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 se - 2025년 여름

per se - 2025년 여름

워크인으로 바에 앉을 수 있었던 가게가 COVID-19를 거치며 엄청난 예약 난이도와 더 엄청난 가격을 가진 레스토랑이 되어버리는 꼴을 보았다. 다행히 뉴욕 주에서 레스토랑 예약 리셀 비즈니스가 불법화된 후[1] 이곳은 다시 찾자면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서부에서 시작했지만 그의 레스토랑, '동부 그 자체per se'를 내세운 Per Se는 명실상부 동부를 넘어 미국의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TFL과 달리 도심 한복판인 콜럼버스 서클에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논쟁적인 공간이다. 뉴욕타임스의 레스토랑 비평가였던 피트 웰스가 2016년 충격적인 2스타 강등 논평을 낸 아래, 피트가 사임한 후에도 뉴욕타임스는 2024년 멜리사 클라크의 비판적 리뷰를 게재하며 퍼세를 과거의 영광을 가진, 현재를 지키지 못하는 레스토랑으로 혹평했다. 과연 퍼세의 요리, 서비스, 공간은 상품물신주의적으로 변해버린 과거인가?


  1. N.Y. Gen. Bus. Law § 391-w ↩︎

방문 전

Per Se의 예약은 원칙적으로는 tock에서 전부 관리한다. 아멕스 센츄리온이 있다던가 하는 사정이 있다면 따로 자리를 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요리

Salmon Cornets

크리스토플에서 제작한 전용 용기에 담은 연어 코르네는 TFL을 상징하는 첫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가끔씩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예컨대 연어가 메뉴의 다른 요리에 있을 때) 여전히 TFL을 상징하는 요리로 자리하고 있다.

테이스팅 코스에 포함된 샴페인 한 잔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실 샴페인이 아닌 아메리칸 스파클링으로 바뀌었다.

Seaweed Tartlet, Duck Patê
Mango "Gazpacho" Navel Orange "Suprêmes," Greenmarket Ginger, Toasted Pepitas, and Hibiscus blossoms

per se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는 뉴욕, 나아가 동부 그 자체를 담아낸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그래서 지역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강조되는데, 채소에 있어서 미 동부의 강점을 알기는 힘든 한 그릇이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볶은 호박씨의 고소함과 약간의 오일로 잡아낸 균형의 감각이었다. 차가운 온도나 맑은 질감에서 오는 청량함과 지방에서 오는 감칠맛이 교차하고, 허브와 꽃이 감각을 절묘하게 열어젖힌다.

Oyster & Pearls "Sabayon" of Pearl Tapioca with Island Creek Oysters and Regiis Ova Ossetra Caviar

토마스 켈러의 요리 인생을 상징하는 몇 가지 요리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따뜻한 굴과 사바용, 타피오카, 오세트라 캐비어. 골드만삭스 출신의 캐비어 비즈니스 베테랑과 손을 잡고 자체적으로 제작해 출시하는 캐비어를 사용하고 있다. 양식이 아닌 캐비어를 사용하던 시절부터 이어온 켈러의 요리지만, 캐비어 자체의 매력보다는 캐비어에서 타피오카, 사바용, 굴으로 이어지는 호흡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특유의 점도가 켜켜이 쌓인 감칠맛과 짠맛, 그리고 바다의 향을 입안에 붙잡은 채로 폭발시킨다. 넉넉하게 입안에 넣으면 마치 수류탄을 손으로 잡고 악력으로 으깨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샴페인을 위한 요리, 인상과 기억을 남기는 요리.

Hen Egg Custard "Ragôut" of Black Winter Truffles

페리고 스타일로 만든 소스에 달걀 커스터드. 아주 겨울 같은 요리지만 이 주방에서는 오히려 여름마다 호주의 블랙 트러플이 올라올 때 이 요리를 내고 있다. 역시 TFL의 카탈로그에서 굉장히 오랜 세월을 거친 요리인데, 화이트 트러플 오일을 커스터드에 살짝 곁들여 특징적인 트러플의 향을 증폭시켜 내는 것이 백미인 요리이다. 페리고에서도 Brouillade같은 요리가 트러플 요리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은 것처럼, 향을 붙잡고 입안에서 녹으며 풀어내는 특징 덕에 트러플의 가장 고전적인 짝으로 여겨지는 노른자와 유지방만에 집중해 완성해낸다. 마치 조형주의의 역사를 지나듯, 트러플 요리의 뼈대만을 남긴 듯 하면서도 트러플을 맛본다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Salad of Summer Melons Greenmarket Kohlrabi, Hawaiian Hearts of Peach Palm, and Opal Basil

다만 와인을 아메리칸 스파클링에서 샴페인, 화이트 순으로 짝짓고 있었던 차에 와인과 공명하는 요리는 이런 전형적인 쪽이 더욱 걸맞았다. 야자심을 활용하는 샐러드 또한 TFL에서부터 오래 이어오는 방식이지만, 식감으로 먹는 채소의 느낌인 야자심에 덜 더운 지역 특유의 느낌을 가진 메론으로 표현하고 싶은 맛의 방향이 어디인지는, 야자심의 초심자로서 알기 어려웠다. 전형적인 샐러드의 역할에 머무르기에는, 그런 요리를 기대하는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Bread and Butter" Dutch Crunch Cornbread with Hilary Haigh's Animal Farm Butter

미국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콘브레드를 낸 아이디어는 절묘했다. 다만 전통적인 빵 서비스도 하던 주방인 만큼 그런 것을 만나지 못한 점만이 아쉬웠다.

Fillet of Atlantic Black Bass Sungold Tomatoes, Japanese Cucumbers, Petite Dill, and Spicy Tomato "Consommé"

토마토를 중심으로 맛을 낸 대서양 농어는 그림은 너무나 지중해적이라 생각했지만, 단순히 지중해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흰살 생선으로 만들 수 있는 쾌락을 찾고 있었는데, 토마토의 감칠맛보다도 소금을 활용하는 솜씨에서 품격을 느꼈다. 살의 맛이 섬세한 농어를 선이 굵은 간으로 조리하면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을 완전하게 보존해냈다. 높은 레벨의 주방에서 추구하는 생선의 질감을 올바르게 현현해낸 요리라 할 수 있겠다.

Butter-poached Maine Lobster Chanterelle Mushrooms, Sweet Corn, Spanish Tarragon, and "Nage au Champagne"

옥수수를 곁들인 바닷가재는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담뿍 담은 미국 남부 요리 특유의 색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옥수수의 단맛이 버터를 타고 바닷가재의 단맛으로 이어지면서, 나주를 바탕으로 크림을 넉넉히 넣어 완성한 비스크가 가재 요리만의 인상을 완성한다. 아주 미국적이면서도 프랑스적인, 미국의 프랑스 요리가 가질 수 있는 위대함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요리를 완성하고, 또 맛보기 위해 이런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 요리의 힘이 온전히 담긴 한 접시였다.

"Suprême" of Wolfe Ranch Quail Hobbs Shore's Bacon, Flageolet Beans, Braised Kale, and "Jus de Volaille"
48-Hour Braised Snake River Farms Beef Short Rib Squash "Gratin," Jimmy Nardello Peppers, Fairytale Eggplant, and "Sauce Pimentón"

비앙드 서비스는 두 시퀀스로 이어지는데, 소스의 농도가 이제는 점성을 띄는 수준까지 올라오는, 가장 전형적인 형식의 흐름이 여러분에게도 눈에 띌 것이다. 자연스레 맛이 연한 메추리보다 갈비쪽이 눈에 띄는데, 지방은 물론 콜라겐까지 완벽하게 조리해낸 점이 눈에 띄고, 점도를 높게 해서 짜낸 소스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점도가 높고 피니시가 긴 나머지의 가락과 어울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점이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는다. 질감으로

Brie Fermier Kyoto Carrots, Medjool Dates, Summer Chicories, and Aged Balsamic
Pâte à Choux Blueberry Jam, Kendall Farms Crème Fraîche, and Valrhona Opalys White Chocolate
K&J Orchards Cherries TKO "Sablé" and Madagascar Vanilla Bean Ice Cream
Bumpy Cake Blackout Cake, Marshmallow Buttercream, and Dark Chocolate Glaze

카푸치노 세미프레도와 도넛, "Coffee and Doughnuts"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TFL을 상징하는 요리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데, 그 도넛의 위대한 완벽함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는 점을 생생히 느꼈다. 반면 브루클린의 전통을 비튼 블랙아웃 케이크는 다소 느슨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다가왔다. 켈러의 도넛과 세미프레도는 (그의 먼 방계가 되는 모수 서울에서 바로 같은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 '할머니의 추억'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차가움과 따뜻함, 반죽과 크림, 커피와 시나몬,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벽하게 통제된 도넛의 질감으로 완성되는 정교함을 보여주는 반면 블랙아웃 케이크는 유럽의 전통과 달리 초콜릿 푸딩을 밀어넣는 미국적인 설정에 대해 특별한 견해를 보여주지 못했다. 단순히 어여쁘게 만드는 것이 이 주방의 역할은 아니라 생각한다. 아이스크림도 질감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총평: per se는 맨해튼에 새로운 장을 연 레스토랑이 분명하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예상과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주방은 여전히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바로 같은 것을 변화하는 환경에서 계속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갈고닦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검증해준 두터운 레퍼런스를 활용하면서 단순히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미국적인 프렌치 레스토랑 중 한 곳으로, 바로 그 미국스러움을 충분하게 활용한다는 점에서 굳이 미국의 프랑스 요리일 이유를 보여준다.

분위기: 맨해튼에서는 대단히 고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선정한 위치에 높은 층고와 채광이 코스모폴리탄의 꿈을 가지게 해준다. 다만 과도한 도회적 느낌을 다스리는 조도와 호두나무의 조화도 잊을 수 없다.

서비스: 전문적인 교육과 반복된 실행을 통해 숙련된 프로의 감각. 효율성과 속도에서 대단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음료: 맨해튼의 억만장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가운데, 몇몇 별난 선택도 눈에 띈다.

가격: 기본 테이스팅 메뉴 USD 425. 팁, 서비스, 음료 등을 포함해 인당 USD 700~800 권장.

Per Se · 10 Columbus Cir, New York, NY 10019, Verenigde Staten
★★★★★ · Haute-cuisinerestaurant
Per Se | Thomas Keller Restauran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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