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실록 - 잔해 같은 음식
지금은 생각도 하기 어려운 풍경일 수 있겠지만, 대학로 순대실록이 사람들에게 목적지이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의 브랜딩이 그를 자처했다. 세태를 그럴싸하게 짚어냈다. 순대는 '시의전서'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광고하고, 순대의 코스 요리 따위를 내세웠다. 순대를 젊은이들의 음식으로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다. 그리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찾아갈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 순대실록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지점을 마주친 것이다.


순대실록의 순대는 여러모로 개성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두부의 존재감이 눈에 띄는,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다. 특이한 경험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순대는 시의전서의 순대와도 별 관련 없고, 순대의 가장 전형적인 역할인 순대국의 구성 요소로도 매력적이지 않다. 시의전서의 돼지 순대는 숙주, 미나리, 무, 김치, 두부, 파, 생강, 마늘 등의 재료를 강한 양념에 무쳐 창자를 채우도록 지시하고 있다. 단면에 보이는 당근이나 당면은 아무 관련이 없을 뿐더러, 단맛의 중심을 잡는 양배추도 그렇다. 물론 시의전서대로 만들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곳은 프랜차이즈 대중식당이지 고조리서의 독서회가 아니니까. 채소와 두부 중심으로 맛을 내는 소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공장에서 우린 사골 육수와는 짝이 맞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텅 빈 것 같은 흰 도화지에 김치, 순대의 단맛이 불협화음만을 만든다. 파를 몇 가닥 띄웠지만 이 국물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에 역부족이다.
위의 '순대 스테이크'는 더 심각하다. 소의 레시피를 바꾸어 견과류가 전체 인상을 장악하는데, 불필요한 플람베까지 거쳐 바싹 구워진 창자는 입안에 계속해서 잔류한다. 이런 것으로 외국의 창자 요리를 운운하는가. 창자에 뭔가 채우는 형태의 서양 음식에서 그 창자가 대체로 어느 정도의 두께로 연출되는지를 생각해보라. 이런 두께에 이런 조리는 필연적인 질깃함을 불러온다. 쫄깃하다고 부를 심산인가? 단호히 거부한다.
이 모든 흠보다도 심각한 것이 있다면 이 순대 스테이크가 순대국과 일으키는 불협화음이 나머지의 모든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같이 제공되는 소스마저 순대를 잠식하는지라 갈 곳이 없다. 순대라는 빛이 난반사하는 것만 같다. 이 난해하게 흩어진 단맛, 견과류, 전형적인 데우기와 비닐 뜯기가 느껴지는 텅 빈 국물, 이곳을 미래의 기수로 추켜세웠던 각종 미디어가 내게는 공해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시절, 순대실록에 바쳐졌던 스포트라이트와 찬사는 무엇이었나. 대가와 바꾼 것이라면 안타깝고, 대가와 바꾸지 못했다면 더욱 안타깝다.
한국에 외식업 프랜차이즈가 한두 개도 아니고, 유독 순대실록에게 험하게 군 것 같아 다소 꺼려지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 식당은 대단한 레스토랑 가이드에도 실려 있고, 지금도 막대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니 나 따위로 인해 대단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장면을 또 목격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