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틴 - 음식과 시간

더 마틴 - 음식과 시간

언제였을까. 아이스크림이 맛있더라도 아이스크림을 먹기에 여러모로 좋은 환경은 아니기도 하고, 이제 이야기는 할 만큼 했으므로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식용 꽃잎을 냉침해서 향을 입힌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종종 메뉴가 바뀌지만 특별히 공지되는 것도 아니며 캐물을 말큼 내가 열정적인 사람도 아니기에 우연한 행운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순간 작은 감동을 맛보았다. 맛도 옳았지만 맛이 따라들어오는 곡선의 감각이 가히 완벽했기 때문이다. 쌓여있는 이눌린이나 비정제 설탕, 유청단백, 낮시간에는 종종 입고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상하목장 브랜드를 달고있는 우유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이 감동은 오로지 타이밍의 예술이었다.

아이스크림에 대해 적지 않은 이야기를 했지만,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으니 나는 또 지루한 이야기를 이어가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항상 친애하는 독자들의 대부분이, 내가 하는 뻔한 이야기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믿으면서도, 혹시 단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항상 글의 앞에 지루한 일반론을 읊는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바로 아이스크림의 시간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이스크림에 시간이 있다니. 유통기한이나 상미기한과 같은, 일종의 최후통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굳이 길바닥에서 특별히 식약처같이 믿음직한 기관의 감시로부터도 자유로우며 비싸고 귀찮은 걸음을 재촉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고, 그것은 가게 주인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아티장이라는 표현을 즐긴다. 젤라또면 젤라또 아티지아날레gelato artigianale라는 표현이 존중의 표시로, 또 상술의 도구로 쓰인다. 배치 프리저와 같은 장비빨을 심하게 타는 음식인데 숙달된 기술자를 강조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아이스크림의 생명은 생각건대 유통 과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 있다. 기술자가 어떻게 만드느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아이스크림을 따로 냉동차에 싣고 도로 위에서, 바다 위에서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시판 아이스크림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절대로 구분하여 논하는 이유이다. 왜 중요한가. 특히 우리나라처럼 생산지와 최소한 대양 하나를 거리에 두고 있는 경우 아이스크림은 결코 녹지 않게 보관될 필요가 크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은 갓 만들어졌을 때는 불안정한 상태, 수분의 상당량이 액체로 잔류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로 유통할 경우 냉동 컨테이너를 이용하더라도 물이 제각기 얼어붙으면서 서걱거리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따라서 공장에서는 굳히기나 2차 냉동으로 불리는 과정을 통해 전체가 얼어붙고도 남을 정도의 저온에서 급냉한다. 이후 식품안전에 해가 되지 않는 저온으로 움직이는게 많은 파인트들의 삶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놓치는 게 있다. 모든 수분이 전부 얼음이 되어버리므로 당연히 부드러움은 줄어든다. 사람의 혀가 일정 이하의 입자 크기는 독립된 고체로 인식하지 않기는 하지만, 금방 나온 아이스크림이 가진, 흐르듯이 이어지는 크림의 질감을 모방하기 어렵다. 가능은 하지만 그러면 당도가 지나치게 튀거나 원가를 걱정하게 된다. 식품안전상 안전한 영하 18도는 사람이 취식하기에 좋은 온도는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온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파인트를 녹이는 동안 정밀하게 짜여졌던 아이스크림은 변화에 직면한다. 덜어놓고 먹지 않는다면 산화가 일어나는 건 덤. 물론, 아이스크림 회사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애초에 뚜껑을 열고 10분정도 기다리는 상태에서 여러 번 냉장고를 드나드는 일을 상정하고 만들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끔찍하게 나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최선에서는 거리가 있다.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 그리고 직접 손에 건네는 경우라면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냉매로 꽁꽁 싸인 포제띠는 원하는 온도를 제공할 수 있으며, 영업 시간과 객이 찾는 시간도 뻔히 정해진 만큼 맞추어서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박자들이 올바르게 맞아떨어졌을 때,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후식을 넘어선다.

아주 금방 만든 경우라면 심한 경우 반도 얼어붙지 않을 때가 있으므로 차가운 상쾌함이 모자랄 수 있지만, 이 날의 맛은 참으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정확한 정도로 차게 식은 아이스크림은 수숟가락이 가는 대로 감기고 입안에 닿는 대로 퍼졌다. 온 감각기관의 꽃향기를 알리고 혀의 모든 단면이 액체를 타고 들어오는 당과 지방, 에너지의 신호를 보낸다. 어쩔 수 없이 두 컵을 해치웠다.

왜 두 컵에 KRW 12000, 말도 안되는 비용이다. 그러나 겉모습만 비슷할 뿐으로 녹고 어는 과정을 반복하는 바람에 허공에 치대고 있는 물건이나 애초에 크림을 쑬 때부터 잘못되었거나 시간이 지나치게 지나서 이빨이 선 듯이 오돌토돌해진 단면의 가격이 크게 저렴하지도 않은게 현실이 아닌가.

좋은 요리는 신기한 것이 아니며, 운에 의지하지도 않고, 가성비가 좋지도 않다. 요리사는 속임수에 능한 마술사지만 마법사는 아니다. 모든 행위에는 이치가 있기 마련이고, 결국 맛을 위시로한 경험을 가리는 커텐은 언젠가 걷히기 마련이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도 그렇다. 아마추어라면 경험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시 경험을 체득하고, 인간으로서 또 한 명의 애호가로서 자신을 다듬고 나아갈 기회를 얻지만, 속임수의 냄새가 진득하게 나는 음식들처럼 글들도 그렇지 않은가. 포털 사이트의 맨 앞 줄에 서려고 발버둥대는 글들은 지독한 냄새가 난다. 글보다 글 아닌 부분이 중요하기에 여전히 "신기해서 맛있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음식은 아무렴 신기하면 그만이므로 대부분이 지독하게 맛도 없다. 공짜 식사부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얻는 유명세와 그에 따라붙는 이익들이 탐이 나시겠지. 그렇지만 적어도 인간된 도리를 지키는 요리가 있으니 나도 도리를 지키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이 글도 적당한 때에만 맛보기 좋기를. 곧 철 지난 불평으로 버려지기를 희망해본다. 이런 문제는 비단 음식만의 것은 아니었지만, 음식만은 내가 이렇게 애원할 정도로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