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20세기 피즈, 21세기 음료

서울 텐더 - 20세기 피즈, 21세기 음료

21세기의 한국인의 시각에서 기억에 남는 일본의 음(飮)문화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료는 소주나 일본주, 일본 주류산업의 기틀이 된 라거보다도 특유의 롱 드링크들이 아닌가 한다. 스페인의 진 토닉이 스페인 가스트로노미아, 21세기식 칵테일 문화를 상징하는 큰 승리이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본인들은 저렴한 주세 혜택 하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빚어냈다. 위스키 하이볼부터 카시스 우롱까지, 텀블러 잔에 담긴 편한 칵테일은 일본인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음과 동시에, 타 문화권에서는 쉬이 발견되지 않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일본 하면 애호가들은 일본 위스키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일본의 위스키는 긴 역사와는 별개로 매우 오랜 시간 푸대접을 받아온 상품이다. 일본 국세청이 연간으로 발간하는 주세 통계인 「酒のしおり」를 살펴보면 위스키 출하량은 1983년 35만kl를 돌파, 피크를 찍은 뒤 암흑기로 돌입한다. 1980년대 중반 츄하이가 시장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경제부흥을 함께했던 일본 위스키는 이후 거의 30년동안 꾸준히 출하량이 감소해 2007년에는 10만kl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시장에서 좁은 입지를 가지게 된다. 그 사이 일본의 주류시장을 휘어잡은 상품은 맥주, 특히 그 중에서도 발포주로 일본의 증류주들은 생각보다 빛을 보지 못한 세월이 매우 길었다. 이러한 시장을 반전시킨 것은 다름아닌 산토리의 「가쿠빈」으로, 코유키를 내세운 「ウイスキーが、お好きでしょ(위스키를 좋아하시나요)」 CM을 비롯 이자카야를 중심으로 한 새 판로개척, 차고 청량한 감각을 선호하는 젊은층을 목표로 한 레시피의 제작과 가쿠빈 잔의 배급 등 신화적인 마케팅의 성공에 힘입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하지만 이 역시 츄하이와 발포주가 이끈 대용량, 저도수 (+탄산)이라는 일본 주류업계의 거대한 흐름을 수용하는 방식이었을 뿐 그 흐름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거의 일본에서만 찾을 수 있는 리큐르 피즈라는 칵테일의 형태 역시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카카오 피즈와 사진 속의 바이올렛 피즈와 같은 리큐르 피즈들은 1980년대 일본 BAR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칵테일들인데, 츄하이의 발매연도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 쯔음부터 지금의 일본 특유의 롱 드링크 문화가 정립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옛날에는 왜 이런 음료들이 유행했을까, 바이올렛 피즈를 마시며 요즘을 되짚어봤다. 2022년, 보리의 발효라는 주제 하나로 우주를 연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혁명은 스무디와 하드 젤처에 닿았다. 맥주 제조 공정에서 얻어내는 향을 강조하던 시도들이 다소 영악한 도구합리성과 결합해, 발효로 향을 얻는 지리한 과정을 생략하고 과일 퓌레를 때려넣고 과일향이라고 우기거나(스무디), 가스를 주입하고 과실향을 넣은 뒤 맥주의 후손이라고 우기고 있다(젤처). 물론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이제 매우 거대해졌으며 경계 역시 모호해졌기에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무시한 뒤 멋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하드 젤처는 단지 미국판 츄하이, 또다른 과일소주(이제는 과일마저 아닌)에 불과하다고 보아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방식만 보면 리큐르 피즈와 하등 다를 바 없거나, 외려 리큐르 피즈보다 여러모로 열악해 보이기만 한다. 결국 발효를 시대정신으로 추켜세웠던 레스토랑과 와인+맥주업계는 실패했으며, 21세기인들은 쉽고 빠르게 취하고 싶은 욕구에 파묻히고 말았는가?

만약 이 바이올렛 피즈 안에서 음용성이라는 요소 이외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반항기를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잘 만든 피즈 한 잔이 완전한 만족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깟 고루한 과정따위는 밟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수 있을까. 첫 내음에 느낀 감상은 마치 그럴 것만 같았다. 과학기술의 위대한 승리라 할 수 있는 탄산과 얼음이 주는 막대한 청량함, 차가움은 전율이라는 표현을 절로 떠올리게 만들며, 잔을 기울여 마실 때 코를 자극하는 꽃잎의 향기는 입맛을 돋운다. 살짝 머금기에는 지나치게 당기는 맛이라 결국 입안 가득 기포들이 튀는 느낌을 만끽하는 수밖에 없다. 이후 신맛과 탄산이 그럴싸하게 흐름을 만들지만 여기에서 이성을 되찾는다.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어보면 얼음이 그다지 녹지 않았는데도 심경이 허전해진다. 단지 들이킬 수 있을 뿐, 충만함을 주는 요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다음 잔, 혹은 다른 음식. 무엇이라도 다시 갈망하게 된다. 목은 축였으되 갈증은 심해지는 꼴이다.
물론 사람이 술을 마시는 상황은 다양하므로 저도수, 고탄산 음료의 자리는 언제나 있으리라. 코카 콜라에게는 코카 콜라의 역할이 있듯이. 그러나 기호품의 영역, 쾌락의 도구로서 쓰이는 주류는 그 안에서도 한 발짝 나아가는 미덕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컨대 위스키에 있어 과거 단지 흔해서 쓰였던 피트, 보관의 용이성 때문에 채택된 오크통이 오늘날 맛의 문법으로 다르게 이해되고 즐겨지듯이 홀짝홀짝 마시기(sip)보다는 들이키는(gulp) 음료들에게도 구체적인 세공의 대상이 될 디테일이 있다면 그림은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아직까지는 그것이 무엇인지 잡히는 바가 잘 없다. 그 맛의 저변을 넓히기에 서울에서는 프렌치 75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결국, 편안함과 청량함을 최고규범으로 내세우는 음료들이 좋은 기호품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까지 "아니오"에 가깝다.

  • 산토리사에서 제조하는 "HERMES" 리큐르를 에르메스라고 읽으면서 포장하려는 다소 불유쾌한 시도들이 있는데, 이 리큐르의 제대로 된 명칭은 헤르메스(ヘルメス)이며 1936년 산토리에서 출원한 헤르메스 드라이 진에서 처음 사용된 상표이다. 못 만든 물건들은 아니지만 통상 사람들이 hermès라는 글자를 보고 기대하는 그런 고급품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