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 - 한식과 와인
한식에 잘 어울리는 리슬링, 아니면 까르미네르나 타닌 느낌 강한 신대륙의 양산식 보르도 블렌드와 삼겹살.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한식과 와인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와인과 먼 거리를 사는 한국 요리가 아직도 와인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고추장이나 참기름과 같은 강한 양념 때문에? 글쎄. 와인과 식사가 곁들여지는 문화가 미비하기 때문에 양적/질적 지원이 모자란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한식당, 아니, 반드시 와인을 마시는 한식당에서 사정은 다를까. 여러분도 지긋지긋하게 만났을 "한국식 한우 타르타르-육회"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하지만 이곳의 육회 스타일은 조금은 독특한 편이다), 역시 소고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튀김과 전, 된장과 국물, 그리고 라면과 와인이 남는다.
된장은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토의 된장죽은 된장 특유의 강한 짠맛보다는 채수 바탕의 단맛이 앞서기에 "한식에는 리슬링"의 정형화된 제안이 얼추 통한다. 하지만 넉넉한 양의 국물요리가 와인을 빛내기에는 경험을 압도한다. 한식에서 다량의 국물과 주류의 궁합은 흔하지만, 그 교본이 되는 것은 지방을 씻어내는 소주, 그리고 그 소주의 역함을 다시 씻어내는 국물의 문법이다. 서로 딱히 씻어낼 것이 없는 관계에서는 속 따뜻해 지는 넉넉한 국물이 반드시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다.
부침개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내는 요리이므로 가벼운 와인에 두루두루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되는 채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것이 부침개의 핵심이다. 와인의 짝짓기는 주로 양념과 단백질의 특성에 따르고 있으므로, 채소의 개성이 강한 요리에서는 곤혹을 짓기 쉽다. 물론 양념장이 부침개를 압도하도록 만들 수 있지만 이상적인 바람은 아니다.
오히려 라면은 쉽게 통한다. 물론 신라면을 초과하는 감각 마비형이라면 무익한 이야기겠지만, 풍성한 짠맛과 기름을 지닌 음식인 만큼 알코올에 대해 나름 수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서적으로 익숙함과 만족감을 준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가 되겠다. 조금의 불협화음이 있더라도, 라면에 대한 익숙함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식이다. 물론, 대부분의 식사에서 라면은 역시 해장 또는 환대의 의미를 더욱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라면과 환대"라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재밌지 않은가? 오트 퀴진 레벨에서도 충분히 우려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주세의 장벽과 문화의 부재로 와인은 오늘도 콜키지만을 전전하고 있다. 물론 이 날의 나도 한 병의 와인을 지참했고, 참 뻔하게도 리슬링이었다(그것도 더 뻔한 에곤 뮐러). 이상한 글을 써보겠다고 이상한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어떤 한국 요리라면 어떤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썩 일반적인 시대. 여느 식당에서도 쉽게 어울리는 와인을 주문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기꺼이 주문하는 시대. 이곳에서의 식사는 그곳으로 향하는 과도기를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