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잭 로즈, 하드셰이크

잭 로즈는 사과 브랜디(애플잭), 그레나딘, 레몬 주스로 만든다. 큰 틀에서 사워 칵테일의 주+당+산의 문법에 맞으며, 데스&컴퍼니의 계통 분류법에 따르면 광의의 다이키리 계열의 칵테일이다.

백여년 전 책을 뒤져보는 유행이 있기 전까지 오래도록 묻혀있다가 무덤을 뚫고 나온 레시피들은 많지만 잭 로즈는 한국에서 굉장히 좁은 입지를 가진 칼바도스를 사용하는 칵테일인 관계로 그 맛의 정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잭 로즈를 마시게 된 것은 "드 브루이" 이후 한국 칼바도스 시장을 거의 장악하는데 성공한 크리스찬 드루앵 덕분이었다. 이 잭 로즈도 드루앵으로 만든 것으로 "라 블랑쉬"를 썼기 때문에 숙성에서 오는 갈색이 더해지지 않아 그레나딘을 썼음에도 일반적이지 않은 색을 낸다.

이 앞의 한 잔을 썩 빠르게 비웠기 때문에 무모하게도 평소와 달리 개인적인 요구를 담은 주문을 했었는데, 잔을 반 쯤 비운 뒤에야 실수임을 깨달았다. 내 요구 사항은 기주와 알코올의 특징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칵테일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바텐더는 재사스럽게도 용량보다 제법을 바꿔서 내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물의 차이는 역연했다. 좋게 말하려고 노력하자면 기주인 르 블랑쉬의 특징, 증류 과정에서 두터운 탄닌의 개입으로 인해 알코올에 더해지는 특유의 뉘앙스, 낮은 분자량의 성분들에서 나오는 꽃이나 과실류의 가벼운 인상이 혼재한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르게 말하면 셰이크를 했음에도 기주가 느껴지니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꼴이다.

이후 재수가 좋게도 또 잭 로즈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 잭 로즈는 하드셰이크한 잭 로즈였다. 제대로 만든 잭 로즈는 시럽과 주스, 그리고 스피릿이라는 세 가지가 아닌 하나의 잭 로즈로 완전히 승화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요리라 부를만 했다. 입안에서 여러 종류의 맛이 동시에 부딪힐 수 있도록 잘 섞이기도 했지만 큰 차이를 불러오는 지점은 물성, 즉 촉감의 변화와 거기에서 잇따라 일어나는 자극의 시계열의 변화였다.

물론, 기존 레시피를 따르되 하드셰이크한 잭 로즈가 잭 로즈의 꼭대기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과 칼바도스의 가격과 유통량의 차이가 큰 현실 속에서 단지 잘 만든 사워로 남는다면 잭 로즈의 자리는 거의 없다. 외려 왕도에서 벗어나거나 다소 극단적인 설계를 보여주는 방식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것이 이 자리에 어울리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