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겐스위치 - 형식적 형식

미학이나 건축에서 종종 쓰는 말로 형식이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말이 있다. 모더니즘 미학을 대변하는 테제로 모든 요소는 나름의 쓸모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유일한 사조는 아니므로 절대적으로 신봉할 것은 아니지만, 그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지점이 있다. 이 테제는 무의미한 형식의 퇴출에 기여했음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는 형식에 대해 다시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과연 이 형식의 유지는 합당한가? 무심코 지나갔을 것들을 다시 보면 그 자리에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요리는 예술로서 이러한 사조의 발흥이나 쇠퇴와 함께하지 않았으나, 미학적 사고는 서구 요리사들에게 꾸준히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기에 요리 역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과거 서양 요리의 금자탑으로 여겨졌던 프랑스 왕실, 부르주아 요리는 무수한 가르니튀르로 둘러쌓여 잉여를 쏟아내는, 낭비의 극치를 보여주는 형식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 미요, 누벨 퀴진의 등장과 함께 대대적으로 변화하였다. 무의미한 장식들이 퇴출되었으며 의례적으로 쓰이던 재료들의 본질이 다시 탐구되었다. 관성과 경험에 의존하는 조리법들 역시 차례로 정비되고 그 원리가 밝혀졌으며, 환상적 요소들은 제거되었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주방에서 모든 화구를 제거하고 인덕션만으로 요리하기 시작한 것은 아직까지도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라멘이라고 해서 이러한 모더니즘적 사고가 유용하지 않을리 없다. 그 형식의 논리에 대해서는 비슷한 요리를 다루는 하쿠텐을 다룬 글에서 다룬 바 있다. 같은 시각에 비추어 무겐스위치의 음식은 어땠는가? 점도가 썩 괜찮은 가운데 맛의 농도 역시 좋은 국물은 특출난 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먹기에 흠 잡을 것 없는 가운데 기타 형식의 하자가 돋보였다. 하우스에서 키운 듯한 시금치는 무성의하게 데친 가운데 시금치 자체도 맛이 지독하게 없는 종류여서 인상을 제대로 망쳤다. 불쾌한 쓴맛, 삶은 물에서 나오는 불유쾌한 향이 남아 불필요한 형식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가공품에 별다른 손을 쓰지 않은 느낌의 멘마나 달게 조려 얹은 달걀, 차슈 역시 국물이 가진 강한 맛의 인상과 제대로 호흡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각자 어떤 맛을 가지고는 있지만 고루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결국 왜 메뉴에 이름을 굳이 '풀토핑'으로 했는지만 알 수 있었던 셈이다.

종종 언급하듯이, 나는 반드시 레퍼런스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곳은 애초에 그것을 보고 참고하는데 그칠 뿐 노렌와케(暖簾分け)를 받았다거나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매일 필요가 없다. 단지 그 합리성을 체득할 수 있다면 그뿐이다. 그러나 무겐스위치의 음식은 그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저 형식이기에 따라할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그렇다면 무겐스위치의 장점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 국물이 좋다. 둘째, 줄을 서지 않고도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셋째, 빨간 테이블 덕에 사진이 자극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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