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lâne - 팽 푸알란

Poilâne - 팽 푸알란

아직도 사람 손으로 성형하고 나무 장작을 떼서 굽는 "팽 푸알란"의 무게는 1.9kg다.

이 커다란 덩어리에서는 냄새가 난다. 과거의 내음, 요새 과거 이야기를 너무 많이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도 이전의 내음이.

서양인들이 빵을 먹은 역사가 기니까 자연히 빵 종류도 다양하고 빵을 먹는 습관도 다양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긴 역사는 의외로 빵의 다양화나 품질의 개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죽지 못해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발달한 것은 생존의 노하우이다. 이스트를 저렴하게 구매하지 못하는 시대의 르뱅, 전기가 없는 시절이라 사용한 나무, 빵의 크기도 적게 성형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던 시대의 흔적이다. 과연 조선시대 수라간의 솥마저도 1인용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계산기에서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결론난 이후 이런 빵은 거의 모두가 사라졌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은 제과제빵의 총본산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을 받아(증기 오븐은 오스트리아에서, 기계식 제분은 헝가리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19~20세기를 거쳐 바게트로 전환하였고 이 덩어리에게는 "시골 빵pain de campagne"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다. 캄파뉴는 이 빵의 본명이 아니다.

푸알란은 그렇게 사라진 빵의 역사를 무려 파리 한복판에서 다시 만들어냄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돌로 제분해서 벗겨지다 만 밀가루, 타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르뱅, 바싹 구워지는 표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두텁고 단단한 껍질로 이루어진 이 빵에는 놀랍게도 현대의 빵이 잊어버린 맛이 베어있다. 누런 버터부터 파테, 살코기에 그레이비 유사의 소스까지 품어내는 팽 푸알란은 그 속에서 입맛을 돋구는 특유의 신맛과 색다른 빵 향을 선보인다.

아폴로니아 푸알란이 낸 푸알란 책은 미국 독자를 상대로 쓴 것이어서 카피용 레시피만 제공되기에 푸알란의 사워도우의 정확한 제조법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하는 것은 책의 레시피처럼 요거트를 먹여서 키우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점, 그리고 교재에 있는 것보다도 수분이 적은, 르뱅 뒤르 중에서도 좀 독한 스타일같다는 점. 2키로짜리 반죽을 일일히 손으로 몇 번이고 뒤집어 성형을 완성해야 하므로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돈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덤으로 든다. 그렇게 놀라우리만치 훌륭하게 부풀어오른 빵은 그대로 먹기에는 역시 현대적인 바게트가 주는 쾌락적 감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무언가를 곁들이다보면 진가가 드러난다. 자꾸자꾸 베어나는 신맛과 어떤 미네랄리티가 주는 전원적인 풍경이 다음 한 입을 조른다. 그리고 이토록 헐겁게 제분한 밀가루도 기특하게 부풀어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현대인의 논리 사이의 틈새를 찌른다.

물론 이 빵을 가장 이상적으로 즐기는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시골풍의 빵이라 부르지만 생각건대 이 빵의 진정한 주인은 공동체적인 삶에 있다. 크기와 맛부터 빵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져 있어야만 완성될 수 있는 물건이다. 한국에 들고와봤자 회수를 건넌 탱자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갖다붙이기는 민망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다름이 없다. 민중의 밥이 과연 지금처럼 하얗기만 했을까. 영주가 공용 화덕을 지어 이용료를 징수하던 중세~근대 서양 문화와 달리 가정마다 솥을 두던 우리 문화는 다르기야 하지만, 도정도 덜되고 잡곡도 섞인 가운데 무쇠솥에 커다랗게 지은 밥이 분명 지금과 맛이 다르기는 달랐을 거다. 그게 무조건 좋다고 하면 이제 근거없는 도그마에 빠지는 것이 되겠지만, 고민해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초밥집에서도 솥밥을 주고 한식당에서도 솥밥을 주고 쿄료리를 해도 솥밥을 주는 한국이지만 내 밥맛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곳은 저온저장고 보급해준 농림수산식품부였다.

  • 푸알란의 갈레트도 버터향이 훌륭하게 묻어났지만 미셰의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