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렌티, 로만 라즈베리 소르베또

탈렌티, 로만 라즈베리 소르베또

먼저 수입사인 아이이케이, 전 SP인터내셔널의 대표자인 김철휘씨께 개인적인 감사인사를 드린다. 이걸 수입하다니. 그것도 이렇게 다양한 맛을 수입하다니. 소비로 보답하겠다. 지금까지 수입해오신 수많은 미국 시장의 식료품들중 단연 으뜸가는 선택이 아닌가. 어떤 수완인지는 몰라도 배우고 싶을 정도이다.

자, 탈렌티 이야기를 해보자. 김철휘씨의 용단이 있기 이전, 정작 본사인 유니레버에서도 한국에 팔고 있찌 않았던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말이다. 흔히 젤라또라는 소리들이 들려오지만 영하 18도로 유통되는데다 사실 만드는 이는 금융인 출신이고 아이스크림은 아르헨티나에서 배운 사람이다. 이탈리아랑은 마케팅 말고는 별 연관이 없다. 이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연구한 곳은 젤라떼리아가 아닌 엘라데리아다.
그런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시장은 미국인데. 사실 세계 각지에서 불리는 아이스크림의 다른 이름들은 각자 추구하는 방향의 차이에 가까울 뿐 큰 의미가 없다. 그 방향을 제대로 살린다면 그 이름값을 하는 셈이고 아니라면 땡일 뿐이다. 아르헨티나의 아이스크림은 사탕수수의 본진답게 정제하지 않은 원당을 쓴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지만 먹어보면 원당의 뉘앙스라는 건 느끼기 쉬운 게 아니다. 이탈리아계의 후손들이 남겨놓은 본능에 가까운 전통과 남미의 자연. 이 둘은 탈렌티의 혈통증명서에 기록되 있되 실제 물건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실제로 비정제당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이것은 HFCS에 대한 반동일 뿐이다)
먼저 결과부터 말하면, 탈렌티는 크게 성공했다. 21세기에 창업한 회사가 홀 푸드를 비롯한 미국의 고부가가치 식료품 시장에서 단연 으뜸가는 상표로 성장했다. 가격이 니치는 아니지만 그런 브랜드는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유를 짐작해보자. 첫째로는 미국 식료품 시장의 요구에 열심히 발을 맞추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인증이므로 검은 테이프로 가려두었지만 NON-GMO "써티"가 있다. 글루텐 프리(사실 끼어들 여지가 없지만), 우유를 사용하지 않는 소르베또이므로 100% 비건이다. 대부분의 제품이 코셔 인증을 받고 있기도 하니 여러모로 식생활에 제약이 있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다.
둘째로는 투명한 파인트의 영업 전략이다. 사실 쉬운 지점인데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베스킨 라빈스"에 가면 당연하게도 창 너머의 잔량까지 확인하곤 하지만 "하겐 다즈"는 꽉 막힌 흰색 파인트인게 당연해왔다. 벤 앤 제리의 하프 베이크드와 피넛 버터 퍼지가 몰고온, 두 가지 이상의 아이스크림을 섞는 유행에서 탈렌티는 매우 큰 이점을 쥐게 된다. 그들의 레이어는 투명하게 보여서 어떤 사진이나 그래픽보다도 선명하게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거기에 100% 재활용이 가능한 파인트의 실용성과 업체에서 어필하는 친환경성은 덤이다.
자, 이런 것들은 결국 맛 바깥의 이야기이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맛이다. 맛 .맛 . 맛. 탈렌티는 맛으로 성공했다. 탈렌티는 첫째로 재료의 밀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많은 이들이 숨기는 부분이다. 재료는 곧 돈이니까. 과유불급의 원리는 당연히 적용되지만, 애석하게도 서울은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아이스크림이 재료의 과보다는 그 재료의 빈칸을 가리기 위한 단맛의 과, 지방의 과인 경우가 많다. 탈렌티는 적어도 마트의 냉동고에서는 최소선을 다시 그었다. 자체적으로 밝히기를 소르베또에 쓰이는 과일은 전체 용량의 최소 24%다. 최대는 50% 이상.
양만 맛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탈렌티의 두 가지 히트작, 지중해 민트와 바다소금 캐러멜의 신화를 통해 그 성공을 알 수 있다. 탈렌티의 간판 스타인 시 솔트 캐러멜은 남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캐러멜, 둘세 데 레체Dulche de Leche를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캐러멜과 크게 다른 물건이 아닌데, 미지근~뜨끈한 상태에서야 흐르기 때문에 그렇게 먹는 것을 정 반대로 냉동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우유의 양이 역전될 정도로 높아지고, 그만큼 흐려지는 캐러멜의 향은 코코아와 바닐라로 덧댄다. 대대손손 배워온 레시피라고 하지만 굉장한 설득력이 있다. 아이디어 상품으로 성공을 맛본 셈이다.
그러나 더 큰 교훈은 민트에 있다. 그놈의 민트초코 타령이 식품 담론을 지배하고 있지만 다들 민트에 절망적으로 무관심한데, 탈렌티는 조금 덜하다. 기존의 이런 민트 종류를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할 경우 편의를 위해 보통 민트향을 추출한 기름을 쓴다. 농축액, 에센스, 무슨 이름으로 불리는지 관심이 가지 않는 그런 물건이 있다. 추출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맛에 있어 앞서기는 어려운 방법론이다. 당연한 것이 민트 잎과 민트 오일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변화를 최소화하는 냉침이고 서울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냉침한 차를 젤라또로 만날 수 있지만, 공장에서 그러다가는 망할 뿐이므로 탈렌티는 가열을 통해 민트의 향을 추출했다. 뱅-마리Bain-Marie다. 대량 생산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거대한 통에서 아이스크림 베이스와 민트를 달군다.
이외에도 인도산 망고를 쓰거나, 일종의 베린과 같은, 탄수화물의 지지대를 포함한 레이어 아이스크림을 낸다거나 여러모로 기발한 물건들이 연속타를 쳤으므로 2003년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로 시작, 2007년에 공산품으로 유통을 시작한 아이스크림이 전 미국에서 하겐 다즈, 벤 앤 제리스와 점유율로 맞붙는 거대한 브랜드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수완 좋은 멋진 사업가, Steve Gill의 공도 컸다. 공장에서 생산해 마트로 입점하기로 결정한 탈렌티는 더 이상 따뜻한 미소로 남아서는 안되는 사업이었다. 글의 서두에 밝혔듯 금융인으로 커리어를 쌓던 사람이 시작한 브랜드이므로 그는 곧 MBA를 따고 마케팅으로 성공한 대학 동기를 설득할 수 있었다. 스티브 길과 손잡은 탈렌티는 프로들의 아이스크림이었다. 탈렌티는 자체 R&D팀을 두고 식재료의 품질을 선별한다. 물론 단가도. 몇가지 비법들도 창작해냈고(그 중 하나가 피넛 버터를 섞는 방법임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독특하고도 설득력 있는 맛들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지역에 따른 입맛 차이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한다.

여기까지, 탈렌티 용비어천가.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고 받들어 모셔야 하는 아이스크림의 끝판왕일까? 다행히도, 또 이 표현을 반복하자면, 그렇지 않다. 탈렌티는 성공적인 비즈니스이자 훌륭한 선택지이지만 철저히 현실 속에서 계산되는 현실의 행복이다. 그것을 현실에 위치시키는 일이 우리가 오늘 할 일이다.
로커스트콩검정도를 제외하면 현대 식품과학의 산물로부터 거리를 두는게 컨셉트에 부합하므로 소르베또는 곧 끈적하고 이어지기보다는 숟가락이 가는 대로 갈라지는 쪽에 가깝다. 미세한 얼음알갱이의 상태로 연결될 정도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맛본다면 확연히, 여느 공산품 소르베또, 소르베, 셔벗들에 비해 촘촘한 질감이 좋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비결은 이탈리아의 전통이다. 이름이 왜 로만 라즈베리겠는가. Sorbetto di lamponi에서 따온 것이니까. 라즈베리 과육을 뭉개고 레몬즙과, 이후에 설탕과 물까지 넣어 혼합물을 만든다. 설탕때문에 돌덩이처럼 응고되므로 이후로 이 입자의 감각을 얻는 것은 물리력으로 깨고 또 으깨고 또 부수는 일이다. 어지간히 귀찮지만 꾸준히 하면 전체적으로 고르게 부드러워진다. 적어도 40년전에 나온 이탈리아의 책에서도 다시 볼 수 있다. 총고형분 34%짜리 레시피인데, 이렇게 말하면 별로 다가오지 않으므로 좀 더 유용하고 알려진 예시를 들자면 우리의 경전 <실버 스푼>에도 만드는 법이 나와있을 정도다.
이탈리아와 문화의 여러 부분을 공유하는 루마니아에서도 동일한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라즈베리가 자라기로는 이탈리아보다 발칸 반도가 더 적합하여 루마니아 전역에서 여름이면 라즈베리를 볼 수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민트 잎을 섞어 만드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큰 틀에서 거의 비슷하다.

적절하게 전통에 기대어 현명하게 만들었으니 가히 올바른 맛이 난다. 역시 거인의 어깨 위가 가장 편한 법. 때려박은 당분과 레몬의 강렬한 신맛이 라즈베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본연에 충실하게 마구 퍼먹을 수 있는 맛은 아니므로 집에서 식사 후 프리 디저트로 쓰기에 제격이다. 조금 손을 쓸 용의가 있다면 복숭아같은 과일을 썰어 곁들여도 좋고,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그냥 민트 몇 잎을 함께 씹는 것도 좋다. 신맛으로 한껏 달아오른 감각에 향이 꽃핀다.

탈렌티의 브랜드가치는 레시피 넘버가 계속 증가한다는 데 있는데, 일 년에 보통 여섯 개를 목표로 항상 새로운 맛을 낸다. 그런 측면에서는 뻔한 베스트셀러들만 접할 수 있는 현재의 환경에서 이 브랜드는 크게 빛나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왜 성공했는지,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탈렌티가 자극한 미국 마트의 냉동고는 지난 십 년 동안 놀랍도록 발전해 왔다. 탈렌티는 재료의 품질과 특징에 대한 목소리를 울렸고 유럽과 남미 등지에 흩어진 레시피를 활용하고 세계 각지의 재료들을 조망해왔다. 냉동고의 아이스크림의 측면에서. 고고한 미식가들이야 다 알던 이야기고 알던 맛이므로 무시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맛의 기회를 드넓힌다는 점에서 탈렌티는 한국에서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 <실버 스푼>이 번역된지 오래지만 아직도 끔찍한 이탈리아 요리를 만나기 쉬운 생활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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