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쌀국수 쇼다운
누구나 알고있는 쌀국수 이야기를 해보자. 쌀국수(Phở)라는 단어는 20세기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통 음식처럼 팔려나가고 있지만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 기록에 남아있는 베트남 요리의 주류는 광동 요리의 영향을 짙게 받은 중국식이었고 그 안에서 쌀국수라는 문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면의 원형이 되는 호펀(河粉)이 있어 중국의 영향이 유력하게 드리우지만 서민들이 단체로 소를 끓여먹는 풍경은 남쪽인 베트남은 물론 천자가 사는 베이징에서도 결코 흔한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프랑스인들로부터의 영향이라는 이론, 예컨대 포토푀의 포가 그 포가 아니냐는 학설부터 프랑스어의 불(feu)에서 따왔다는 민간 전승까지 다양한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가장 흔한 형태인 포 보는 20세기 이전 베트남 요리의 주류 문법에서 크게 이탈하여 있으며 북부에서 시작한 요리였으면서도 남부에서, 또 유럽 등지에서 인지도를 얻으며 이제는 뚜렷한 원형이 존재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요리가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러분께 묻는다. "좋은" 쌀국수는 무엇인가? 우리는 대답해야만 한다. 좋은 프랑스 요리, 좋은 스시, 좋은 로시니, 좋은 트러플, 좋은 모던 한식, 좋은 전통 한식, 좋은 궁중 한식도 있는데 좋은 쌀국수만큼은 왜 말이 없단 말인가?
여러분이 좋아하는 쌀국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콧대높은 유학파, 유럽 살아본 파, 유럽 관광 가본 파에게 모두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집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쌀국수는 무엇인가. 한국의 국물이 떠오르면 좋은 쌀국수인가. 만취한 다음 날 일찍 열면 좋을 쌀국수인가. 건더기가 많으면 좋은 쌀국수인가.
생각건대 쌀국수의 키는 기본적으로 소의 뼈와 양지 따위를 뒤섞어 끓인 스프의 고기냄새다. 가난한 시절 베트남에서는 소고기맛 조미료에 MSG로 흉내를 냈다고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혜택을 누리는 오늘날 소뼈와 값싼 살코기를 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프를 내는데 쓰이는 이러한 재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눈에 띄지 않되 맛으로 다시 발현해야 한다. 뼈는 그을린 다음 골수가 녹을 때까지 끓이되 살코기를 적당히 넣지 않아 고기냄새가 나지 않고 스프 점도가 높다면 쌀국수가 아니라 사골국이다. 꼬리를 쓴다면 뼈를 보충하고 정강이나 다리뼈를 쓴다면 살코기를 더해 균형을 맞춘다. 결국 필연적으로 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끓이다보니 부담스러운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겹겹이 쌓은 향신료로 덮는다. 양파, 생강, 샬럿, 팔각, 고수... 그러고도 습관처럼 내놓는 야채 바구니까지.
그렇게 완성된 쌀국수는 사실 한 그릇을 꼭 다 비울 필요는 없다. 올바르게 끓여낸 스프의 집중도는 계속 낮아지는 온도와 무뎌지는 감각으로 인해 반을 채 지나지 않아 떨어지고 만다. 그럴 수록 라임 즙에 이어 푸성귀들까지 쏟아넣어 발악을 하다보면 어느새 한 끼가 끝난다. 짧디 짧은 전투, 후회 없이 일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첫 한 입의 감각 때문에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음식.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얇게 밀어내 금방 익는 쌀국수의 특성상 국물의 점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지방이 많은 부위를 끓인 것마저 아니지만, 켜켜이 녹아든 맛이 한 번에 몰아칠 때 드는 안도감, 그리고 쾌감은 이 요리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이유가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파리의 쌀국수는 그 영혼을 계승하고 있는가? 그에 대해 짧게 다룬다.
Phở Bánh Cuốn 14의 경우 눈에 띄는 것은 국물의 지방 농도다. 내장을 얹어 내는 것이 신기루는 아닌 듯이 그을린 뼈나 양파에서 내는 맛보다 소기름 느낌이 있는 편이다. 그 스타일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가 빠르게 누적되는데 여러 양념(특히 스리라차)으로 버텨내 보았자 좋은 그림은 아니라 생각한다. 작게 먹을 수 있다면, 남길 수 있다면 반대로 의미 있는 식사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평단의 인정을 받는 곳은 이름처럼 덜 익힌 쇠고기를 얹어 내는 포 타이인데, 맛보기 전에는 반대로 가장 불신했다. 쇠고기야 씹어봤겠지만 국물에 쌀 말아먹기로 이것들이 알면 얼마나 안단 말인가.
하지만 포 타이의 스프는 그러한 우려를 깔끔히 씻어내는데, 스프의 선명한 두께 덕분이다. 뼈 쪽으로 균형이 치우친 가운데 향신료와 채소, 특히 샬롯이나 양파 느낌이 단맛을 살짝 당기고 토핑의 철분 뉘앙스, 그 다음의 고수나 위에 뜨는 라임 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명쾌하고 좋다.
골미가 가장 눈에 띄게 다가왔던 곳은 쌀국수가 맛있기로는 굉장히 뜬금없는 위치에 있는 하노이 1988이었다. 비밀 없이 오래 끓인 뼈의 느낌으로 살맛보다 뼈맛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위 두 곳과는 또 다른 토핑 스타일로 이를 극복해낸다. 식탁에 내기 전에 센 불에 졸일 수만 있다면 가장 찾는 모습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디가 제일 맛있는데"라고 묻는다면 상술한 기준에 기대었을 때 뚜렷한 답을 내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위에 제시한 방향에서 이탈하는 곳은 없었고, 스프부터 가니쉬까지 이어지는 향신은 결국 주제가 빛난 다음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국물의 두께에서는 하노이 1988이 앞서나간다. 하지만 정점에 이른 한 곳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포 타이가 빕 구르망을 받은지도 세월이 꽤 흘렀고, 전유럽의 요리사들은 일본 아니면 덴마크 냄새를 좇느라 여념이 없는 가운데 정작 진짜 아시아 요리를 갈고닦을 후발 주자는 이곳에서도 찾지 못했다.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정치인들은 도움은 커녕 방해밖에 되지 않았지만 쌀국수는 참으로 아름다운 음식이 됐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와봤지만 비빔밥이나 불고기가 맛있는 해외의 한식당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와서 밀어준다고 국수 건조대에 훈풍이 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때가 늦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