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 메종 - 2022년 봄

페 메종 - 2022년 봄

십년도 전에 서울에서 쓴맛을 보고 없어졌던 소피텔 브랜드가 KT의 손에서 다시 등장했을 때 나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 사이트의 운영과는 무관하게 아는 소식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은 이곳에서 이야기하기는 적절하지 않고 하여간 나에게 있어서는 과거 통신사 건물이 있던 부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이곳의 요리 역시 기본적으로 비스트로를 표방하며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국적성을 내세우는 소피텔의 적당한 포장지 역할에 걸맞는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예 마케팅은 점심과 주말 뷔페 메뉴 위주로 짜여져 있는데 가스트로노미 프랑세즈의 꽃은 저녁의 만찬임을 감안하면 이곳의 요리를 두고 논할 이익은 없다시피 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셰프가 와인에 맞는 저녁 메뉴를 따로 구성해서 코스로 낸다고 하여 내 발목을 붙잡았다. 뷔페, 비스트로 그런 간판들은 떼버리고 주방에서 하고 싶은 요리를 할 기회가 주어기지는 하는구나. 그마저도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 만큼 기대를 걸었다.

방문 전

페 메종의 예약은 네이버 예약, 전화 예약 및 자체 사이트 프로그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가능하다. 카카오톡 자동 알림이 발송되며, 이외에는 방문 1~2일전 전화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있고 당일에는 확인 전화를 하지 않는다. 예약 과정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는데 호텔 내부의 예약 관리 시스템이 직원들에게 적절하게 인수인계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요리

pain de campagne

"식전빵"-그 이름을 부르게 된 젊은 서버들에게 나의 애도를 바친다!-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캄파뉴를 내는데 본래의 정체성인 비스트로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부풀림을 유지하기 위해 발효로 얻는 속의 맛을 썩 희생한 그림의 빵이었다. 꼭 오븐에서 '갓 나온' 신화가 아니어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는게 이런 덩어리 빵인데 그러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 말고 나중에 빵 한 바구니를 새로 받았는데 갈라진 부분grigne이 거의 열리지 않은 쪽도 있는 등 고르지 않아 여러모로 마음을 접었다. 껍질은 포기.

크레망에 굴로 시작하기에 이즈음에 (빵과 함께) 빠르게 기대를 접었는데 단품이 아닌 와인과의 짝짓기를 감안하여 최선을 다한 주방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 마음의 문을 열었다. 래디쉬나 소렐 등 보이는 요소들이 더해져 씹기의 다층화, 그리고 기본적인 맛의 다각화를 노림과 동시에 와인의 특징을 돋우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이 마치 준비된 과제를 수행하듯 그려졌는데, 짧은 시간 안에 조립되어 나오는 것 이상의 조리가 어려운 여건상 대단한 만족감이 있기는 어려웠으나 그 의지는 높이 살 가치가 있었다.

도저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소피텔의 글로벌 캠페인 홍보물들처럼 본래 페 메종의 메뉴 역시 그놈의 고전 어쩌구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었는데, 이날 요리는 그런 틀을 완전히 던지고 요리사의 얼굴을 코앞에서 맞닥뜨릴 수 있었다. 역시 알리고떼와 처음부터 짝을 맞출 생각으로 만든 요리로 샴페인과 적당히 만든 Bite가 아닌 키르, 그것도 키르를 변형한 요리라니 그 소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스트로노미의 즐거움의 계단을 하나 더 오르는 듯 했다.

세비체라는 요리의 본질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었는데 역시 현장 조리인력의 한계로 보인다. 기름이 부담스러울정도로 많은 양식 방어인데 사실 이름만 세비체지 산과 접촉하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으므로 충분한 표면적을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으므로 고스란히 조리가 되지 않고 남은 지방을 씹으며 입안에서는 물리적 조리가 계속되고 만다. 카시스의 맛이 썩 두텁게 남아도는 소스로 입안을 적시고 알리고떼로 입안을 닦으면 정말 키르에 멋진 전채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 순간 생선 지방이 남아 씹히면 그 아쉬움이 사무친다. 카시스부터 금귤까지 이어지는 신맛의 가락의 정교함도, 키르를 떠올리는 즐거움도 그것을 차마 가리지는 못했다. 평가를 붙이자면 '복합적'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리라.

그에 반해 산이 아닌 열조리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블럭을 보다시피 저런 형태로 떠냈음에도 조리 상태가 안정되었고, 그 위에서 소스는 편안하게 뛰어놀았다. 캐비어는 보다시피 무용의 수준이었으나 소스는 즐거운 신맛과 딜이나 샬럿 등을 떠올리게 하는 향 역시 고르게 분포하여 빵의 짝으로도 적절히 기능했다. 젊을때 마시기 좋은 완성도의 신맛과 과실향이 잇는 짝짓기의 즐거움은 정말 뻔하게 좋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진에서도 대번 보이듯이 빠르게 키우고 월령이 길지 못한 한국 오리는 명확한 한계가 있으므로 과연 일종의 바베큐 조리법인 퓌메로 무슨 재미를 보겠느냐 싶었는데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요리사의 재치가 단연 돋보였다. 바로 카카오닙스로, 주부터 가니쉬로 세워둔 샐러리악까지 카카오닙스의 떫은 맛이 오리 풍미의 모자람을 압도했다. 물론 지방이 풍성했다면 더더욱 압도적인 그림이 되었겠지만, 접시에서 그을음의 향기를 이끌어내 와인의 오크향, 탄닌의 떫음까지 연결하는 솜씨가 과연 발군이었다. 잘 조리한 샐러리악과 처트니의 단맛은 훌륭한 조력자였다. 초반의 파격부터 전형성을 살짝 비트는 잔재주까지 셰프의 머리가 열려있으면서도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음을 절절히 느꼈다.

뵈프 부르기뇽은 어찌 보면 요리학교 졸업류 식당들이 이미 절찬리에 우려먹고 있는데 반해 정작 열정이 있는 주방에서는 자칫 재미를 더하기 어려울 수 있는 메뉴인데 한끼 식사의 절정을 구성하는 방법은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분이 읽으셨듯이, 이날 주제는 와인과 요리간의 궁합이었는데 과연 뵈프 부르기뇽을 어떻게 해야 와인과 더 잘 맞출 수 있을까? 뵈프 부르기뇽을 뭘로 만드나를 생각하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방법이 하나 있기 마련이다.

이미 한 번 '다운' 당한 상태로 즐거움에 대한 날카로움이 한껏 무뎌져 있었으나 하나 잃지 않은 것은 저 덩어리의 내부가 다행히도 건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완벽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젤라틴이 살짝 끈적하게 남은 정도로 수분은 유지되고 있었으며, 고기의 선택부터 추구하는 맛의 그림이 올바르게 가고 있었기 때문에 대세에 지장은 없었다. 앞선 흐름에 비추었을 때 절정이라 부르기 모자람이 없었다.

디저트는 일단 뭘 굽고 자시고 할 사정이 마땅하지 않다는게 눈에 들어오는 현실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는 감상. 파코젯 돌린 소르베는 기대같은 만족감을 주었으나 모든 주변 구성들은 정교함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와인의 거센 단맛을 받아낼 수 있는 구성도 아니며, 그 향과 맞추기 위해 여러가지 쌓아 올렸으나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총평: 페 메종에서 선보인 저녁은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셰프는 현지 사정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사이사이에서 건넨 제안들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기기에 충분했다.

가장 만족한 점은 역시 요리와 와인,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짝짓기라는 식사의 형식에 대한 놀라운 이해도이다. 각 요리들은 기본적으로 왜 음료가 요리마다 따라붙는지, 20세기까지 꾸준히 이어지던 750ml단위의 음료 서비스가 오늘날 왜 잔 단위의 서비스로 미분되었는지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키르나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같은, 와인을 주제로 한 요리까지 성공해내는 요리사의 기술과 열정은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카렘 시대에 정립된 맛내기의 황금률 안에서 약간의 재치, 또는 도전정신을 더해 그녀의 요리는 색다른 인상을 빚어낸다.

그러나 조리 인력의 열악함이 종종 드러나고 마는데 이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호텔의 형편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니 지나치게 흠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본래 비스트로를 목표로, 이제는 아예 매일매일 아침과 주말의 뷔페를 처리하는게 주요 무대인 주방인데다 호텔이 보통 조리인력을 수급받는 방식을 생각하면 딱히 개선을 바라기도 어렵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으나) 같은 건물을 쓰는 업무동의 방대한 식당가를 비롯 호텔 내부에까지 F&B 일부를 외주를 줘버리는 등 오너의 F&B 사업에 대한 시각은 대충 보이는 바가 있으므로 아마도 이곳의 대부분의 시간은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게 끝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 요리사는 조금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먹는 이들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

서비스: 의욕이 있지만 경력이 부족한 이들과 경력은 있지만 절대적 수가 부족한 이들의 악전고투. FOH 일에 있어 전문성을 쌓는다는 인식이 없는 서울의 보편적인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가격: 와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KRW 150000. 비정기적 운영.

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