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y's - ex dolo malo...

Martiny's - ex dolo malo...

불법하게 얻은 권리는 행사할 수 없다ex dolo malo non oritur actio는 법리가 있다. 영국 계약법 판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은 밀수을 목적으로 차(茶)를 구매한 자를 상대로 그 정을 아는 매도인이 대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부정한 권리를 법원을 통해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한 사안이다. 우리로 치면 반사회질서로 무효(민 103)이고 영미법 법리로는 불법원인급여ex turpi causa와도 유사하나 반환청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하여간 이날 마티니스에서 마신 칵테일이 그런 느낌이라면 그런 느낌이었다. 마시는 이들이 칵테일을 진탕 마시고 취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적당히' 잘 만든다. 속아넘어갈 정도로만 노력한다. 그런 칵테일의 맛에는 놀라움이 없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 옆의 마티니스는 그야말로 기대를 잔뜩 품어도 충분한 바였다. 일단 정말 바 테이블에 앉게 해주는 바였고, 적은 좌석수와 넉넉한 층고, 두 명의 바텐더를 중심으로 둥글게 펼쳐진 무대와 깔끔하게 정리된 백 바까지 과연 앤젤스 셰어에서 8년이라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프로의 업장이라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이곳에서 일본식으로 '스탠다드'인 진 마티니, 업장의 마티니를 시작으로 걸어서 돌아갈 수 있을 한계까지 마시고 돌아온 뒤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는 취해서 즐거웠는데, 마시는 내내 한 켠이 무거웠다.

"마티니스"라는 이름처럼 시그니처 칵테일은 마티니로, 기본적으로 진+베르무트의 마티니 맛이지만 세 겹 정도로 포도를 입혀 "마티니의 향이 포도랑 어울린다"라는 강렬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주장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베르무트가 결국 포도로 만드는 술이기도 하고, 썩 당기는 단맛과 마티니다운 강한 알코올이 있으면서도 베르무트와 포도향이 입안을 촉촉히 적셔 숏 드링크 치고 굉장히 잘 들어가는 칵테일이었다. 마티니에 한 겹의 향을 더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고, 미국의 단맛이 나는 것 역시 나름대로 재밌었다. 맛없었다면 초점이 좀 더 정확했을 것이다.

클래식 마티니를 만드는 타쿠마의 솜씨 역시 기본은 갖추어져 있었다. 일본 기준에서는 사파라고 할 수 있는 바텐더로 클래식 바가 아닌 레스토랑 체인 살바토레 쿠오모의 XEX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이지만 허송세월을 보낸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적어도 미국의 바텐더-저명한 업스케일 레스토랑의 바텐더들도 전부 포함해서-들보다 기본적인 제조 원리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는, 최소한 비슷하게 따라는 하는 느낌이었다. 셰이크에는 필요한 스냅이 들어가고 스터는 깔끔하면서 빠르다. 결과물도 썩 괜찮은 편이다. 표현을 빌리자면 "나름의 균형이 있다".

그렇지만 다시 가고 싶은 바는 아니었다. 너무 전부를 본 느낌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시즌마다 바뀌는 다양한 제철 칵테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전부를 보냐고 하겠지만 바 테이블에서 보는 이곳의 영업 방식은 너무나 기민해서 잔머리가 돌아가는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그니처가 되는 칵테일은 기본적으로 레디메이드. 퍼포먼스로 스터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희석이나 질감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없다. 셰이크는 한 술 더 떠서 핸드믹서를 돌려 강제로 에어레이션을 연출한 뒤 셰이크를 통해 온도만 잡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다구를 이용해 말차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티 세레머니는 생김새까지 엔젤스 셰어의 수장이었던 신고의 그림자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고(신고 고칸이 대회 우승을 뭘로 했는지 찾아보시라) 카프레제나 더티 토닉같은 칵테일은 요리사나 나구모 슈조같은 바텐더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하면 한 잔 더 할 장소가 굳이 마티니스일 필요가 있을까? 나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많은 곳들보다야 낫겠지만 그리워지는 맛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밀려드는 주문 속에서 셰이크를 할 때 만큼은, 아니 바로 그 때만 웃음기를 보이는 타쿠마의 프로정신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손님들이 언제 자기를 의식하는지까지 생각하고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프로답지 않은가. 앤젤스 셰어를 계승하는 시스템 때문에 칵테일 제조를 둘이서 전부 해내야 하는 시스템의 한계상 친절도 나누어서 팔아야 영업 종료까지 동이 나지 않겠지만, 그런 가게에 또 오기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이게 일본인 바텐더들이 맨해튼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라면, 나보다 좋은 손님들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