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틴 - 클래식의 중요성

더 마틴 - 클래식의 중요성

아이스크림 가게같은 곳에서 사실 사진은 중요치 않으나, 반드시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이제는 사진은 하나의 언어학적 신호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당신 정말 먹고 쓰는 것 맞습니까, 하는 데 대한 대답.

그러나 최근 마틴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시각 매체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마틴의 공간은 옮길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서 절망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공간이 우연히 빚어낸 시각적 경험이 요새 이 곳의 인기 비결이라고 느낀다. 포제띠를 사이에 두고 크로아상을 가로로 갈라, 익숙한 듯 샌드위치를 조립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적절한 길이(30초정도 걸릴까?)와 특유의 시야각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꾸미는데 그만이다. 거기에 만드는 이가 내용물에 들어가는 요소들 하나 하나에 의사를 물어보며 붙이는 농담 한 마디는 경험의 완성에도 기여한다.

자..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오늘 주인공은 그 하몽 크로아상 샌드위치가 아니라, 그런 샌드위치의 대흥행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주고 있는 마틴의 포제띠 안의 아이스크림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바닐라와 초콜릿이다.

첫째로,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를 떠나서, 도심 속에 적수가 없다. 클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서울이다. 본격적인 아이스크림의 전성기는 냉각 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지만, 그 뿌리는 유럽인들이 살아가던 곳, 그들의 본토인 지중해 등지와 잔인하게도 밟아대었던 식민지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그런 곳들에서 발견된 식재료들 중 디저트에 어울리는 것들이 엄선되고 엄선되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지중해에서 뿌리를 둔 것들 중에는 헤이즐넛과 피스타치오 같은 것들이 한 축이며, 식민 제국주의 시대에 뿌리를 둔 것의 대표주자가 바닐라와 초콜릿이다.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는 여전히 구 식민지에서 경작되고 선진국으로 수출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그러한 서구적 세계관의 철저한 외부인으로서 살아왔으나, 그 한 입을 맛 보는데 떫떠름함을 감출 수 없다. 그 맛의 모든 부분을 느끼지 않고 삼키기에는 만드는 이들의 노고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그 맛의 모든 부분을 느끼지 않고 삼키기에는 맛의 깊이가 너무나도 깊고 아름답다. 그래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고전으로 남았으리라.

이토록 고전적인 맛을 사랑하는 공간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 발걸음은 다시 마틴으로 향한다. 마틴의 스쿱에는 고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첫째로, 그 깊이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재료를 선택한다. 바닐라는 르 몽드 델라 바니Le Monde de la Vanille에서 유통하는 타히티 품종이다. 랏 번호를 기재하는 등, 추적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통하는 유통업자의 제품임은 물론 품질 또한 우수하다. 초콜릿은 현재는 Domori의 Sur del lago 72% 커버춰로, illy 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지가 오래이긴 하나 고대 크리올로종을 복원하여 시장에 소개한 메이커로 유명할 뿐 아니라, 그들의 코코아는 베네수엘라 수르 델 라고 지역의 계약된 농장의 단일지역에서 수확한 카카오로만 만들어 독특한 풍미가 있다. 살짝의 짭짤함과 짙은 버터향과 견과의 고소함, 무엇보다 카카오 특유의 풍미가 좋다. 기왕이면 가능한 만큼 그 노동에 적합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제품이면서, 그 땀 한 방울의 가치가 모두 맛으로 스며들어 있는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욕망이 아닌 최고의 경의에서 나온다.

올바르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일은 여기서 끝은 아니다. 제품으로, 그 맛의 매력을 승화해야 한다. 고전은 반복이 아니다. 고전으로 불리는 음악, 고전으로 불리는 시각 미술은 그저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의 시간동안 많은 작품들이 해석과 재해석을 거치며 우리의 삶에 녹아든다. 삼손과 들릴라를 전승한 당시 유대 민족의 시각, 중세 기독교인들의 해석, 그리고 근현대 사상가들의 해석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유혹에 넘어가는 주인공, 무너지는 건물에서의 희생과 같은 플롯이 클리셰로 남아 흐른다. 이렇듯 고전의 유산은 거대하지만 그에 감히 도전해야 한다. 존경하되 숭배하는 게 아니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마틴은 자신의 방식으로 두 가지 고전의 맛을 그려낸다. 바닐라는 참으로 달콤하고도 향기롭다. 타히티종 중에서도 우수한 것들만이 전달해줄 수 있는 꽃향기와 같은 것 위에 피쿠알종의 토마토나 아몬드, 풋익은 과일향이 덧입혀진다. 코끝이 매워지는 가운데 향의 전달이 올바르다. 아이스크림은 녹으며 느낄 때가 본게임이니.

마틴만이 완벽하고 유일하다고 주장할 마음도 없고 그런 세상은 지옥에 가깝다고 생각하므로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렇다. 초콜릿과 바닐라에 대한 의견을 물을 수 있는 곳은 서울에서 많지 않다. 플라니폴리아 종을 쓴다고 타히티보다 덜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며, 베네수엘라가 최고의 카카오 산지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그만큼 사랑해야 한다. 그냥이라는게 없는 맛이 이곳의 최고의 자산이다. 여전히 서울의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도 바닐라는 있지도 않은 경우가 태반이며 그렇다고 다른 클래식한 맛들이 갖추어져 있지도 않은 게 나머지이다. 있는 경우에도 선택의 이유를 들을 수 없다. 서비스 직원한테 멘트를 교육하라는게 아니라, 맛에서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 서울의 아이스크림이 미국의 빅네임들-벤 앤 제리스의 하프 베이크드가 정식 수입됨을 상기하라-과 견줄 만큼 창의성이 돋보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누가 치즈 하면 너도 치즈, 누가 쑥 하면 나도 쑥 식인데, 바닥공사부터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모방은 요리사 위인전 쓰는 문화가 아니고 그 기반이 되는 맛이라고 느낀다. 마틴이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흔하지만 이 가게의 이름은 이탈리아랑 관련이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 모방이 목적이 아닌 공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