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앤 코 - 흥미본위의 나르시시즘

파인 앤 코 - 흥미본위의 나르시시즘

"클래식 칵테일만 있으니 재미없다"고 불평하고 다니니 램프의 요정이 소원이라도 이루어준 것일까. COVID-19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칵테일 르네상스를 반영한 바들이 앞다투어 개업했다. 국산 호텔의 주방에서 긴자로, 이제는 세계로 무게를 옮기는가. 그러나 온전히 이제 내가 좋아할 것 같으니까 좋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것이 많다.

「파인 앤 코」는 무게를 빼고 재미에 올인한, 내 상상에 가까운 영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홈페이지에서는 RPG 메이커로 제작한 메뉴가 맞이하고 바의 소개는 유튜브가 대신한다. Death 대신 Pine. 파인과 파인애플, 아나나스라는 세계적 통칭을 떠올리면 과연 이 이름은.. 하는 잡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사라진다.

사진은 홈페이지의 메뉴중에서도 가장 먼저 팝업되는 "락 오이스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페니실린의 변형. 기주에 훈연향을 미리 입혀두었다 드라이셰이크로 질감을 형성해서 낸다. 음료의 색상, 온 더 락 서빙, 마지막을 아일라 위스키로 마무리하는 것까지. 레시피는 한참 복잡해졌지만 기존의 페니실린에서 피트가 아닌 그을음의 향을 조금 더 날카롭게 다듬은데 그친다.

가드니아는 마르가리타, 락 오이스터는 페니실린, 커피는 에스프레소 마티니, 파인 토닉은 말할 것도 없이. 심지어는 '롱티'까지? 양파나 김치는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쪽. 결국 전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가운데 전형적인 신기술들을 쓰고 전형적인 복장을 갖춘다. 주간 메뉴에는 PORNSTAR를 기억하기 위한 패션프루트를 내고 있었다. 모든 맥락이 개입하고 있는 가운데 그래서 니가 원하는 세상이 왔냐고?

물론, 바 업계를 먹여살리는 이들은 8은 위스키와 꼬냑 주문이고 2는 취한 정신에, 이성 앞에서 가오를 세우느라 주문하는 사람이겠지만 어쨌거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액체 음료로서 칵테일은 씹지 않는, 홀짝이는(sipping) 감각에 도전하는 음식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며 음료를 요리로 마시는 문화는 정규 식사가 아닌 음식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즐거움을 찾아내야 한다. 창작은 단지 그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뒤바뀌는 순간을 겪었다. 새 시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칵테일 문화에 한 획을 그은 레시피들이 이리저리 비틀리지만 맛을 보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과연 페니실린보다 좋은가. 과연 포른스타 마티니보다 패션프루트 피즈가 좋은가. 이러한 순수한 안락함, 혹은 자기애는 객에 대한 무관심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바텐더 앞에서 음식에는 소주를 마셔야지 칵테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장광설 늘어놓는 장면도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이 액체 음료 문화에서 여전히 바텐더의 바키퍼로서의 역할, 즉 레스토랑이라면 FOH에서 일어나야 할, 객의 관찰과 관찰 결과의 반영은 경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스스로 그 모습을 감추려 이것저것 바뀐, 그러나 궁극적으로 바뀌고 싶지 않은 레시피만이 주인공일 뿐 객은 레시피, 매뉴얼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텐더와 공간의 전체 손님 수가 엇비슷한 상황에서도 이게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계산에 없었겠지.

이런 종류의 나르시시즘을 마주치는 경우는 많다. 개중에는 아주 가끔씩 그럴만하다고까지 생각되는 종류도 있다. 나머지는 그것이 단지 이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수련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모자람의 발현이거나, 혹은 문화적 측면에 대한 무관심의 발로다. 이런 것과 스스로 사랑에 빠지면 객이 곤란하다. 결국 소비자가 아니라 사람이 소외된다. 바를 나오면 COVID-19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득 찬, 아마 몇 년 뒤에는 또 바뀌어있을 가게들이 가득하다. 상당수는 고기구이 아니면 지루한 서양요리를 판다. 파인 앤 코는 그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