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Pacific Distillery Fiji, Noorbohandelen 2001 SC #20

South Pacific Distillery Fiji, Noorbohandelen 2001 SC #20

덴마크의 Noorbohandelen에서 병입한 럼과 위스키 몇 종류를 쟁여두었는데 기나긴 칩거생활의 동반자로 코르크를 뽑았다. 가장 먼저 열고 싶었던 피지 남태평양 증류소의 럼. 병입자인 Noorbohandelen은 덴마크 시골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지만 COVID-19의 위기를 맞아 통신판매를 개시하여 이제는 온라인 주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덴마크의 주류 가격에 국내 과세의 장벽이 현실적으로 가로막겠지만, 나는 그 장벽보다도 두꺼운 현실을 느낀다. 바로 럼의 맛에 대한 무관심이다.

Foursquare의 마스터 디스틸러가 촉발한 가당 논쟁 이후로 추후 설탕을 넣지 않은, 그리고 색소를 넣지 않은 순수한 원액의 세계에 대한 애호가들의 요구가 넘실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러한 담론과는 격리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권력자들의 술로 위스키나 꼬냑이 사랑받은 지도 고작 반백년, 럼은 캪틴큐라는 럼맛 리큐르의 탄생 이후로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구하기 힘든 것이 인기 때문이라면 곧 모사품이 나오는 시장이지만(우리는 동네 식당의 성공 이후 가까운 곳에 비슷한게 주루룩 생기는 풍경을 보아왔다) 럼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 있는 현실 속에서 더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정말 럼이 시장에서 말라가고 있는가? 하면 아닌 지점도 있어서 우리는 골머리를 앓는다. 딕타도르니 디플로마시코니 하는 설탕 풍성하게 넣은-즉 애호가들에게는 자주 미움받는 라벨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경이라도 할 수 있다. 개중에서도 싱글 빈티지 등 신경쓴 물건들이 있으므로 구매까지 고려해볼만 하다. 그러나 럼이라는 술이 가지는 풍미, 그 속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왜 럼을 마셔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뭐가 좋아야 국내에 들이던 말던, 불만을 가지건 말건 할 것이다. 이 럼은-비록 여러 사람과 나누느라 곧 다 비워버렸지만, 충분히 그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피지에 단 한 곳 뿐인 증류소에서는 단식 증류기를 통해 사탕수수 찌꺼기를 증류한다. 오크통에서 최소 18년, 약 20년을 견뎠는데, 증발량이 많은 열대 지방에서, 그리고 증발량이 굉장히 적은 북유럽에서 각각 몇 년을 지냈는지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충분히 많은 시간을 지냈음은 자명하다. 단식 증류로 뽑은 원액이 오크와 호흡할 만큼 호흡했다. 첫 향기는 그럼에도 원액, 즉 발효된 사탕수수가 주는 이른바 훵크(funky)라 불리는 과하게 익은 열대과일부터 그을린 무언가나 고무같은 향이 퍼진다. 공격적인 향이지만 곧이어 캐러멜이나 귀부와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혀의 달콤한 감각과 어울린다. 위스키에서 아이오딘 향을 감지하듯이 럼의 훵크는 곧이어 뒤따르는 오크의 바닐라와 캐러멜, 원액에서 오는 정향 등의 감각들과 화음을 이룬다.

동일 년도에 증류된 원액을 플랜테이션社에서는 평소처럼 가당하지 않고(대부분의 플랜테이션 럼은 샴페인 타령을 하면서 가당한다.) 날것으로 병입하여 익스트렘이라는 한정판으로 출시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해할만한 힘이 있었다. 프랑스로 이송되지 않고 열대 지방에서 세월을 더 견뎠기에 알콜 도수가 조금 꺾였지만 향은 두텁게 쌓였다. 첫인상의 훵크나 과실이나 야채 등의 향기까지 강렬한 풍미를 지녔으면서 혓바닥에서는 단맛으로 감돈다. 완벽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피지라는 장소와 FSPD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맛의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솔직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럼이라는 짧은 이름 속에 담겨있는 풍경이 얼마나 다양하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 자메이카나 과테말라의 럼과도, 마르티니크와도 다르다. 그러나 좋은 럼, 즉 우리가 사탕수수라는 혜택을 증류해서 얻어내는 풍미의 보편적인 경험도 있다. 바로 훵크다. 럼을 깎아서 위스키나 리큐르를 만드려는 시도들이 가려왔던 진정한 풍미. 좋은 럼은 그 자체로 즐길만 하다-알랭 뒤카스의 바바 오 럼이 결국 럼에 기대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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