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항공 TG910 퍼스트 클래스 탑승기

타이항공 TG910 퍼스트 클래스 탑승기

타이항공은 독특한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는 해당 국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마치 왕실을 위한 서비스처럼 일등석을 운영하고 있다. 애초에 이 항공사가 국영이기도 하지만, 사실 왕실은 전용기를 운영하고 있기에 이 항공편의 일등석은 국왕 내외와는 직접적 관련이 거의 없다. 물론 왕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왕 본인을 넘어 왕족이 존재한다는 것이기도 하므로, 굳이 왕 내외가 아니더라도 로열 퍼스트로 운영한다는 점은 여전히 그들의 흔적을 짙게 연상시킨다. 취항지 역시 오사카와 도쿄, 그리고 런던에 한정된다는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그마저도 이제는 폐지를 예정하고 있다.

TG910편은 자정이 넘어 출발하는 야간 비행편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인가? 먹거리에 대해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를 잡았으니 편하게 함께해 주시라.

사용하는 샴페인은 로랑 페리에 그랑 시클, 배치는 N26. 미세한 짭짤함과 풍성한 빵 향기로 수십 년은 묵어야 한다는 2008 빈티지의 꿈을 벌써 어느 정도 실현한 느낌을 준다.

식사에 앞서 제공하는 3종의 냉채.

식사 중에는 플루트가 아닌 화이트 와인 잔을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기내에 실리는 샴페인은 대부분 가장 최근의 배치이다 보니 향을 열기에는 이쪽이 유리하다.

캐비어의 컨디먼트. 캐비어는 이탈리아 지아베리의 오세트라를 쓰고, 컨디먼트로는 가장 전형적인 달걀과 다진 양파, 사워 크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히려 지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서비스가 하늘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블리니를 필두로 한 이쪽의 경우도 당연히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그 세가 대폭 줄어든 지아베리지만, 꽤 오랜 기간 동안 신라호텔에 납품되었기 때문에 썩 익숙한 기억을 준다.

식사를 위해 준비되는 빵은 이렇게, 살짝 두껍게 빚어낸 그리시니를 필두로 이탈리아의 양식을 띈 빵들이 주도권을 잡는다.

벨루테에 겨울을 맞아 블랙 트러플, 그리고 후추를 넉넉히 뿌려 완성한다. 캐비어 쪽이 썩 만족을 주었다면 트러플은 다소 설정에 기댄 느낌으로, 깎아낼 때 이후로는 인상적인 향을 보여주지 못했다.

열대과일의 무스를 곁들인 랍스터의 냉채. 갑각류의 조리가 최선과는 거리가 멀지만, 선택지에는 갑각류가 매우 많다. 사실은 라운지의 음식도 그렇다.

ต้มยำกุ้งแคนาเดียนล็อบสเตอร์

본식은 사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영문명은 단순히 똠얌꿍이지만 태국어로는 똠양꿍과 캐나다산 바닷가재다. 똠얌꿍 베이스에 바닷가재 살을 크게 잘라 넣고, 껍질을 위에 씌워 연출한다. 똠얌 스프 특유의 강렬한 향신은 좋았지만 기내식이라는 환경을 감안해 진득하게 뽑아내지 못한 점이 짙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진짜 주인공은 내게 있어 이쪽이었다. 게살 오믈렛! 제파이 여사를 상징하는 요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작 그쪽은 막대한 대기 시간과 태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가격 때문에 찾아먹을 음식이 아닌데, 타이항공에서 선보이는 게살 랍스터는 제파이 여사를 잊게 만들 정도로 충분했다. 그쪽에 비하면 달걀이 살짝 두툼하게 입혀져 있지만, 부드럽게 조리한 게살에서 바삭하게 감싸는 크러스트로 이어지는 호흡이 자스민 라이스와 멋드러지게 이어진다.

사실 위의 요리들이 전부 한 번에 서비스되어 깔린다는 것을 여러분도 눈치채셨을 테다. 아시아적인 서비스라고 좋다고 해야 할지. 서양식의 호스피탈리티를 운영하는 아시아권의 기업에서는 심심찮게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서양식 서비스와 한국식 정서가 결합되어, 알다가도 모를 것이 탄생한 곳들이 많듯이.


조식

Azure Dawn Lobster By Mezzaluna

타이항공의 조식은 원래 쌀밥으로 이루어진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있지만 겨울 시즌에 태국의 레스토랑과 협업하는 메뉴가 있어 의도적으로 비틀어 보았다. 버터에 포칭한 오마르 블뢰, 불오방, 크림 스피나치, 온천달걀, 버섯과 소렐, 약간의 블랙 트러플. 이런 환경에서 온천달걀의 조리 상태가 아슬아슬하게 좋았다. 사실 아침이라고 해도 비행 시간을 감안하면 신체적으로는 낮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버터향이 가득한 이런 식사도 감당할 수 있다.

거의 갑각류로 점철된 식사로 하루를 전부 보내게 되었는데, 갑각류 자체가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은 이쪽이었다.


타이항공의 일등석은 매우 제한적인 노선으로 운영하고 있고, 장래에 폐지될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이면서도 최근 새 퍼스트 라운지를 개장하는 등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아웃바운드 고객을 위해 태국적인 색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과, 실질적인 수요를 감당하고 있는 국내 고객들의 취향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태국은 매력적인 취항지고, 비즈니스 클래스 기준으로 타이항공은 매력적인 항공사이지만 외려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유럽 노선으로는 싱가포르항공과 루프트한자를 먼저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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