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S'eveille - 만듦새
갸토 마르퀴를 이트인 한정으로 낸 날이라서, 모두가 갸토 마르퀴를 주문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벌써 흐릿한 기억이 되어버린 '무슈 아르노'를 놓칠 수 없었고, 기세를 따라 다른 케이크를 조금 더 담았다.
가장 왼쪽은 '바바 바니유 오 럼', 바바 오 럼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바바를 바나나 무스로 감싸고, 샹티 크림에는 초콜릿을 살짝 더해냈다. 우측의 두 개와 달리 유일하게 비교적 근래의 창작품으로, 뼈대가 단단한 가게에서 부릴 수 있는 기교를 담았다. 초콜릿과 바나나라는 쉽고 선명한 맛으로 시작해 안쪽에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축축하게 젖은 바바 반죽이 바바 오 럼의 정수를 드러낸다. 가볍게 친 샹티 크림과 초콜릿 코팅, 그 안에 담뿍 젖은 바바라는 문법은 여러 차례 변주되는 가네코 파티셰 특유의 견해로 자리잡았는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뼈대가 두터우므로 변주가 쉬운 것이다.
'무슈 아르노'는 정확한 탄생의 경위는 불명이고, 단지 오너 파티시에인 가네코 씨가 프랑스에서 아르노 MOF의 밑에서 근무하던 중 얻은 영감으로 구상했었다는 것만이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거의 20년 동안 그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아있는데, 근대 프랑스 제과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아르노의 매장 색이기도 한 오렌지를 한껏 입힌 초콜릿이다. 가네코 파티셰의 작품 중에서 '파리'에 대한 인상을 상징하고 있는데,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크림과 초콜릿 디스크, 그리고 진중하게 으깨지는 다쿠아즈 바닥으로 이루어진 레이어가 자연스레 오렌지와 생크림에서 견과류와 초콜릿으로 진행을 이끈다. 오랑제트같은 제과에서는 오렌지의 강한 존재감으로 끝을 맺지만, '무슈 아르노'는 약간의 치감과 무거운 식물성 지방의 느낌으로 끝맺어 첫맛의 강렬함을 편안하게 완성한다. 물론, 충분히 떫은 홍차나 커피가 있어야만 하는 설정이다.
바닐라 타르트에 대해서는, 피에르 에르메가 '인피니멍' 시리즈에서 바닐라의 뉘앙스를 멕시코와 타히티종으로 확장해냈다면 가네코의 바닐라는 마다가스카르의 한점돌파를 추구하는 인상이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은 바닥지 뿐만 아니라 중층에서도 느껴지는 확실한 아몬드의 존재감과 높은 점성의 일관된 표현이 눈에 띈다. 맛과 질감에서 모두 정제를 통한 절제라는 확고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기억에 남는 경험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오브제는 되어줄 수 없겠지만 - 어쩌면 '한국의 OO가게가 더 기억에 남는다' 따위 감상의 희생이 될 지도 모른다 - 일상의 반복을 위한 바닐라 요리라면 넉넉히 수긍할 수 있다. 바닐라 타르트는 잠시 유행이 지난 뒤 서울에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상태인데, 돌아보면 바닥지의 단단함과 무른 가나슈나 크림 사이에서 무슈 에르메처럼 무언가를 채워넣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았다. 결코 이쪽을 얕볼 것이 못 된다.
하나하나 단순히 이야기를 늘어뜨린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제과를 관통하는 한 사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가벼운 질감과 엮어내는 맛, 그리고 무거운 질감과 엮어내는 맛을 상정하고 중심적인 맛과 보완하거나 대비를 이루는 맛을 배치해서 완성한다. 제과는 기본적으로 층층이 쌓아올려 한 번에 여러 구성 요소가 입안에 밀어닥친다는 점을 감안해 질감이 대비를 가질지, 일관성을 가질지 방향을 잡고 그 방향성을 선명하게 연출해내 맛이 쉽고 확실하게 다가온다. 가르고 씹는 행위에 낭비가 적다는 인상이다.
카렘 선생 덕분에 케이크를 잘 만드는 사람은 건축의 미감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랜드마크를 짓는다는 느낌이 아니고 주택 단지나 산업 시설을 짓는 건축의 감각이 필요하다. 구조는 기능에 충실해야 하고, 실행은 그 의도를 충분히 담으면 그만이다. 도시재생의 임무를 띈 미술관 같은 감각은, 이렇게 반복하여 다량을 만들어야 하는 케이크에서는 후순위이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아는 것을 잘 실천해서 이 가게는 지유가오카가 오후의 나른한 차 한 잔과 케이크의 명소가 되도록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이 가게를 제대로 즐기려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