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스 커피 - 카페 단상

모모스 커피 - 카페 단상

부산과의 물리적 거리를 생각했을 때, 모모스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게이샤나 아니냐 정도의 선택지 가운데에서 게이샤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지명도가 있는 생산자인만큼 감각은 익숙한 가운데 왜 모모스 커피여야 하는가, 왜 스페셜티 커피여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했다. 새삼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작은 우연이었다. 같은 원두를 차갑게, 또 따뜻하게 마셨는데 놀랍게도 차가운 커피의 맛이 더욱 좋았다. 스페셜티 지향의 커피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도 안될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다. 팔레트의 신맛이나 핵과류의 경쾌한 향이 얼음이 부딪히는 촉감과 이어지는 감촉이 이렇게 좋다니, 반대로 멀쩡하게 내렸을 푸어오버 커피가 이렇게 무디다니. 단단히 닫은 뚜껑을 열고 나서야 떠오르는 점이 있었다. 혹여나 이 뚜껑 때문이었을까.

커피 제3의 물결을 둘러싼 배경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도시에 앉아 마시는 입장에서는 명확한 지향점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맛이다. 좋은 커피가 주는 강한 맛의 쾌락, 그를 떠올리는 두근거림, 다시 만났을 때의 안도감. 위선이어도 좋으니 더욱 커피를 위해 세심한 손길을 요구하게 된다. 커피의 목소리를 듣는다니 하는 거창한 거짓말도 좋고, 단지 소박한 노력이라고 해도 좋다. 하여간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날 마신 푸어 오버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의 그런 점을 결여하고 있었다. 파나마부터 부산까지 훌륭한 과정만을 거쳤더라도 서울에서 주저앉은 그런 느낌이었다. 사람이 잘못한 일은 없다. '홈 커밍'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환대가 있었고 좋은 날씨,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커피에 대해서는 말을 삼갔지만 이곳에서 여러분과는 이야기할 수 있다. 커피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점점 더 흔해지는 이런 임시 영업 형태의 요리가 많아지고 있는데, 굳이 요리가 예술이 되고자 한다면 무대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지만 모든 요리에게는 그에 맞는 무대가 갖추어져야 한다. 비싼 집기나 많은 인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의도한 결과물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충분한 숙고를 거쳐 만들어진 그런 무대 말이다. 이 날 이 공간은 애석하게도 한 잔에 만 원짜리 커피를 담기에는 그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