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즈 바 - 나이트라이프의 음식 소고
단계적 일상회복 시기가 왔음에도 테크노 전문 클럽인 파우스트는 여전히 임시방편으로 홍대의 탄즈 바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곳은 클럽이 아니라 바(BAR)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야기해볼 수 있다!
탄즈 바는 기본적으로 다소 부끄러운 기분을 들게 하는 독일어 현수막과, 독일어 간판으로 둘러쌓여 있지만 베를린 테크노 DJ만 섭외하는 것은 아니므로, 아무래도 좋은 곳이다. 유흥주점이 아니므로 들썩일 수 없는 가운데 충분한 음량을 제공하는 것은 또다른 고문같기도 하지만, 우퍼와 스피커에 둘러쌓여 중저음의 베이스에 심장이 진동하는 느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탄즈 바는 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들 중에서 그것을 가장 훌륭한 축으로 해낸다.
어둡기 그지없는, 혹은 붉게 밝은 게이 힐의 클럽들에 비해 한층 높은 조도, 그리고 넓은 간격 덕에 클럽과 댄스홀의 식문화의 민낯들이 눈에 촘촘히 박히기 시작했다. 우선 음료다. 이런 곳에도 음료가 있다, 아니, 이제는 칵테일과 샴페인, 증류주의 진정한 무대는 사실 이런 곳 아닌가. 돔 페리뇽과 모에 샹동을 축으로 하는 샴페인 발주량은 지하세계가 압도한다. 버닝썬의 몰락 이후 조용해지긴 했지만 '알망-돔-모엣'으로 수직적 위계를 형성하고 있는 클럽 씬에서 화폐로 유통되는 통화량이 스시 카운터의 합리적인 가격의 콜키지를 압도한다. 하지만 마시기 좋은 환경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풍성한 음량은 미각을 뒤흔든다. 옥스포드에 계시다가 지금은 오르후스 대학에 있는 Q.J. Wang 교수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진 사항이지만(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이런 게 있다-) 음료가 가지는 퍼포먼스는 현격히 왜곡된다. 탄즈 바의 시그니쳐 샷은 무려 크렘 드 멘트를 니트로 소주잔에 마시는 것인데, 피치가 높은 음악 때문인지 기대처럼 달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곳의 주류 발주량이 격조 높은 바들을 압도한다고 생각하면, 이게 진짜 맛이고 거꾸로 지상에서 기억하는 맛이 거짓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칵테일은 또 어떤가. 물론, 이런 바에서 칵테일은 기대할 음료가 아니다. 휴지로 적당히 만 맥주로 입장료를 대신하는 객들이 대부분-COVID-19 이전에도 편의점 소주로 미리 충전한 인파들이 얼마나 많았나-인 와중 칵테일은 또 다른 입장료이다. 호시자키에서 나온 얼음과 엉망진창으로 부어진 액체들이 절망적 스터와 셰이크에 휩쓸린다. 물론 칵테일만 파는 바들도 스터와 셰이크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있냐고 하면 또 의문이지만, 일단 지향하는 바 자체가 없다는 점, 빨대를 꽂는다는 점에서 클럽의 칵테일은 다른 차원까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논의의 실익을 떠올린다. 탄즈의 메뉴판에서 진 토닉의 기주에 추가 차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도 탱커레이와 탱커레이 10을 구분해서 팔고, 탱텐을 고르면 추가 차지가 있다. 맛을 추구한다면 추구하고 있고, 맛의 위계질서까지 있는 셈이다!
청각에 모든 것을 몰아넣는-혹자는 시각이나 촉각 쪽이라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곳, 샴페인마저 맛이 아닌 화폐에 불과한 곳에서도 사람들은 확실히 맛에 신경쓰고 있다. 어떤 기준에서 무슨 평가가 오가는지는 모르지만, 객들은 물론 운영하는 쪽과 고용된 쪽도 기호에 따라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여러분께 결말대신 다음에 대한 간단한 질답을 나누고 싶다.
I. 미각 경험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BAR에 적절한 청각적 환경은 어느 것인가?
긴자에 영향을 받거나 스피크이지를 표방하는 곳들은 능청스러운 재즈 위주이다. 그중에서도 매니악한 선곡보다는 20세기 중반의 명곡들이 더 자주 귀를 지나친다. 바 참과 같은 곳에서는 특정 칵테일을 주문시 대중가요를 재생해준다. 맛을 신경쓰지 않고 청각적 경험만 얹어낸다는 형태에서 테크노 바의 칵테일과 비슷한 점도 있다. 논의의 실익 없이 신청곡을 받거나 자영업자 사장이 좋아하는 곡을 선곡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칵테일도 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단지 춤출 수 없는 클럽은 아닌가?
II. 음악듣고 춤추기에 적합한 미각적 경험은 무엇인가?
적당한 취기는 음악 듣고 춤추기의 세 번째로 좋은 친구임은 분명하다. 첫째는 불유쾌한 사실이지만 더 효과적인 향정신성의약품들, 파티 드러그들이다. 알코올보다 원하는 결과를 빠르고 강하게 내오니까. 하지만 이들은 맛의 대상은 아니므로 논의 실익은 없다. 그렇다면 둘째는? 아이스크림이다. 베를린 Berghain과 같은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데, 매우 합리적이다. 풍성한 당분과 지방으로 빠르게 열량을 보급함은 물론, 영하의 음식은 신체의 발열을 촉진한다. 피로를 잊기 위한 아포가토까지 제공하니 청각 경험에 변화를 줌은 물론 아이스크림 스스로도 하나의 유의미한 경험이 된다. Berghain식이 너무 극단적이라면? Hakkasan도 좋은 예시가 된다. 하카산은 런던에서 두 개의 원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동시에 나이트라이프 분야에서도 유명한, 아니 이 쪽에서 더 큰 기업이다. 그들은 딤섬 가게보다는 라스 베가스의 Omnia를 필두로 한 클럽에서 더 많이 버는데, 베가스 MGM 그랜드에 바로 하카산 이름을 쓰는 클럽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딤섬을 먹고 지하에서는 테네시 위스키에 $570을 지불하게 되는데, 춤을 추면서 딤섬을 먹는다면 더욱 좋은 기획이었겠지만 그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여간 청각적 경험, 그리고 뛰놀기를 비롯한 신체활동과 식생활은 결코 떼놓을 수 없으나 어설프게 연결되어 있는데, 명쾌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