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커피와 아이스크림

어느 날의 커피와 아이스크림
짧은 대전 출장 소고

장경동 선생에게 볼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탄방동에 가겠다고 벼르던 차였다. 그래, 대전에 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고? 아이스크림만 먹고 온 것은 아니다.

언제나 독자를 서울 생활권 거주민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대전광역시를 논하는 것은 다소 경우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참에 수도권의 눈에서 바라보는 대전 기타 도시의 입장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도권 사람들은 지방에 무언가 다르거나 새로운게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도 또 있어 보인다. 대구의 뭉티기, 광주의 오리탕 등등. 프랑스 사람들이 달팽이 조리는 부르고뉴식으로, 토마토와 닭은 프로방스식으로 조리하듯이 우리에게도 지역적인 요리들이 있다고 하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대전이라는 도시는 어떠한가? 애초에 20세기에야 도시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곳이라 그런지 "성심당"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그 성심당의 열풍마저 그닥 오랜 것이 아니다. 성심당이 대전 곳곳에 체인점을 밀어넣을 때만 해도 성심당이 대전을 대표하는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지역을 빵으로 대표한다는 인식 자체가 흐릿하지 않았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성심당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 체인점들이 죄 사라진 후, 캬바레 간판이 달린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폭파되는 등 원도심이 본격적으로 정비(혹은 난개발)되면서였다. 김연아를 내세운 뚜레쥬르, 말할 필요도 없는 파리바게트 이런 것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빵집의 안티테제로서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빵집의 존재가 유의미해진 것은 아닌가. 증명하지 않은 단순한 가설이다.

여하튼간에 그런 이유로 이제는 대전을 성심당이 상징한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성심당을 먹는 것이 대전의 식문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전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튀김소보로가 나오는가, 혹은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대전 부르스" 부르며 동명의 떡을 나누는가, 밀가루로 흥한 도시이지만 그들의 삶에서 빵은 쉬이 읽히지 않는다.

나는 대전, 전통적인 충청권과 구분되는 대전, 혹은 비수도권의 내륙도시 대전을 읽으려면 빵이 아닌 다른 것들도 맛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를 보여주는 요리는 아무래도 국수다. 분기점 역할을 톡톡히 한 대전역을 상징하는 요리는 "가락국수"가 아닌가. 근교 전체에 널리 퍼진 바지락 칼국수와 붉은 공주칼국수 또한 근현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후자라면 떠오르는 것은 주로 민물 요리다. 새뱅이탕, 올갱이해장국 등. 그러나 이런 요리들을 미식Gastronomy/Gastronomie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국 요리들과 수평적인 비교 대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고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서울의 관심에서도 빗겨나간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이 도시에서 존재하는 미식 문화는 무엇이 있는가?

결국 주저 앉은 결론은, 바로 개인이었다. 이 도시에서 특정한 장르가 유행하지는 않지만, 요리에서 자신을 그려내는 사람은 있지 않을까. 지역, 혹은 시대의 맥락에서 벗어나 결국 한 명의 사람이 보이는 음식들을 찾아 나서자. 그 생각으로 탄방동에 차를 댔다.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추천에 의지해 마시게 된 두 잔의 커피가 우유 탄 것과 핸드드립이라니 과연 "킷사텐"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흔히 반쯤 농담으로 일본에서 주로 보이는 강배전 일변도의 로스팅을 석탄이라고 하는데, 성장부터 가공까지 스며든 원두의 개성을 살리는 로스팅을 중시하는 견해에 입각하여 붙인 멸칭이다. 그러나 덖고 내리는 과정까지도 커피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흔히 다크 초콜릿같은 노트로 대표되는 강배전의 풍미를 단맛과 유지방으로 연결한다. 그러나 천하의 슬레이어로 내린 커피를 이렇게 써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렴인가. 하지만 그 누구도 "아무렴"이라는 결론을 허용하지 않는게 커피 아닌가.

"정통방식으로 소량제조" 한다고 하는데 뒤에 보이는 소형 제조기, 칼피지아니 LB-200 G 트로닉을 보니 커피보다 몇백배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소형 제조기, 그리고 칼피지아니社 장비를 쓴다고 나무라는게 아니다. 몇 번이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나 이탈리아 유수의 소규모 가게들 또한 썩어가는 구식 칼피지아니 기계를 쓴다고 말해왔다. 기계를 비싸고 큰 걸 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어떤 기계를 이용한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도 그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커피 세계에서는 애호가들이 많기 때문에 마시는 사람이 먼저 슬레이어를 알아보지만 아이스크림 기계는 무관심하기에 거짓말하기 딱 좋다는 문제가 생긴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스스로 답을 구하지 못하는 착잡함 속에 고민했다면 아이스크림은 다른 차원에서 답이라는게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이렇게 끊임없이 발달하는데 정통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낯짝으로 아직도 아이스크림 주변을 기웃거리는가.

피스타치오랑 코코넛 & 커피, 무슨 소르베또 하나랑 여차저차 해서 한 명의 성인이 먹을 수 있을 만큼보다 조금 더 과하게 먹었다. 결국 지방을 이용해서 만드는 요리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맛이었다. 피스타치오와 코코넛은 엄청난 풍미 덩어리이자 지방 덩어리이다. 한 컵에 KRW 4000~5000이면 풍미도 당연히 옅다?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재료 따위의 특별함을 논하기 시작한게 도대체 몇 년이나 지났는가. 그런 말은 얼토당토않다. 기본적인 아이스크림의 만듦새라는게 있다. 최소한의 점도, 최소한의 농도 이런 것도 있겠지만 음식이라는게 보편적인 방향성이 있지 않은가. 아이스크림은 아슬아슬하게 혀가 풍미를 감지할 수 있는 온도에서 제공되어야 하는데, 가능한 끝까지 차가우면서도 입안 가득 들이치는 맛을 느끼는 경험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어떤 차원에서 보여주느냐가 아이스크림 가게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피스타치오가 익숙한 서울의 흐릿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다른 풍미들은 그 정도가 제각각이라 더 착잡했다.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해 일정한 값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레시피들이 짜여질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윤? 혹은 가게가 내거는 이탈리아 정통방식의 깃발? 그럼 그 방식을 고수할 이유는? 아니, 존재하는 방식이기는 한가?

작년 이맘때 쯤 경주법주 초특선을 두고 쓴소리를 한게 떠올랐다. 원심분리기를 손으로 동작하면 수제냐는 질문이었다. 수제 아이스크림도 똑같은 질타를 면할 수 없다. 알다가도 모를 전통, 자연, 이탈리아..같은 것들 속에 감추어진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커피, 아이스크림, 전통주... 언제까지 먹거리들이 물신으로 남으려고 한다면 맛있는 내일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