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rk in Progress:A Journal, Phaidon, 2018

A Work in Progress:A Journal, Phaidon, 2018

르네 레드제피는 아주 적은 수의, 각별한 창조자들 중 한 명에 속한다.
어떤 것들을 특정한 틈새를 통해 완전히 뒤집어 엎은 사람들.
재창조하고 재정의한 사람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The Unafraid.

파블로 피카소, 잭슨 폴락, 찰리 파커, 베토벤, 비틀즈, 세실 B. 드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쿠엔틴 타란티노, 잭 케루악, 제임스 조이스, 헌터 S. 톰슨, 스티브 잡스, 스티븐 호킹, 말론 브란도. 누가 작성하냐에 따라 이 목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르네 레드제피는 반드시 포함된다. 진정한 개척자 중 한 명, 최근 10년간 요리의 세계에서 그가 해본 일은 거기에 걸맞는다.
르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의 용기가 창조해온 결과물의 수혜자들이다.

이 서문은 메탈리카의 드럼을 맡고있는 라스 울리히가 작성했다. 음악과 요리의 만남은 오트 퀴진의 단계에서 낯선 것은 아니지만, 포문을 연 선구자들의 등장 이후 이러한 현대적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일레븐 매디슨 파크」의 정신은 마일스 데이비스로 대변되며, 북유럽 요리가 오트 퀴진의 식탁을 새로이 정의한다.

이 책은 전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므로, 전형적인 쿡북의 방식으로 여러분을 돕지 않는다. 저널이라고 하지만 정기간행물을 떠올릴 수는 없는 일기장에 가깝다. 다행히도, 앞서 언급된 제임스 조이스가 시도한 것처럼 의식의 흐름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논의 없이도 그의 생각의 흐름을 좇을 수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보다는 창의성creativity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창의적이라고 여겨지는 르네 레드제피를 통해 우리는 그 답에 닿을 수 있을까?

Create의 어원을 살펴 들어가면, 땅에서 솟아나는 식물이나 알, 혹은 몸 안에서 탄생해 나타나는 것들에 대한 감상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무에서 유로 가는 과정은 성장일 수도, 혹은 창조나 탄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지 않은 곳에서도 일어나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매달리는가?

그를 좇아 걷다보면, 창조는 바로 결핍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대체 세상에는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가?

가장 먼저, 현대 오트 퀴진을 이끄는 셰프들이 잘 보여주고 있는 이유대로, 세계의 요리들은 여전히 지나치게 교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분과학문이, 모든 예술형식이 교류를 통해 빈틈을 메꾸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그러나 오트 퀴진은 각 문화권, 특히 서구 선진국의 편견 어린 시선에 묶여 요리의 가능성을 스스로 묶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니케이 요리의, 마오리-사모안 요리에 쓰이는 채소들의, 말차를 우리는 방식으로 발트마이스터를 우렸을때의 맛에 대해 알지 못한다.

두 번째로는, 우리는 과거의 유산들을 더 잘 정리하고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전통과 경험에 입각한 조리법들은 열과 미생물 등의 작용으로 다시 설명되며, 레시피는 권위가 아닌 원리에 입각하여 전승되어야 한다. 물론 빵을 필두로 서구 요리들은 이 문제를 많이 해결했지만, 노마가 명성을 떨친 발효의 종주국들이 지도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는 자아에 도취되어 기본이 바로서지 않는 경험을 판매하기 원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놓치면 안된다. 그가 이러한 이해를 좇는 것은 더 나은 결과물을 원하는 것이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이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초반부터 레스토랑의 모든 요리에 앞서 중요한 것으로는 바로 빵이라는 그의 말은 이 점을 새삼스래 재확인한다.

세 번째로는, 무엇보다도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책에서 인용된 그의 TEDx 연설에서도 반복되듯이,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요리는 함께 가야 한다. 이는 「노마」의 정신으로 이 책과 요리 전부를 관통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함께 입구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환영의 경험은 단순한 친절이 아닌, 유고슬라비아 내전 도중 피난 경험에 대한 메타포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마가 개미로 유명하다고 말은 하지만-서울에는 따라서 일단 개미를 내는 곳도 있더라. 과연 잘 하고 있나?- 그 기저에 사람들의 Luxury에 대한 인식을 부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읽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나 한국 문화권에서 「노마」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쓸 정도면 보통 노마의 경험을 럭셔리와 동치하려고 노력하지만, 진실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 그가 기록하듯이, 그는 차라리 반대로 쓰레기를 요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격을 통해 지탱되는 가치체계, 권력체계를 흔드는 요리를 한다. 동결건조 개미는 개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책에서도 인용된 그의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 대해 떠올려보라. 그는 당시(2010-11년) 매년 크리스마스 휴가 이후 버려지는 전나무들을 보며 전나무의 크리스마스 이외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고 도전을 거듭한 끝에 침엽수의 잎이 익힌 녹색채소에 화사한 향과 살짝의 신맛을 더하는 용도로 썩 괜찮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는 그것을 아스파라거스와 전나무 잎이라는 요리를 통해 설득하고자 했다. 물론 우리는 송편에 솔잎향을 더해온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어 요리의 측면에서는 그걸 이제 알았냐고 나무랄 수도 있다. 그러나 버려지고 잊히는 것들을 그로부터 구하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명절이 지나면 솔잎을 잊는다.
그의 창조에 대한 열정은 언제나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에게는 얼마나 창조적인지에 대한 질문보다, 왜 창조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어울린다. 「노마」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그들은 더 이상 에스코피에가 정립한 소리 지르고 욕하는 주방이 아니다-책에서는 FUCK이 꽤 쓰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현대 사회의 귀족들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는다.

물론, 과거의 노마는 스크리밍이 오고가던 주방이었을 뿐 아니라 스타지에게 블랙리스트 운운하는 등 깨끗하지만은 않은 공간이었음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르네 레드제피 또한 그를 인정하고 참회-피해자가 받아주는지는 모르지만-하기 위해 바꾸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어쨌거나 수백 유로를 지불해야 하는 오트 퀴진 레스토랑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러나 옛부터 예술가들은 넉넉하게 살아오고, 주로 넉넉한 사람들과 교류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각이 그르지 않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당장 위에 언급된 피카소와 베토벤의 후원자들만 떠올려보아도 공감하기 어려워지기는 매한가지가 아닌가. 적어도 나에게는 후원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르네 레드제피를 좇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은 "재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재미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오트 퀴진의 재미를 논하는 이 책이 재미 없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