게 없는 단계였다. 냉동 반제품과 양식 생선, 두 종류에 굳건히 기대는 식당에 비해 분명 부가적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근 주민을 위한 식당으로 머무르는 단계에 있으므로 굳이 이런 동네 식당에 대해서는 논의의 이익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나, 식당의 가타부타를 따지기 보다는 이참에 이 이자카야라는 양식에 대해 따져보고자 한다.

일단 한국에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여러 종류의 생선을 취급하는 식당이 살아남는 방법은 일식 뿐이다. 그것이 한국식 일식-이것도 니케이 퀴진처럼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무언가 만들어볼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나는 분명 존재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는 건 아니지만-인지, 아니면 일본식 일식인지 상관 없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마케나이데처럼, 일본식 일식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일식이면 일식이지 무슨 일본식 일식인가 하면 일본 요리의 정의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단순히 지칭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나카 카쿠에이가 깔아둔 인프라 위해 성장한 각종 지방 토속 요리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큰 틀에서 교토와 무인 계급을 중심으로 독보적인 길을 걸은, 이른바 쿄료리의 영역과 근대 이후 서구화를 바탕으로 발달한 거리의 요리는 유전자 단위에서 다른 음식인 듯한 영혼을 담고 있으며, 그 서구화의 진행 중에 발생한 각 요리 역시 시대상에 따라 서구에 대한 다른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메이지 시대에 등장한 일본식 서양 요리와, 프랑스와 일본 간의 요리 교류가 본격화된 츠지 시즈오 시대(프랑스에서는 폴 보퀴즈의 시대가 된다) 이후 프랑스 요리와 영향을 주고받아 발달한 서양 요리는 서구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 자체를 달리한다.

이러한 일본 내의 요리들은 한국에서는 이자카야라는 양식 아래에 모두 뒤섞인다. 그 속에서 전체를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것은 어쨌거나 일본적이라는 한국인의 인상이다. 덴푸라와 카츠가, 스파게티와 챠항이 일본이라는 여과막을 투과하지만 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라멘이나 챠항은 중화 요리라는 걸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튀김은 단순히 입혀내는 반죽의 차이 정도로 이해될 뿐이다.

"객들이 배경을 모르고 먹으니 이런 중구난방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큰 틀에서 정의할 수 있는, 어찌보면 맥락 없는 이해가 오히려 일본 요리, 일본 문화가 현대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광의의 한식을 취급하는 식당이 있다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이자카야에서는 등장할 수 있지만 한식 주점에서는 어려운 요리가 있는 한편 같은 이름이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두 곳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리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요리라는 개념 내의 기의는 스스로의 보수성에 갇혀 비좁은 정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시미를 뜨고 이치방다시를 내는 요리사가 라멘을 끓이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면 한식 요리사도 짜장면과 탕수육, 후라이드 치킨과 감자탕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식당이 존재하기는 한다. 해외의 한식당이 바로 그 경우인데, 필요에 의해 강제로 갖춰진 모양새가 크고 그나마도 한국인이 사는 저변이 확대되면서 쇠퇴하고 있는 양식이다. 물론 그런 식당을 차려야 한다거나, 그런 식당이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개념과 사상의 차원이다. 남의 요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폭넓은 정의를 허용하면서 왜 스스로에게는 어려운가? 카레, 돈가스를 넘어 나폴리탄 스파게티마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본 요리에 비해 왜 한식의 일상 요리는 그 다음 단계로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가?

2010년대까지 한식은 관치 주도의 한식세계화 아래에서 무언가 궁중스러운 것으로부터 그 정체성을 찾고자 시도하였고, 민간에서는 황교익과 허영만 등을 중심으로 한 향토 음식을 바탕으로 한 접근법이 있었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힘을 상실한 상황에서, 지금 한식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생각건대 이대로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식이 곧 한식이 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한식당은 서울이 아닌 뉴욕에 다수 분포하게 될 것이며, 한국에서 뉴욕 식당을 따라하는 꼴이 나타날 것이다. 말로는 다들 고향의 맛, 조상의 맛을 찾는다지만 미국으로 떠날 수는 없어도 서울을 떠날 수는 없는, 그런 맛이 한식의 정체성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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