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ny Cup - Parvus sed potens
Kajitsu가 폐점한 현재, 내가 기억하기로는 세계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100% 비건/베지터리언 레스토랑은 이곳 프랑크푸르트의 Seven Swans 뿐이다. 세븐 스완스는 비건으로 시작한 이래 2018년 1스타를 획득했으며 현재는 1스타, 그린 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이 다르지 않느냐고? 그렇다. 나는 세븐 스완스를 가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일부러 값비싼 저녁을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케밥과 그뤼너 소세를 먹었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타이니 컵은 바로 그 지독한 레스토랑 세븐 스완스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식이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문은 잠겨있고, 바텐더가 문을 열어주면 별도의 업장으로(헤드 셰프는 아예 간섭하지 않는다) 운영되는 바, 타이니 컵을 지나가야만 한다. 그대로 앉아 식전주를 즐기고 레스토랑으로 향해도 좋고, 반대로 나오는 길에 앉아 여운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들르지 않더라도 이 작은 바를 일부러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당 수의 방문객이 바로 이곳의 공간과 칵테일만을 위해 방문한다.
타이니 컵을 이끄는 것은 스벤 리벨Sven Riebel로 경영을 배웠고 원래 금융인이 되어 프랑크푸르트로 올 가능성이 높았던 인재는 방황한 끝에 이제 15년차 바텐더가 되었다. 세븐 스완스가 채식 셰프, 리키 사와드Ricky Saward의 강렬한 개성을 표현하는 공간이라면 타이니 컵은 바텐더 스벤만의 공간이다. 17제곱미터, 즉 5평 남짓의 정말 조그마한 공간에서 그가 설계한 마법이 빛난다.
이곳의 메뉴 구성부터 눈여겨볼만 한데, 메뉴는 화이트 베이스와 브라운 베이스도, 클래식과 창작, 롱과 숏, 알코올의 강약도 아닌 음료의 점도와 맛의 집적도로 나뉜다. 너무 많이 마시지 않기로 한 내가 가장 뒷장부터 읽기 시작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네그로니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숏 드링크로 바꾼 듯한 레시피로 만들어진 이 첫 잔, 마틴 풍크트 S에서 나는 이 바가 가진 숨겨진 힘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단순히 아메리카노라는 주제를 재밌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식후주를 마시는 특유의 감성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자 바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 따위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진과 베르무트에 소량의 포트 와인까지 섞으면서도 과한 희석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스터를 원활히 마쳐 마시기 편할 뿐 아니라 첫 향기부터 마시면서 들이치는 향들이 모두 하나같이 이탈리아 일색이면서 서로 다른 이탈리아를 드러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오일의 쓴맛까지는 신경쓰지 않을지 몰라도, 마지막 제스트 트위스트가 제대로 먹혀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시각-후각간 오차에서 오는 쾌감이 아주 제대로 구현되어 있었으며 단맛과 쓴맛의 균형 또한 적절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고민하던 차에 결국 이름의 어그로에 걸려들고 말았는데, 마음 깊은 곳에는 "감히 BEST라는 수식어를 쓰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이름처럼 플립 스타일로 달걀이 들어가지만 더 나아가 아예 오르차타를 바디로 사용하여 하얗고 뿌옇고 점성이 있는 스타일로 만들어 버렸다. 제품 오르차타를 쓰는지 만드는지는 몰라도 오르차타 자체의 고소한 맛은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플립으로서의 균형이 좋았다. 달걀과 오르차타가 형성하는 무게감과 점성은 자연스레 단맛을 붙잡고, 오래 머금으면서 끝자락에 코냑의 피니시가 스치운다. 무엇보다 스터에 이어 셰이크가 잘 된 느낌이 좋았는데,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셰이크 칵테일을 주문할 때까지 한참을 다시 기다려 장면을 다시 되돌려 보았다. 보스턴을 사용하지만 충분히 빠르게, 또 적절한 시간을 들여 셰이크할 뿐 아니라 얼음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동작을 사용하였다. 우연으로 습득한 것일지 고뇌의 결과일지는 모르겠지만, 썩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본래 플립이란 설탕을 넣어 마시기 위한 레시피였던 만큼 단맛을 띄면서도 추가 재료들로 인해 지나치게 달지 않은 듯 착각이 느껴져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고는 모르겠지만 좋은 플립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조그만 공간에 우겨넣은 듯 보이지만 좌석 간의 거리는 결코 좁지 않고, 시선은 자연스레 바 앞을 향하게 되있으니 설계가 재미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기에도 좋고 방해받지 않기에도 적당한 가운데 이곳의 칵테일은 대단한 기교나 아주 특이한 재료를 쓰지는 못하지만 빼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니 이곳을 칭하는 가장 흔한 수식어가 작지만 강하다(parvus sed potens)인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