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슈 벤자민 서울
먼저 말하지만 코리 리가 오너가 아니고 컨설턴트라는 걸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너 셰프가 아닌 기업의 스폰서를 받거나, 계약직 내지 월급쟁이로 셰프가 고용된 레스토랑의 형태가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는, 특히 외국 요리를 한다고 하면 나는 특히 꺼린다. F&B 사업에서 수익 이외에도 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사업 주체가 드물며, 열심히 하는 척 하다가도 사세가 기우는 순간 우리가 익숙한 그 모습들로 돌아가는 경우가 매우 잦기 때문이다.
담배회사의 가족들을 미워한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여기에 더해 경영이 악화일로를 걸어 매년 십억 대의 적자에 더해 직원은 무경력자를 채용하고 있다면.. 프랑스 요리가 아니라 뭘 해도 지옥으로 가는게 당연한 이치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맛보고 평가한다는 황금률을 위해 예약했고, 앉았고, 이런 비스트로에서 음식에 쓰기로는 충분히 썼다. 전부 논할 필요는 없고, 중요한 부분만 다뤄보자.
재미없는 달걀 농담(달걀 하나가 프랑스어로...)을 떠올리게 하는 뻔한 요리가 정말로 뻔한데, 나는 이 달걀과 빵, 두 가지만 보아도 이곳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 보인다고 생각한다. 코리 리가 자신이 배운 프랑스 요리의 기술을 조금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SF의 본점에 대해 소개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청명하게도 특별함이 없다. 흰자의 변성은 분자미식학에서 가장 유명한 주제이지만, 그와 무관한 가운데 내는 온도 하나만이 조금 차갑다는 기억 뿐이다.
한 덩이를 가로로 썰어낸 걸 다시 반으로 가르는데 KRW 4000인 "컨트리 브레드"는 특히 집중해서 맛보았다. 썩 좋은 인상도 있었으므로 다시 주문하기도 했다(물론 비용도 다시 지불). 샌 프란시스코의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연출하는 사워도우를 예상했고, 그것을 잘 하기를 기대했다. 스스로 설정한 값, 버터도 발효, 빵도 사워도우. 유료 빵. 어찌 보면 제빵을 실력과 취향의 영역으로 논하기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아닌가.
피에르 가니에르의 인덕션 주방이 열의 극단적 통제와 과학적 실재 등 분자미식학의 주요 정신을 드러냈다면, 다시 자연의 것을 태우는 열의 개성은 뉴 노르딕 퀴진, 즉 노마 이하 어디께의 흔적이다. 물론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주방에서 들리는 언어를 듣자하면 이쪽을 다분히 참조했다고 보는게 가능성 높은 추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맥락은 맛에서 설득 가능할 때만 유의미하다. 빵의 산도만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을음의 향이 압도한다. 나쁜 경험은 아니었지만 혼란스럽다. 그 자체로 달걀보다도 훨씬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빵을 가릴 이유가 짚이는 바가 없었다. 가격을 따로 받기는 하지만 다른 요리에 곁들일 용도는 여전한데, 이러한 개성은 사족으로 느껴진다.
프랑스를 언급하지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샌 프란시스코의 요리, 즉 왜 샌 프란시스코에서는 특정한 조리 문화가 생겼는가 하는 지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텐데 스스로의 사워도우의 흔적을 지우려 애쓴다. 사워도우를 식사의 맥락에 배치하느니 사워도우같지 않은 사워도우로 만들면 좀 나을까? 그렇다면 사워도우는 왜 만들어져야 할까? 차콜 그릴은 왜 현대 주방에 부활했을까? 이러한 이유들이 두서없이 섞이고 있었다.
시그니처 칵테일도 마셔보았지만 이쪽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와인 리스트보다 칵테일이 눈에 띄는 메뉴 구성은 감동적이었고, 무려 다섯 종이나 있다니 세상에나! 모두 가격은 KRW 23000.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달고도 자격미달의 음료를 내는 곳들이 있음을 감안하면 이곳의 실행은 가히 충격적으로 좋다고 해야겠지만... 더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지는 않겠다. 확실한건 바텐더가 고용되어 있고, 최소한의 요소들이 고려된 음료를 제조하고 있다는 점.
샌 프란시스코 레스토랑, 그리고 비스트로라는 점을 감안해서 공식 홍보물에 등장한 요리들 중 하나는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 햄버거를 사진으로 남겼다. 번은 지방이 극단적으로 쓰이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푹신해서 패티와 함께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촉감이 좋다. 다만 올드 패션드 패티는 조미가 모자란 가운데 굳이 프랑스를 입히기 위해 선택한 치즈 또한 역부족이다. 세부적으로 논하자면 또 논할 게 많겠으나, 이 두 가지가 전체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되는 부분과 안되는 부분, 두 가지가 명확하게 나뉘고 있다.
디저트는 정말 가장 많이 기대했던 분야였다. 아이스크림 하나 내는 것도 버거워하는 곳이 많은 서울, 수십 만원짜리 파인 다이닝에서도 전형적인 디저트의 재현 내지 조악한 분해물 따위를 내는 서울이다. 오픈과 동시에 시그니처인 아이스크림과 디저트 플레이트도 있다니! 여러 디저트 가운데 매장의 시그니처로 팔미에 아이스크림, 그리고 개인적 관심사로 바나나 포스터를 응용한 크레페를 선정했다.
팔미에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야심찬 레시피다. 팔미에를 왕창 부수어넣어 반죽 겹겹에서 나오는 풍성한 버터와 캐러멜 향을 즐긴다. 거기에 칼바도스가 약간의 뉘앙스를 더해 단맛의 경험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는 레시피인데, 칼바도스에 사과나 배 소르베라는 뻔하고 안전한 선택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과자에 증류주, 그리고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다시 하나의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진다니! 하지만 나는 사실 뻔한 비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코젯으로 만들어진 아슬아슬한게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아니었다. 한껏 손목힘이 들어간 스쿱은 완벽하게 서걱서걱했다(icy). 배치 프리저로 만들었고, 레시피와 보관 방법 둘 다 어딘가 어긋났다. 상상은 상상으로 끝난다. 아이스크림이 충분히 부드럽지 않으니 팔미에는 텁텁함을 더하는 지경인데, 아, 차라리 파코젯이었다면 그 익숙해지지 않는 질감이라도 즐겼을텐데.
단맛의 크레페pâte à crêpes sucrée와 바나나의 조합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바나나 포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재미를 더한 크레페는 결국 뜨거운 것과 찬 것이 섞이는 곤죽같은 디저트이다. 실행 전체에 있어 크게 결함이 없는 가운데 가히 미국 요리스러운 폭발적인 길티 플레져까지 지니고 있었다. 다만 이것은 전적으로 의도되지 않은 듯한 무너진 단맛의 균형은 온전히 전부를 해치우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바나나의 질감이 전형적인 크레페의 관행을 좇고 있던 점이야 이제는 뭐 아무렴.
이렇게 단품들을 늘어놓고 이야기하며 일부러 맥락을 엮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대부분 눈치 채셨으리라. 많은 요리들은 같은 인상을 공유한다. 계량과 매뉴얼 등으로 구성되는 레시피로 해결되는 맛의 개념적 부분, 그리고 큰 얼개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고 심지어 서울의 보통의 경우에 비해 확실히 밝은 지점도 있다. 어떤 요리를 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명확하다. 하지만 실행으로 완성되는 조리의 디테일은 열악하다. 홈페이지를 비롯, 들리는 소문까지 더해 코리와 그 스승인 켈러 선생님의 이름을 열심히 팔고 있지만 이 레스토랑은 그들이 지향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설계하고 있지도 않은 가운데, 조리는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할 단계에 있다. 반죽이나 소스 등의 프렙, 오븐이나 그릴은 어찌저찌 완성되고 있지만 이외의 세밀함은 지나치게 역부족이다. 차라리 위대한 스승들의 이름을 꺼내지도 않았다면, 장소가 조금 더 한적한 곳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지극히 서울의 어린 조리사들에게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전체를 휘감는다.
FOH는 아예 이 분야의 기초적인 것조차 교육받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호텔 뱅킷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보다도 경험이 없었을지 모른다. 경험이 없으면 배우면 되는데, 그럴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채 홀에 쫓기듯 섰다. 아마 대우는 묻지 않아도 최저시급 근처가 아닐까. 그들이 모두 무슨 죄가 있겠나. 코리의 말처럼 식구들에게는 나는 너그러이 대하고 싶다.
심지어 서울 지점의 헤드 셰프와 각 수 셰프들마저도 책임이 없을지 모른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이름보다도 근무한 레스토랑이 유명한 젊은 요리사들이니까. 그렇다면 이 레스토랑이 이렇게밖에는 될 수 없는 책임은 이렇게 사업을 구상한 경영자,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허용한 컨설턴트 코리에게 있다. 우리말로는 적절한 번역어도 없지만, Restauranteur는 이 분야에서 헤드 셰프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는 막중한 역할인 만큼 그 직무를 엉터리로 수행하면 결과물에도 당연히 엄청난 영향을 가져온다. 그 잘못된 설계 때문에 젊은이들이 감히 떠안기 무거운 대스승들의 이름을 걸고 필연적으로 객을 실망시킨다. 샌 프란시스코를 서울에 복제한다는 공상은 공상으로 끝난다.
- 사족으로, 전화 연결음의 메시지가 가히 충격적인데 운영 주체의 부정적 탁월함이 돋보인다. 약속과 평가 따위의 굴레들이 아니었다면 이 연결음만으로도 위기를 직감할 수 밖에 없는 구린 멘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레스토랑은 한동안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나? 참으로 벌써 서울 도회지의 내음이 담뿍 묻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