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포장 이대로 좋은가?

아이스크림 포장 이대로 좋은가?

COVID-19에 더불어 한파와 폭설까지 겹치며 역시 이런 종류의 글에 대해서는 '입 다물기' 좋은 때가 되었다. 그러나 침묵은 편한 해결책이지만 좋은 방법이 아닐 때도 많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일전에 COVID-19로 인해 시작하게 된 배달이나 포장 서비스에 대해서는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를 약속했다. 상호간 적당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 아닌가. 그렇다면 COVID-19와는 상대적으로 무관한, 원래 제공하고 있던 포장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B&J의 자리가 영 기대처럼 넓어지지 않고 있는게 발단이 되었다. 그래,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자. 포장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이제는 바깥 날씨가 냉장고를 넘어 냉동고에 비슷하게 되었으니 아이스크림을 들고 천천히 산책하더라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

파인트(473ml)보다 큰 단위로 주로 포장이 가능한 테이크-아웃(또는 투-고) 아이스크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총 네 군데의 아이스크림을 포장하여 충분히 맛봤다. 젠제로, 더 마틴, 우리집 젤라또 그리고 벤앤제리스 선릉DV점. 오늘은 요즘의 상황을 감안하여 개별 상품에 대한 비평보다는 아이스크림 투-고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일반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한다.

"더 마틴"의 포장용기 안에 담긴 아이스크림.

첫째로 이야기해 볼 것은 포장용기와 부산물들이다. 여느 포장, 배달음식이 그렇듯이 아이스크림 또한 일회용품의 산이 쌓인다. 국내에서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된 베스킨 라빈스가 코팅한 종이 용기를 쓰는데, 젤라또 가게들은 보냉팩에 스티로폼으로 추정되는 보냉용기를 사용한다. 우리집 젤라또는 가장 작은 두 가지 맛의 경우 코팅지 파인트를 쓰지만 더 큰 크기의 사이즈들은 나머지 두 곳의 용기와 다르지 않다.
유일하게 나무 숟가락을 제공하는 벤 앤 제리스를 칭찬할 점은 넘어가더라도(이 회사도 2020년까지 이러한 재활용 불가한 용기들을 대체할 것을 약속했으나 아쉽게도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포장의 방식을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은 있다. 단연 트렌드를 선도한 젠제로의 "고메 박스" 식의, 작은 컵을 여러개 만드는 방식은 아이스크림들이 섞이는 지점으로부터도 자유로우며 알록달록하게 보기가 좋지만 용기의 비용 정도가 더해진다는 점에 비해 가격대가 지나치게 오른다(보냉용기 포장은 KRW 19000에서 시작하지만 고메 박스는 KRW 30000을 초과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작은 컵 여섯 개에 더해 뚜껑까지 그만큼 생기므로 쓰레기를 지나치게 많이 만드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환경 문제도 문제지만 후처리의 귀찮음이 벽으로 걸린다. 따라서 스티로폼 박스를 선택하게 되는데, 옆으로 넓은 용기에 여러 종류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있게 담는 방식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지만 곧 '고메 박스'를 선택한 소비자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떠오른다. 아이스크림이 섞인다. 이는 배치 프리저에서 완성된 형태로 만드는 BR이나 B&J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위에 무언가를 얹어 완성하는 젠제로와 더 마틴의 경우 고민할 지점이 되었다. 올린 요소들이 용기 안에서 아이스크림의 온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질감이 변하는 지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섞이는 감각이 불유쾌하다. 아이스크림이 섞이지 않기 위해서 여섯 개의 재활용하지 않는 종이컵과 여섯 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뚜껑은 과분한 처사이니, 무해한 칸막이같은 가능성은 없을까? 제과 등에 흔히 쓰이는 띠지나 스페이서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역시 일회용품이라는 한계가 있다. 재활용이 편한 종이류는 크림에 닿을 경우 수분을 흡수하니 변형의 위험이 있다. 마치 짬짜면 접시처럼 애당초 용기의 금형을 변경하면 간편한 일이나 수요가 있지 않은 듯 하다.

두 번째는 큰 용기에 서로 다른 맛들을 담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다. 이미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 청크를 섞어 일종의 켜를 쌓으려는 시도는 해외의 기성품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제과의 반죽과 아이스크림, 또는 잼과 아이스크림 등을 넘어서 두 가지 맛 이상의 아이스크림이 뒤섞이는 경우를 오염이나 혼입이 아닌 짝짓기로 접근할 수 있고, 아니면 적어도 호흡이 맞는 맛의 구성을 제안해볼 수 있다. 현재는 방문한 모든 매장에서 맛의 선택은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일임되어 있었는데, 맛의 짝을 느끼기에 컵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지만 473ml을 초과하는 경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겐 다즈가 제안한 바닐라, 커피, 초콜릿으로 구성된 파인트. "아포가토"가 떠오른다

어린이들에게 스쿱을 알록달록 쌓아주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아이스크림의 층 쌓기는 낯선 일이 아니다. 다만 과거의 그런 일들이 단지 풍성함이나 강렬한 발색(주로 색소에서 온다)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도에 주목했다면 심심하게 생긴 컨테이너에서는 풍미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일부(젠제로, 더 마틴)에서는 토핑을 통해 이러한 풍미의 다각화를 어느 정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용기 속에서 토핑의 상태가 변화-상온에 가까운 온도가 아이스크림에 가깝게 떨어지며, 액체의 경후 얼지는 않더라도 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하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포장을 염두에 둘 경우 연출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면 아예 이러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젠제로의 감태 캐러멜이 이런 방향으로는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가루로 낸 해초의 풍미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꿀과 같은 경우 액체라서 자연스레 흘러 옆으로 침투하는 데 더해 덮개에 묻어 곤란해진다. 이런 종류는 피하거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피에 비해 상단 표면적이 만족스럽게 넓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조립 요소를 소분해서 제공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 하다.

이외에는 아이스크림의 질감 변화의 문제와 가정에서 활용도에 대한 안내 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 아무래도 대용량인 만큼 컵 단위로 취식할 때보다 물릴 가능성이 있다. 업스케일 파인 다이닝에서도 아이스크림과 디저트 와인 모두 영 아닌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반대로 그런 곳에서만 음료를 짝지을 이유는 없다. 대용량으로 쟁여두게 된 아이스크림이라면 완전히 즐기기 위해 풍미의 짝짓기를 통한 보완의 필요성을 느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에는 스타우트 계열의 맥주, 쉽게는 기네스를 권할 수 있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는 매콤한 자극이 조금은 살아있는 미국 위스키를 맞추어볼 만 하다. 아이디어 정도로만 제공할 수 있더라도 포장이나 배달로 즐길만한 동기가 되줄 수 있으리라. 또 보관 상태의 문제에서 나오는 질감 변화에 대한 안내도 필요하다. 원래도 기계에서 뽑혀 나온 이후 분자구조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에 이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 물론 안내한다고 해서 급하게 다 먹을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는 이에 대해 안내받을 권리가 있다.

H. D. Goff and R. W. Hartel, Ice cream. New York: Springer, 2013. 영하 15도에서 보관한 아이스크림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 관찰한 결과. 위부터 보관 1일차, 22일차, 200일차의 모습

미식(Gastronomy)의 대상으로서 아이스크림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국내에서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만큼 포장 용기에 담긴 아이스크림, 또 공간이나 서비스로부터 유리되었을 때의 경험에 대해 섣부르게 한계를 진단해서는 안된다. COVID-19로 인한 전례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만큼 언제나같은 견지만을 가지고 복지부동으로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삶이 계속 되듯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도 계속되어야 한다. 계속 고민하고, 계속 즐기자. 비록 영하 11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가정용 냉장고 보유자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잔뜩 포장해 먹을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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