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疋屋フルーツパーラー - 이상의 멜론
이상의 죽음은 문학적으로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937년, 그가 도쿄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그리고 다른 한 번은 1986년, 이상의 임종을 지켰던 변동림(김향안)이 죽기 전 이상이 찾았던 것이 레몬이 아니라 멜론이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을 때다.
과거 이상은 죽기 전에 "레몬 향기를 맡고 싶소" 같은 말이라고 알려졌으나, 1986년 변동림이 실은 이상이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센비키야의 메론이었다고 밝혔고, 이와 같은 증언을 『문학사상』에서 김윤식 교수가 "레몬의 향기, 멜론의 맛"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면서 과거 레몬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이상에 대한 글들은 졸지에 갈 곳을 잃어버렸다. 이어령이 서울대 재학 중 문리대학보에 기고했던 "이상론: 순수의식의 牢城과 그 破壁"에서 전개했던 선악과에 대비되는 영원한 동경으로서 레몬, 김구용이 "'레몽'에 도달한 길"에서 불멸의 것으로 언급했던 등 이상이 마지막으로 찾았던 과일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의미부여가 불어넣어졌으나, 그것이 실은 레몬이 아니라 멜론이었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었다.
이상이 강렬한 신맛을 가진 레몬이 아닌 달콤하기 그지없는 멜론을 찾았다는 것이 그의 유산을 좇았던 문학인들에게는 허망한 소식이었겠지만, 말년에 도쿄를 찾은 이상의 삶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쪽이다. 당시 이상이 도쿄로 떠난 이유, 그리고 이상이 좇던 '도쿄스러움'을 상징하는 과일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이러한 소동은 변동림의 새로운 증언이 등장하기 전에도 의심해볼법한 일이었겠지만, 당시의 문학자들은 이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으되 도쿄의 과일 유행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모양이다.
당시 일본의 머스크멜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여러 사료에 따르면, 19세기 말 일본으로 처음 멜론이 전래된 이후, 영국의 원예 품종인 얼스 페이버릿(Earl's Favourite)이 온실 재배에 성공하면서 당시 멜론 재배 업계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었다.
이 품종의 기원은 19세기 말 라드너 백작(Earl of Radnor)의 수석 정원사였던 H. W. Ward가 만들어낸 품종으로, 주인의 작위에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이 인물은 영국 사료를 통해 그 존재를 검증할 수 있는데, 그는 1891년 자신의 저작에서 얼스 페이버릿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남겨두었다.


그리고 1910년대 말~1920년대 초 온실에서 재배된 머스크멜론이 시장에 등장한 것이 본격적인 일본 멜론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막상 영국에는 얼스라는 이름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지만, 일본에서는 이 품종이 현대 머스크멜론의 시조가 되서 이를 교잡한 품종은 얼스계(アールス系)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30년 이 품종이 일본 머스크멜론의 표준으로 정착했으니, 이상이 임종한 1937년에는 시대를 선도하는, 압도적인 신문물이자 서구적 근대의 힘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금시대 센비키야의 간판으로 자리잡은 시즈오카의 크라운 멜론 역시, 이 얼스 페이버릿의 후손이다. 다만 온실에서의 인위적 재배 방식이 발전했으니, 당시 이상이 느꼈던 천필옥의 멜론과는 사뭇 다른 맛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는 90년의 세월을 지나 그가 마지막으로 놓고 싶지 않았던 그 생의 마지막의 편린을 맛보는 것이다.
김윤식은 레몬에서 멜론으로의 전환이 향에서 맛으로의 전환이라고 보았지만, 이 멜론이 그냥 멜론도 아닌 '머스크'멜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달콤하고 무거운 사향노루의 사향낭취에서 이름을 땄을 정도로 갓 쪼갰을 때 머스크멜론의 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레몬처럼 껍질부터 향을 풀풀 풍기는 정도는 아니지만, 단순히 달콤한 과일을 원한 것이 아니라, '셈비끼야'의 향기로운 최고급 멜론, 이상이 원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멜론을 찾기 전, 말년의 이상은 희망을 품고 도쿄로 이주하였으나 이내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는 참 東京이 이따위 卑俗그것과 같은 シナモノ인 줄은 그래도 몰랐오. 그래도 뭐이 있겠거니 했더니 果然 속빈 강정 그것이오"하는 그의 표현은, 근대성에서 희망을 찾아 도쿄를 찾았으나 그 인위성과 허위성에 질리고 만 그의 말년의 심경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도로아미타불 조선의 흔적이 아닌 당시 일본의 서구에 대한 열망을 가득 담아낸, 서구적 근대성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센비키야의 머스크멜론이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이상은 덧없는 바람과 근대의 허무함 사이의 고뇌를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래, 그 머스크멜론으로 만든 가공품 중의 간판, 니혼바시 센비키야 본점 프루츠 팔러가 입점한 미쓰이타워 20주년을 기념해 20년 숙성 토니 포트를 곁들인 머스크멜론 파르페를 맛보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머스크멜론 한 통의 1/6을 얹고, 휘핑 크림과 민트로 마무리한다. 과연 그 스스로도 자인하고 말았던, 존재하지 않는 근대의 꿈이 이제는 이루어졌을까? 포트와인의 진득한 단맛에도 굴하지 않는 과육의 당도는 놀라웠지만, 머스크멜론에 그치고 있는 일본의 멜론 세계가 결코 인류 지성을 대표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장 프랑스만 가더라도 샤랑테Charentais 같은 위대한 멜론을 훨씬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순수 과육의 당도는 이쪽이 높을지 몰라도, 멜론을 멜론으로 만들어주는 씹을 때의 향은 그 주황색 과육에 이것이 감히 비견하지 못한다.
물론, 프로방스의 멜론이라고 해서 센비키야의 멜론과 다른 전근대의 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근대적 원예 기술의 산물이니.
이상과 멜론 사이에서, 나는 감사와 고민을 동시에 느꼈다.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박해 받는 중에도 차마 잊지 못한 그 멜론보다 훨씬 진하고 맛있는 것을 이렇게 도쿄 복판에서 편히 맛볼 수 있다는 삶의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물질문명에 내재한 인간의 소외, 결국 '미완성의 근대'에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과오를 반복하고 있는 인류의 무력함에 다시 고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