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마쥬리 랑세 - 델리스 드 부르고뉴

프로마쥬리 랑세 - 델리스 드 부르고뉴

브리야 사바랭이나 일드프랑스의 엑스플로라투어와 DNA를 공유하는 랑세의 델리스 드 부르고뉴는 더 이상 자세히 따질 것 없이 그 자체로 완전에 가까운 치즈다. 사용한 균에서 나오는 pungent한 향과 버섯에 가까운 풍미가 있으면서도, 금방 후각이 익숙해질 즈음이면 유지방과 짙은 감칠맛에 빠져든다. 숙성이 진행되어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하는 상태가 되기 전이라 아직 칼을 사용했지만, 그 중독성만큼은 가히 아이스크림 파인트처럼 퍼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 자체로 즐기는데 급한 치즈였지만 빈 통을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즈는 "왜" 먹는가?
확실히, 우리 식문화에서 아직 이런 종류의 치즈는 일상 식품이 아니다. 김치나 쌀밥처럼, 단지 그 자체per se로 존재하고 있지 못하다. 체다를 위시로 한 슬라이스 치즈들은 샌드위치의 한 켜로, 모차렐라는 음식을 덮어줄 지방으로 쓰이는 등 개별적인 포섭은 가능하지만, 치즈라는 식문화 자체는 없다. 프렌치를 표방하는 레스토랑에서도 프로마주 게리동을 볼 수 없는게 일반적인게 우리 사정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와 같은 치즈는 "와인 안주"로 존재한다. 와인이 주인공이고 치즈는 조연이다. 나도 그런 주변의 영향을 받아 자랐기 때문에, 언제나 치즈를 보면 와인의 짝짓기를 떠올린다. 지역적 짝짓기라면 같은 고향인 지브리 샹배르탱의 피노 누아를 떠올리겠지만, 풍미를 중심으로 하는 짝짓기를 한다면 탄닌에 기대기보다는 높은 산도나 탄산감 등에 기댈만한 크레망이나 까바, 화이트라면 지역까지 고려한 뫼르소나 샤블리 샤르도네가 안전한 선택일 가능성이 되지만 극단적인 GG 리슬링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만 하다.

그렇게 와인과 열심히 짝을 지어서 서서히 오르는 취기와 함께 어느 날의 오후를 낭비한다면 치즈에게 후회 없는 한 끼였다고 할 수 있을까. 미각에 피로가 축적되면서 치즈에서 풍미를 감지하기 어려워질 때, 나는 하나의 단순한 결론을 떠올렸다. 결국 치즈를 먹는다면, <<유제품>>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나 치즈가 와인의 들러리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면, 주인공으로서의 치즈를 바라보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비참한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서울우유협동조합에서 저지종을 들여와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할 때, 나는 그 생각이 이제 널리 퍼지길 기대했다. 우유라는 음료는 섬세한 매력부터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파괴력까지,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음료라는 생각 말이다. 그 어머니는 때로는 물소일수도, 염소나 양일수도 있다. 혹독한 겨울일수도, 화창한 여름일수도 있다. 고산지대일수도, 축사 안일수도 있다. 이 동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드는게 바로 이 젖의 맛이다. 풀을 한껏 뜯어먹고 자랐는지, 겨울에 건조한 곡물을 먹고 자랐는지, 그리고 그 지역의 균들은 어떤 풍미를 빚는지 등이 전부 치즈의 맛의 이야기가 된다. 특히나 여름의 우유는 각별한 맛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유가 따로 있겠나. 맛보기의 차원에서 치즈의 경험은 그러한 세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재미가 핵심이다. 그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동물과의 동행의 지혜, 그리고 동식물이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델리스 드 부르고뉴는 일 년 내내 만드는 치즈이고 상당한 규모에서 빚어지는 만큼, 계절의 풍미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치즈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크림을 추가적으로 더하는 독특한 공정에서 나오는 짙은 지방, 그 지방을 감싸고도 남는 균의 버섯 풍미 사이에서 우유가 보여주는 균형은 미생물부터 거대한 포유류까지 우리가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것들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섬세한 치즈의 세계에서는 사료의 종류나 계절이 중요해지지만, 좋은 치즈를 논할 수 있으려면 그 이전에 우유가 이미 훌륭하다는 점이 느껴져야 한다. 랑세의 치즈들은 그 기준에서 모자람이 없다. 우리가 치즈를 맛본다면 바로 이런 점을 곱씹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좋은 치즈는 좋은 삶, 좋은 풍경의 결과이며, 치즈를 평가한다는 것은 치즈 속에 비치는 삶에서의 탁월함을 찾아내는 일이다. 연중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이런 치즈는 그 담론의 가장 밑바닥을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치즈의 수입사는 안단테데어리코리아인데, 직접 만드는 치즈는 전혀 수입하고 있지 않고 타인이 만든 치즈를 마켓 컬리를 통해 유통하고 있는데, 치즈에 대한 소개와 곁들여 평가까지 곁들이고 있는걸 볼 수 있다. 와인 짝짓기 제안을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 덕분에 독점적으로 수입하는 치즈들에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고, 전문가의 평가를 두고 가타부타를 따질 이유도 없지만, 팔아야 하는 입장의 평가와 그렇지 않은 평가를 소비자는 과연 어느 차원에서 의식하고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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