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칵테일 21세기

서울 텐더 - 칵테일 21세기
Left Alone

많은 민족주의 사관이 그렇듯 칵테일 역사가들 역시도 칵테일의 기원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은 욕심들이 많지만, 칵테일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세기로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사실은 금주법 제정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40년대 이전까지, 짧다면 짧았던 이 4반세기 정도가 칵테일 문화의 첫 전성기였다. 반대로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일반적으로 칵테일의 암흑 시대로 취급되는데, 실은 이러한 평가 자체가 현대의 믹솔로지 문화를 주체로 내린 것이므로 앞으로는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당장 당시의 사람들은 이 때를 칵테일의 암흑기로 생각하지 않았다. TGI 프라이데이를 필두로 한 체인 레스토랑의 대두는 수공업과 유사하게 만들어지던 외식업계에 빠르고, 반복적이며, 통일적인 서비스를 도입하여 품질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켰고, 68 혁명과 히피 문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음악이나 유흥 사조는 바와 클럽을 주로(예전에도 아주 안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섹스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레이디 킬러 칵테일, 형형색색의 롱 드링크 위주로 재편했다. 20세기 초에도 푸스 카페와 같은 심미적인 요소가 중요한 칵테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블루 하와이,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 하비 월뱅어와 같은 종류들이 지배하게 된 시대의 칵테일이 추구하는 심미성은 조금은 다른 종류였다. 그 덕에 보드카와 저렴한 리큐르를 만드는 회사들이 돈방석에 앉았고, 대부분의 칵테일 레시피들은 단지 낡은 유희로 취급받았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사샤 페트라스케, 데일 데그로프 등의 선도자들이 칵테일의 맛과 문화에 대해 재평가를 시작하고 21세기에 들어 제리 토마스의 1930년판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칵테일 부활한다. 바텐더들은 스피크이지 인테리어를 모방하거나 고서적을 뒤져 역사적인 레시피를 복원했다. 여태껏 미식 따위로는 취급받지 않던 애들의 술-한국에서는 아직도 이런 인식이 아주 깊게 남아있는데 미국 유행의 패치 버전이 항상 좀 낡아있기 때문이다-이 고유한 문화적 배경과 맛보는 즐거움이 있는 하나의 요리 장르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지금은 서울을 떠난 찰스 H.의 바텐더 키스와 "칵테일은 얼음으로 하는 요리가 아닌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만큼 칵테일의 지위는 놀랍도록 상승했다. 뉴욕의 격조 높은 레스토랑의 바텐더는 모두 요리에 맞는 레스토랑만의 칵테일을 창작하는데 몰두하며 와인 페어링의 대안으로까지 제시되기도 한다. 여전히 소믈리에의 전통적인 지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그 모든 공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저 클래식 칵테일 복원 운동에 있다. 왜 옛 칵테일을 복원하는게 그토록 재밌었을까? 잠시 20세기 초중반의 서방 세계를 상상해보자.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등 전운이 짙게 드리운 때도 있었지만 (괜찮은 팔자의 서구인 기준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사고와 경험이 가능한 시대였다. 철도와 항공기는 여행이라는 부르주아에게 여행이라는 취미를 건네줬으며 금주령은 여행지의 음주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파리의 폴리 베르제르부터 마닐라의 영국 해군 장교 클럽까지 미국 바깥에 서양인이 사교하는 곳이라면 각자 그곳만의 칵테일이 있었다. 여행자들은 새로운 교통 수단을 통해 세계를 오가며 소문을 실어날랐다. 어느 여행지나 바에서 맛있게 마셔본 레시피는 돌아온 곳에서, 또 다른 여행지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곧 비스무리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한에서 현지화되어 자리잡기도 했다. 민트 쥴렙, 마티니, 다이키리 등 단순한 재료로 완벽한 맛을 가진 칵테일들은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

그 재미를 통해 부활한 현대 칵테일인데 요새는 거꾸로 이런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APAC 포 시즌스에서 진행한 푸어드 바이 포 시즌스 행사가 좋은 예였다. 각자 만드는 공정이 워낙 다단계이고 특이한 재료를 써대는 통에 레시피를 알아도 제공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뉴욕, 런던, 파리 어디를 가도 저마다 다른 칵테일을 내는데 무엇을 위한 다름인지 혼란스럽다. 과연 요즘의 칵테일이 예전만큼, 백 년 전만큼 재밌다고 할 수 있을까? 나쁜 맛의 칵테일이 많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겠지만 좋은 맛에 우리가 과연 더 가까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 속에서 갈라파고스였던 일본, 그 중에서도 갈라파고스인 긴자, 그 중에서도 갈라파고스인 우에다 카즈오의 오리지널 칵테일을 마시고 살아보지도 않은 백 년 전을 떠올렸다. 엄밀히 말해 긴자 텐더 오리지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상단의 유키츠바키는 텐더가 아닌 바 로지에 근무 당시의 작품, 레프트 얼론은 대회 출품작이다.

유키츠바키는 겨울의 눈을 크림을 이용해 형상화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정확히는 눈 내린 동백꽃이다. 책에서는 그 동백을 형상화할 일본의 모 여배우를 보고 받은 심상이라고 까지 하는데, 그 젊은 바텐더의 절절한 사랑까지는 알 수 없지만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겨울의 심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증류주와 과일이라는 전형적인 셰이크 칵테일의 왕도에서 기주를 보드카로 감추고 과일의 개성이 강한 카시스를 통해 특유의 인상을 완성하다. 팔자가 좋은 요즘에야 꽃향기를 내고 싶다면 식품용 에센스를 구매하여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완성된 이 동백은 제 나름의 흥취를 준다.

동명의 재즈 스탠더드를 주제로 한 칵테일 "레프트 얼론"은 재료인 리큐르가 단종되어 옛날의 맛은 아니지만 짙은 버번 위스키가 미국적인 인상을 쌓은 가운데 정통의 사워 칵테일같은 인상을 주지만 특유의 짙은 어두움(실물이 사진보다 조금 더 어둡다)이 적막함을 더한다.

One-of-a-kind인 텐더의 김렛과 같이 보편적인 특수성을 보여주는 레시피들은 아니다. 창작자의 이름이 주는 후광 덕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외딴 섬제 칵테일로부터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혹여 아직도 이런 즐거움을 전할 수 있을까. 만든 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칵테일을 만나는 즐거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